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시간' - 성형수술 소재… 대중적 화법으로 만들어진 '김기덕 표'영화

때론 작품보다 번외의 이슈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영화들이 있다.

지금 김기덕 감독은 그런 운명에 처했다. 동물적인 육욕과 관람객을 실신시킬 만큼의 잔혹 묘사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섬>이나 김기덕을 명실상부한 세계적 감독으로 등극시킨 <빈집>,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언론시사회를 거부해 화제가 된 <활>, 그리고 한국영화계의 독과점 논란으로 정작 영화 자체는 소외당한 <시간>까지. 김기덕의 영화는,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영화 자체보다 다른 문제로 화제에 올랐다.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열렬한 환대를 받는 주목할 만한 감독이지만 국내에서 김기덕은 늘 이슈메이커였고 야생의 감독이었다. 한국 관객의 수준을 들먹였던 '수준론'에 이어 급기야 "영화계를 떠나겠다"는 폭탄발언으로 이어진 김기덕의 행보는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최근 그의 모습은 자신이 만든 영화 속 인물들처럼 자멸적이다. 그가 정말로 지긋지긋한 한국영화계를 등지고 세계인으로 거듭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시간>은 한국어로 한국의 상황과 정서에 기반해 만든 한국영화임이 분명하다.

페이스 오프 연인들

<시간>의 주인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인들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오래도록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도 식게 마련이다. 눈에서 불똥이 튀었던 첫 만남의 설렘이 식었고 상대에 대한 열정도 식은 밥처럼 차가워졌다. 세상 어느 연인들에게나 있을 법한 권태의 주기는 시간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세희(박지연)와 지우(하정우)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다. 지우에게 자신이 더 이상 신선함을 주지 못한다고 자책하던 세희는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지우는 세희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카페에서 새희(성현아)라는 카페 여급을 만난다.

새희는 사라진 세희가 성형수술을 하고 외모를 바꾼 인물이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지우의 사랑을 시험하던 새희는 지우가 과거의 자신을 잊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새희가 과거의 연인 세희였음을 알게 된 지우는 큰 충격을 받고 떠난다.

사회문제로까지 번져가는 '성형수술'이라는 소재를 취하고 있지만 <시간>은 성형수술에 대한 사회적 논평이나 세태풍자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돼가는 사랑의 모습과 그를 극복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택하는 인간 욕망의 유한성을 보여준다. 제목으로 쓰이고 있는 ‘시간’은 새로움을 소멸시키고 열정을 소멸시키고 생명을 소멸시킨다.

인간과 문명은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기 위한 장치들(웰빙 열풍을 탄 각종 건강식품이나 피트니스 문화, 성형수술도 그들 중 하나다)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지만 결국 존재론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익숙해진 모든 것은 편해지지만 동시에 지겨워지고 무덤덤해진다. <시간>의 두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의심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관심을 끌 수 있다고 믿는다. 김기덕의 열세 번째 영화 <시간>은 시간 앞에서 언젠가 유통기간이 다하는 사랑과 관계의 속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걸 대신할 새로운 열정은 또 다른 자기부정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김기덕의 변화와 퇴장

김기덕 감독은 ‘새로움을 찾는 것은 본능이다. 시간을 견디는 것이 인간이다. 반복 안에서 새로움을 찾는 것이 사랑이다. 시간 속에서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생’이라고 연출의 변을 적었다.

일견 매우 단순해 보이는 메시지를 과장되고 도식적인 메타포로 전하는 것이 김기덕 영화의 특기였다. 하지만 <시간>은 그런 경직된 어법에서 다소 자유로워진 인상이다.

영화의 주제와 김기덕의 생각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시간>이 김기덕의 지난 몇 작품들에 비해 가장 대중적인 화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은 공통적인 의견이다. 스릴러 장르의 스타일을 차용해 이야기를 쫓아가는 재미를 줬고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곳곳에 매설돼 있다.

누군가는 "김기덕의 영화세계가 변했다"고 말했고 "김기덕의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라는 평가도 있다. 가장 대중을 의식하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엄혹한 시장논리에 묻히는 것이 억울해서였을까? 한국영화계의 괴물성에 대한 김기덕의 성토가 그저 시의적인 발언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지난주 언론에 배포한, 심경을 밝히는 글을 통해 그는 자신이 만들었던 13편의 작품들을 모두 부정했다.

‘관객의 질타를 계기로 차분히 제 영화와 영화작업을 돌아보니 참으로 한심하고 이기적인 영화를 만들었고, 한국 사회의 어둡고 추악한 모습을 과장하여 관객에게 강요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불쾌감 갖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제 자신이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든 심각한 의식장애자임을 알았습니다’라고 김기덕은 썼다.

물론 이 자아비판에 가까운 참회가 액면 그대로 읽히지는 않는다. 일견 통한의 참회록으로 읽히지만 실은 호소와 자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 답답한 한국영화판과 등을 돌리고야 말겠다는 반어적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가장 왕성한 창작의 열정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늘려나가고 있는 국제적인 감독이 더 이상 자신의 나라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기덕의 영화가 어떤 새로운 영감으로 채워졌다고 믿는 이들이나, 지루하고 단순한 메시지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건 불행한 일이다. <시간>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안타까운 영화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