부와 권력을 찾아서 / 벤저민 슈워츠 지음 / 최효선 옮김 / 한길사 발행 / 1만8,000원

엄복(1853~1921). 중국 청조말 사상가, 교육가.

아편전쟁을 계기로 서구 열강의 노름판으로 전락한 자국의 운명을 개탄하며 서양의 지식과 사상에서 부흥의 길을 모색했다. 허버트 스펜서와 애덤 스미스를 높이 평가한 그는 이들을 비롯, 여러 서구 지성의 저서를 한문 번역해 소개하는 작업에 헌신했다.

이는 당대 중국의 젊은 지식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노신과 모택동 역시 엄복의 저서를 통해 생각의 깊이를 더했다.

벤저민 슈워츠(1916~1999). 중국 정치와 사상사를 전공한 미국 학자.

동서양 사상 전반에 두루 해박했던 그는 38년간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중국 공산주의와 모택동의 부상> <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를 비롯해 여러 권의 영향력 있는 저작을 남겼다.

슈워츠를 박사논문 교수로 사사했던 김용옥은 열린 사고와 세심한 마음을 겸비한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그를 회상한다.

슈워츠의 엄복 연구서라 부를 만한 이 책은 다층의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가장 단순하게는 청조말 서양 사상의 전도사 노릇을 자임했던 사상가 엄복이 쓴 일련의 저작을 그의 생애와 더불어 살펴보는 평전으로 볼 수 있다.

엄복이 당대 및 후대에 끼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이 책은 변환기 중국이 서구적 가치를 어떤 맥락과 형태로 수용했는가를 논한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저자 슈워츠의 입장에 서서 관점을 넓히면 또 다른 의도가 짚힌다.

조국이 부강해지는 방책으로 영국식 자유주의의 이식을 꾀했던 엄복의 기획이 신해혁명 이후 중국사에서 어떻게 실현 또는 좌절됐는가에 주목할 경우 이 책은 사상과 현실의 부합이라는 고전적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이라 할 수 있겠다.

명문가 자제로 태어난 엄복을 열렬한 스펜서주의자로 변신시킨 것은 8할이 좌절감이었다. 어린 시절 유교적 정규 교육에 충실했고, 10대 중반 이후엔 서양식 항해학교에서 수학한 뒤 영국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지만 귀국 후 그가 맡은 일이란 하나같이 성에 안 차는 자리였다.

실의에 빠진 그를 사로잡은 것은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었다. 철저한 개인주의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결국 진화라는 비인격적 힘에 의해 사회적 발전으로 화하게 된다는 진술에서 엄복은 추레하게 시들어가는 청조를 혁신할 대안을 발견한다.

청일전쟁이 끝난 1895년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필두로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격정을 담아 그는 다수의 번역서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슈워츠는 1908년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된 그의 저술 작업을 분석하며 이 선구적 사상가의 지적 궤적을 좇는다. 필자는 성실한 원문 대조를 통해 엄복의 저작이 번역이라기보다는 일관되고 독창적인 신념을 반영한 의역의 산물임을 밝힌다.

오직 청조 부강에 일로매진하는 엄복의 붓 앞에 헉슬리, 밀, 몽테스키외는 물론 ‘정신적 스승’ 스펜서의 저술마저 새롭게 재편되고 심심찮게 왜곡된다. 일례로 엄복에게 사회적 진화란 곧 국가의 부국강병이었지만 정작 이론의 주창자 스펜서에겐 무정부주의의 지향이었다.

게다가 엄복은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입헌군주제를 표방한 무술개혁엔 힘을 보탰지만 신해혁명의 공화주의에는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결국 엄복은 현 체제에 잠재된 변혁의 힘을 긍정하는 한편으로 사회진화론이 품은 결정론적 믿음에 기댄 ‘하이브리드 사상가’였던 셈이다.

원서는 1964년에 출판됐지만 이 책의 문제의식은 언제 어디서 소개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듯싶다.

부의 기제와 사회·정치적 체제 간 이상적 조합에 대한 오래된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엄복은 틀렸다. 그가 죽은 지 채 100년도 안돼 경제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그가 강조하던 현명한 군주, 영국식 자유주의, 어느 쪽과도 무관하다.

하지만 단언하긴 이르다. 경제와 사회·정치 사이에 잘 들어맞는 궁합이 있으리라는, 엄복이 평생 놓을 수 없었던 신념은 세계 곳곳에서 검증받고 있다. 한국 역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거대한 실험에 직면하고 있지 않은가.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