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의 세상읽기 / 신지호 지음/ 기파랑 발행 / 9,000원

‘B급 좌파’를 자처하는 한 칼럼니스트는 보수를 “사상이 아니라 욕망”이라 정의하며 “남보다 더 가진 걸 내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어찌 사상인가”라고 일갈한다. 이 단출한 논리가 제법 호소력을 지닐 만큼 한국사회에서 보수-우파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누덕누덕한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합리적인 보수’를 표방하며 등장한 뉴라이트(New Right)는 보수주의의 행보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우리 사회의 보수층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재작년 ‘자유주의연대’를 창설하며 뉴라이트 운동의 기수로 떠오른 신지호 씨가 그간의 글을 정리해 칼럼집을 펴냈다.

태동한 지 2년 남짓 만에 뉴라이트는 일부 보수 신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대중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뒀지만, 진보-좌파에 맞서 기존 보수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한 사상과 실천 계획을 체계적으로 보여주지 못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그들이 ‘반미 좌파’라 규정한 참여정부와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올드라이트(Old Right)세력과 ‘보수 연대’에 치중한 점은 적잖은 이들을 식상케 했다.

그렇다면 신 씨는,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새 책을 통해 그간 받아 왔던 관심과 질문에 본격적으로 답하려 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그런 것 같진 않다. 신 씨도 “정교한 이론과 구체적 정책대안은 숙제”이고 “실린 글들은 운동 초기의 문제의식과 구상”이라며 책에 쏠리는 기대를 미리부터 경계한다.

그래도 자타 공인 뉴라이트의 리더가 쓴 글인 만큼 이 세력이 앞으로 지향할 바에 대한 밑그림 정도는 엿볼 수 있겠다. 한국 현대사를 한없이 긍정하고 한미동맹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점은 기존 보수와 궤를 같이 한다.

그는 이승만을 “김일성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는 통일국가” 대신 단정(單政)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박정희를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칭송한다. 또 미국과는 체제·안보·경제 부문에서 긴밀히 협력할 수 있지만 중국은 경제·문화 외엔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는 국가라며 현 정부의 ‘탈미근중(脫美近中)’ 노선을 비판한다.

뉴라이트가 삼아야 할 새로운 목표로 신 씨는 ‘선진화’로 간명하게 표현한다. 책 후반부 ‘이제는 선진화다’라는 제하의 세 편에서 추상적이나마 그 구상이 엿보인다. 그가 제시하는 선진화 세력은 수구적인 ‘산업화 세력’과 포용이 부족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한 이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주도형 경제와 포퓰리즘은 각각 시장주도형과 성찰적 민주주의로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덧붙여 ‘국민분열적 리더십’ 등의 표현은 참여정부 및 범여권세력을 겨냥한 것이다. 신 씨의 인식 속에 현 정부는 선진화를 위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일 뿐이다.

자신의 이념적 진정성을 ‘자유주의’에서 찾는 만큼 신 씨는 기본적으로 “사상의 다원주의를 옹호한다”. 민주노동당은 영락없는 사회주의 세력이지만 있어도 괜찮다고 본다.

하지만 소위 ‘주사파’는 예외다. 북한 체제에 우호적인 세력은 그에게는 정녕 ‘용서받지 못할 자’들이다. 목전에서 핵개발을 하고 있는 북한에 여전히 ‘햇볕’을 퍼주는 것이나 ‘386 주사파’들이 자신처럼 전향 선언도 없이 권력의 복판에 슬며시 자리잡은 일에 신 씨의 심기는 무척 불편하다.

‘초기의 문제의식과 구상’일 뿐인 글에 조목조목 대거리하긴 뭣하지만 그래도 하나는 지적해야겠다. 뉴라이트, 최소한 신지호의 뉴라이트는 뭐랄까, 실체 없이 공허해 보인다.

현 정부 출범 이래로 소모적일 만큼 심각한 보수-진보 갈등 속에서 대중이 ‘신(新)보수’ 세력에 바라는 건 이념의 전장에서 두각을 보일 전사가 아니다. 민생이 팍팍하고 정치·외교도 잘 안풀린다는데 혹시 뉴라이트가 이런 난제를 해결할 실용적 역량을 갖췄는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시쳇말로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렸다’는 신뢰감을 얻는 것이 중요한데 애석하게도 그의 책엔 그것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득권을 누려본 적 없는 젊고 건강한 자유주의자들”이 모였다고 해서 앞날이 순탄할 리는 없다. 현 정부가 타산지석이지 않을까.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