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만 감독 '마이애미 바이스'

1980년대를 풍미한 TV 시리즈의 명성을 떠올리며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러 간다면 당신은 경을 칠 게 분명하다.

물론 이 영화의 제목은 <마이애비 바이스>이고 우리가 보아왔던 그 시리즈의 주인공 소니 크로켓과 리카르도 텁스가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제 이름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 외에 TV 시리즈와 유사점을 찾기는 힘들다. 마이애미 해변에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도, 해변을 거니는 늘씬한 8등신 미녀의 자태도, 악의 세력을 일망타진하는 멋쟁이 형사들의 호쾌한 액션도 이 영화에는 없다.

있다면 그 반대의 것들이다. 미국을 '중독의 나라'로 만들고 있는 다국적 마약조직과 무능한 FBI, 언더커버 형사와 마약 조직의 선악이 불분명한 전쟁, 가족에게 가해지는 거대한 위협이 지속적으로 묘사된다.

호랑이 굴로 들어간 두 형사

마이클 만 영화의 핵심적 설정은 반목하는 두 집단의 대결이다. 짝패가 되어서는 안 되는 두 남자의 협력 또는 적이라기보다 짝패로 만났어야 할 남자들의 어긋난 결합이 만의 관심사다. <히트>에서 서로의 막강한 존재감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면서 대립하는 두 남자, 사악한 담배 회사에 맞서 공조하는 <인사이더>의 두 남자의 대결, 그리고 LA 뒷골목을 떠도는 <콜래트럴>의 킬러와 택시기사가 그들이다.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은 마이애미의 두 형사 소니(콜린 패럴)와 리카르도(제이미 폭스)이다. 언더커버 임무를 띄고 마약조직에 암약하게 된 소니와 리카르도는 남미와 북미, 동남아를 오가는 거대 마약 조직의 배후를 파헤친다.

마약 조직의 돈세탁 업무를 맡고 있는 중국계 쿠바인 이사벨라(공리)를 유혹한 소니는 그녀를 이용해 임무를 완수하려 하지만 이사벨라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둘 사이의 수상한 관계를 눈치 챈 조직 행동대장의 흉계에 빠져 정체가 탄로 난 두 형사는 사랑과 우정을 걸고 마지막 일전을 치른다.

저열한 갱들의 마약 전쟁과 그들을 소탕하기 위해 잠입한 언더커버 형사들, 보스의 여자와 눈이 맞는 바람둥이 형사, 그리고 최후의 순간 엄습하는 인간적 갈등. 이야기의 뼈대만 놓고 보면 뭐하나 새로울 게 없다.

드라마의 참신함보다 <마이애미 바이스>는 보면서 재미를 발견하게 되는 영화다. 영화의 관심은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는 형사들의 활약상이 아니다. 갈등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사내들의 곤경을 다루는 ‘마초 감독’ 마이클 만은 여기서 언더커버 형사들의 분열된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형사만 그런가. 전력이 의심되는 사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마약 조직의 돈세탁 담당 요부 이사벨라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이건 마이클 만의 전매특허다. 선과 악의 경계가 혼란스러운 카오스적인 세계에서 윤리적 갈등에 빠진 인간. 그들은 판단력을 상실하고 허둥대며 때로는 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모험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주인공은 분열성과 이중자아의 모습을 완벽히 구현한 소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생환하는 트루디와 리카르도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소니에게 남는 것은 연인 이사벨라와의 헤어짐이다. 그에게 행운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마이클 만의 미학적 모험

성공한 TV 시리즈의 리메이크, 플로리다 남부에서 파라과이, 쿠바의 아바나, 콜롬비아를 숨가쁘게 휘돌아 다시 플로리다로 돌아오는 다국적 로케이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제이미 폭스-콜린 패럴의 투 톱 진용 등 외견상 블록버스터의 꼴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이 영화에서 형사 짝패의 활약상보다 본질적인 것은 마약 갱들과 언더커버 형사들의 협력 혹은 대립이다. 마이클 만의 세계는 협상과 대립, 그리고 배신의 순환이 반복된다.

이는 영화를 통해 반복되는 긴장감 넘치는 협상과 인질극으로 보여진다. 흡사 그것은 서부극에서 볼 수 있는 총잡이들의 대결을 현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불가피하게 협상하게 되는 두 집단이 만나게 되고 그 협상은 필연적으로 결렬된다. 음모에, 배신에 의해 누군가는 사단이 나야 끝나는 전쟁이다. 마이클 만의 야심은 다른 곳에 있다.

자신이 직접 제작했던 동명의 인기 TV 시리즈를 영화화하면서 마이클 만은 과거의 성공에 기대려는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디지털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HD 카메라의 활용, 적군과 아군이 구분되지 않는 카오스적인 세계에 대한 집착, 날 것 그대로의 액션을 제시하는 대담한 스타일은 <마이애미 바이스>만의 모험이다. 범죄 수사 장르의 전형적인 플롯을 따라가는 듯하지만 분열증적인 스타일로 장르의 전형성을 철저히 파괴해버리는 것이다.

<콜래트럴>에서 HD 촬영 미학을 제대로 보여줬던 촬영감독 디온 비브의 카메라는 <콜래트럴>보다 더 어두침침해졌다. HD의 선명한 화질보다 비디오 카메라의 거칠고 뭉툭한 질감을 그대로 살린 화면은 충격적일 만큼 생생하다.

특히 영화가 거의 끝나 갈 때쯤 나오는 액션 장면은 압권이다. 휴거라도 올 듯 잔뜩 검어진 하늘을 배경으로 맞선 형사집단과 마약갱들의 총격전은 옆에서 상황을 경험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멍멍하게 귀청을 울리는 총소리는 터무니없이 큰 데시벨 수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 않다. 은폐, 엄폐물 뒤에 숨어 총질을 하는 인물들의 뒤쪽에 위치한 카메라는 마약 갱들과 경찰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어둠을 향해 뻗어나가는 총탄의 꼬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장면의 연출만으로도 <마이애미 바이스>는 TV 시리즈가 보여주지 못했던 어떤 경지에 도달한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