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나라는 풍경

어느 미술평론가의 정의에 따르면, ‘풍경’이란 자기 자신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자연이며 세상이다. 풍경을 그저 자연이나 세상의 한 부분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자연, 자신과의 관계에 의해 확립된 세상이 바로 풍경인 것이다.

그는 그러므로 사람들이 풍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객관적인 풍경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세잔의 풍경화가, 고흐의 풍경화가, 모네의 풍경화가 각기 다른 이유인 것이다.

소설가 김형경의 <사람 풍경>은 그러므로 평범해 보이지만 되새겨 볼 만한 제목을 가진 책이다. ‘사람 풍경’이란 말 그대로 ‘사람의 풍경’일 수도 혹은 ‘사람과 풍경’, 또 ‘사람 속의 풍경’일 수도 ‘풍경 속의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심리 에세이인 동시에 여행 에세이로, 여행을 하며 자신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바라본 풍경이 결국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다는 진실을 전하고 있다.

수년 전,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김형경이 긴 여행길에 올랐다는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살던 집을 처분한 것은 단순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비장한 포즈가 아니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지만,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선뜻 결행할 수 없는 선택임은 분명해 보였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저서 중의 하나로 꼽히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이 발표된 것은 1917년의 일이다. 이후 거의 한 세기가 흐르는 동안 ‘정신분석’은 인간을 설명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개념이 되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와 같은 용어는 이제 현대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어 있으며,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은 프로이트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전문적인 학문 체계를 이루고 있다.

소설가인 김형경을 심리학 분야의 전문가로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정신분석의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는 이 책을 통해 단순한 아마추어 이상의 깊이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러한 시도가 그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살피고 진지하게 탐구하려 한 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긴 여행 중에 마주한 숱한 풍경 속에서 김형경은 마음의 풍경들과 만나게 된다. 고대 로마의 지하 묘지인 카타콤을 나서며 그녀는 ‘의식’과 ‘무의식’의 개념을 깨닫는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광장에서 몹시도 초조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담배를 청하던 소녀의 떨리던 손끝에서는 ‘중독’의 본질을 본다.

정신분석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유아체험과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형성 과정 역시 김형경이 풍경을 바라보는 중요한 프레임이다. 그녀는 뉴질랜드 어학원의 클래스메이트였던 태국소녀와 일본소녀가 각자 가지고 있는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알아본다. 물론 그러한 분석과 판단은 스스로에게 먼저다.

“오래도록 나는 자신을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성인이 된 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생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왔다. 그러나 정신분석을 받으며 자각한 것은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식의 과도한 자주성이 의존성의 뒷면이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내면에는 누군가에게 보호 받고 도움 받고 싶은 마음이 어마어마하게 억압되어 있었다.”

김형경은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우울, 공포, 의존, 질투, 투사, 분리, 회피, 동일시, 콤플렉스, 자기애, 공감, 용기, 변화, 자기실현 등과 같은 심리학적 개념에 연결시켜 자신의 마음과 풍경의 마음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매만지고 사려 깊게 보듬는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때로 불편하고 아프다. 저자도 독자도 그렇다. 내가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솔직하지 못했던가. 어떠한 감정의 뒷면에 이토록 어두운 측면이 숨겨져 있었단 말인가. 생의 이면을 탐구하는 것이 직업인 예술가에게도 그것은 분명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가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진짜 자신의 생을 손아귀에 쥘 수 없다.

이 책에서 제일 빈번하게 눈에 띄는 구절은 바로 ‘지금 이곳’과 ‘일단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하는 것이다.

내면의 상처와 심리적 모순은 극복되고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의 그런 자신을 부정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상처는 왜곡되어 있기 마련이다. 문제의 인정이 문제의 해결보다 더욱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파악하고 그 갈등의 양상을 솔직히 인정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끝내 자신의 본질과 진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담담히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심리적 문제의 해결은 극단적인 변화나 투쟁과도 같은 과격한 전복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조절과 조화 같은 부드럽고 점진적인 지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오랜 세월 소설을 쓰며 인간의 내면과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관찰해 온 김형경은 “인간 정신에 ‘정상’이란 개념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역시 ‘사랑’을 말한다.

“이제는 사랑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이유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사랑이 무의식의 서랍을 여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으로 진입하는 순간 내면에 있는 사랑의 원형, 엄마와 나누었던 최초의 사랑이 따라 나온다. 동시에 그 시기에 경험했던 분노, 불안, 공포, 좌절, 시기심 같은 감정들도 열린 무의식의 서랍에서 일제히 날아오른다. 그 감정들의 진짜 근원을 모르는 채 우리는 대체로 현실의 연인에게 자기 내면의 분노, 불안, 의심, 질투를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 사랑의 진정한 위력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사랑할 때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면서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면으로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감정을 넘어서서 계속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통합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랑이 한 사람을 아름답게, 자신감 있게, 성숙하게 만드는 이유 역시 그 어려움을 이겨낸 성과일 것이다. 사랑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인간 정신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한다. 정신분석은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일이라 한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인간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자기개념’이 곧 자신의 ‘운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여기, 나라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자.


이신조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