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김 기사, 운전해~ 어서!"

요즘 시쳇말로 대박인기인 개그 코너 '사모님'의 유행어다. 막상 글로 접하면 왜 웃긴지 모르겠지만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고상한 척 갖은 우아를 다 떨면서 자신이 개업한 럭셔리 치킨 레스토랑 이름을 '닭대가리'라고 칭하거나 명품관에서 곱창을 찾아 등을 긁어 달래는 등 테러와도 같은 엽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모님은 부유층에 대한 일반인의 기대를 전복시키며 웃음을 유발한다.

사모님과 운전기사는 지위의 차이로 인해 혹은 은밀한 공간을 둘만이 공유한다는 이유로 대개 팽팽한 긴장관계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이 긴장을 황당유머로 깨뜨리는 것이 개그코너 '사모님'이라면 관계를 휴머니즘으로 승격시키는 것은 바로 오래된 명작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다.

영화는 독일계 유태인인 부잣집 할머니와 흑인 운전기사의 격의없는 소통에 관한 이야기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50년대, 시민권에 대한 인식이 깨어나기 시작한 미국의 남부도시 아틀랜타. 이 곳에서 72세 유태인 데이지 할머니는 흑인 가정부와 조촐하고 살고 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동네에서 작은 차사고를 내면서 아들은 모친의 전담 운전기사를 고용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운전을 할 수 없을 만큼 늙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할머니는 흑인 운전기사 호크가 마뜩잖다. 호크가 하는 일엔 사사건건 불만이고 호크가 운전하는 차에는 타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흑인 운전기사 호크는 깐깐하고 고집불통인 할머니와 달리 서글서글하니 곰살궂어 조금씩 할머니의 마음에 다가가게 된다.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는 할머니는 문맹인 호크에게 글쓰기 교본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 호크는 궂은 날도 마다않고 할머니 시중을 든다.

영화의 재미는 둘 사이의 갈등과 그 갈등의 해소에 있다. 그러나 영화의 원작자 알프레드 유리는 유태인 할머니와 흑인 운전기사의 관계 속에서 종교와 인종에 관한 본심을 살짝 드러낸다.

데이지 할머니는 반미주의로 유명한 작가 그레엄 그린의 소설을 열독하고 유대교 회당에 열심히 다니는 반기독교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원작 속에서 할머니가 읽는 그레엄 그린의 소설이 순수한 신앙으로 인해 파멸되는 카톨릭 신도에 대한 이야기인 "사건의 핵심(The heart of the matter)이란 점도 그녀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데이지 여사는 과거 노예제도를 지지했던 남부지방에 살고 있으면서도 흑인들의 영웅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지지하고 흑인 가정부의 장례식에 참석한 유일한 백인일 만큼 인종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다. 흑인기사 호크를 지독히도 미워했지만 그것 역시 인종차별적인 증오는 아니었다.

다만 할머니는 자기아집에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했다. 마틴 루터 킹 추모회에 참석하면서도 흑인 기사에게만큼은 아량을 베풀지 못한 속좁음은 속물같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소통을 가로막는 차별과 편견의 벽은 세월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인권의 문제가 대두된 것과 무관하게 할머니와 흑인운전기사는 어느덧 신뢰와 우정의 담을 쌓아가고 있었다. 기력이 쇠해 요양시설로 옮긴 데이지 할머니가 호크의 손을 잡으며 한 마지막 말이 바로 'My Friend' 였다.

그녀의 영원한 흑기사가 된 흑인 운전기사 호크. 할머니는 그를 인생의 친구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세상에게 너그러워졌다. 물론 그토록 천천히, 한평생을 걸려서 말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