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진실한 내용은

인생의 어느 밤, 산도르 마라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산도르 마라이는 190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소도시 카샤우에서 태어났다. 20세기 초의 동유럽은 역사적 사건들이 끊임없이 회오리치는 격동의 현장이었다. 마라이의 조국인 헝가리는 그 회오리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그의 고향은 1차 세계대전 후 체코의 영토가 되었고, 대학생활을 시작한 부다페스트에서 마라이가 목격한 것은 군주제의 몰락과 극심한 좌우대립으로 말미암은 정치적 혼란이었다.

젊은 마라이는 조국을 떠나 독일에서 문필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글을 기고하며 독일의 여러 도시를 거쳐 그는 아내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다. 파리에서 마라이의 문학적 열정은 더욱 깊이를 얻는다. 그러나 그가 진정 바란 것은 조국인 헝가리로 돌아가 모국어로 작품을 쓰는 일이었다.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 듯 보였다. 헝가리로 돌아온 마라이는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여러 작품을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인정을 받고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불안정한 조국의 정치상황은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던 마라이를 환멸과 절망에 빠뜨린다.

1948년 헝가리의 공산독재정권을 뒤로하고 그는 다시 망명길에 오른다. 그 뒤로 1989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41년 동안 그는 다시는 조국 땅을 밟지 못한다.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 등 세계 여러 곳에 머물지만 마라이는 그 어느 곳에도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다. 그는 쓸쓸하게 떠도는 망명객의 운명을 타고난 예술가였던 것이다.

이렇듯 지난한 마라이의 삶의 궤적을 소개하는 것은 그가 철저히 잊혀졌던 작가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아직 우리에게 너무나 덜 알려져 있다. 마라이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안타깝게도 그가 죽은 후인 2000년대에 이르러서다.

90년대 후반 마라이가 1942년 헝가리에서 발표한 <열정>이 뒤늦게 이탈리아와 독일 등지에서 출간되자 그 반응은 유럽 독서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여러 언론들은 ‘위대한 유럽 작가의 재발견’, ‘우리는 벌써 오래 전부터 그를 알았어야 했다.’, ‘우리는 앞으로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 등과 나란히 그를 거론하게 될 것이다.’ 등의 찬사를 쏟아내며 숨겨져 있던 보석을 발견한 것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념과 냉전의 희생양으로, 조국으로부터 부르주아 작가라는 오명을 얻고 평생 망명자로 살다가 89세에 권총자살로 고독한 생을 마감한 한 작가의 빛나는 예술혼이 뒤늦게야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소설 <열정>은 퇴역 장군인 헨릭과 그의 친구 콘라드의 이야기다. 둘은 한 형제와도 같은 죽마고우로 깊고 끈끈한 우정을 키워나가며 함께 성장한다. 그러나 성인이 된 뒤 그들은 뜻밖의 ‘사건’으로 헤어지게 되고, 소설은 장장 41년 만에 이루어진 재회의 하룻밤을 그리고 있다. 그 하룻밤에는 75세의 노인이 된 두 친구의 전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헨릭은 부유한 귀족의 후예로 전통과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청년이었다. 친구 콘라드는 몰락한 가문을 위해 군인의 길을 선택하지만 가슴 속에는 예술가의 자유로운 기질을 품고 있었다. 헨릭은 콘라드의 소개로 만난 아름다운 여인 크리스티나와 결혼한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다. 헨릭은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 크리스티나와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 콘라드가 불륜의 관계임을 알게 된다. 새벽의 사냥터에서 콘라드가 자신을 죽이려했음을 직감한 헨릭의 인생은 한순간에 충격과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음날 콘라드는 한마디 말도 없이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버린다. 친구의 집으로 달려간 헨릭은 그곳에서 아내 크리스티나와 마주친다. 그리고 침묵 속에 41년이 흐른다.

증류수처럼 정제되어 시처럼 함축적인 산도르 마라이의 아름다운 문장들이 사랑과 우정, 신의와 배신을 휘저으며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친다. 헨릭과 콘라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간직한 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같은 질감의 41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서로 앞에 섰다. 이제 인생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며, 그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꼭 한 번 서로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을 두 친구는 알고 있었다.

헨릭은 콘라드에게 크리스티나의 죽음을 알린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다. 욕망, 질투, 분노, 증오, 절망, 죄책감은 41년이 흐르는 동안 그 본래의 빛을 잃었다. 지나간 인생의 긴 시간을 반추하며 두 친구는 ‘사실’과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삶의 유일하고 참된 ‘진실’은 운명적인 사건의 단편적인 ‘사실’들이 아니라, 오직 삶 전체로 묻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헨릭과 콘라드는 인생의 전부를 대가로 치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과연 우리의 영리함, 오만, 자만심으로 무엇을 얻었는가 하는 것일세. 우리 삶의 진실한 내용은 죽은 여인을 향한 이 고통스러운 그리움이 아닐까. (......) 우리 존재의 밑바닥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의 의미는 우리를 누군가에게 묶는 결합에 있지 않을까. 결합이든 정열이든 그것은 자네가 원하는 대로 부르게. (......)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정열은 그렇게 심오하고 잔인하고 웅장하고 비인간적인가? 그것은 사람이 아닌 그리움을 향해서만도 불타오를 수 있을까? 이것이 질문일세. 아니면 선하든 악하든 신비스러운 어느 한 사람만을 향해서,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정열적일 수 있을까? 우리를 상대방에 결합시키는 정열의 강도는 그 사람의 특성이나 행위와는 관계가 없는 것일까? 할 수 있으면 대답해주게.”

산도르 마라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은 조국을 떠난 지 41년째가 되는 해였다. <열정>의 헨릭과 콘라드가 다시 재회하게 된 것도 41년만이었다. 여러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으면서도 지구상의 천만 명 정도가 사용하는 헝가리어로 소설쓰기를 고집한 산도르 마라이는 진정한 소설가였다. 그는 삶의 유일하고 참된 진실을 알았고, 자신의 삶의 전체로 그것에 묻고 답했다.

하여 인생의 어느 밤, 산도르 마라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이신조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