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불갑사 - 9월15일~16일 불갑사 꽃무릇 축제, 대웅전 꽃창살 놓치지 말아야

“아빠, 산에 불이 난 것 같아요.”

굴비로 유명한 영광 고을 남쪽에 솟은 불갑산(佛甲山·516m)은 초가을이 되면 시뻘겋게 변한다. 한적한 계곡이나 산정 부근의 일부만이 아니라 산 전체가 그렇게 불타오른다. 때 이른 단풍이 아니라 바로 잎도 없이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꽃무릇 때문이다.

꽃무릇이라는 예쁜 이름은 나무 아래에서 무리를 지어 핀다 하여 얻었다. 석산(石蒜)이라고도 불리는 데, 이는 ‘돌틈에서 나오는 마늘모양의 뿌리’라는 뜻이라 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

불갑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다. 꽃무릇은 9월 초순 꽃대가 올라오고, 꽃은 가을을 알리는 이슬이 내리는 백로 무렵부터 피기 시작해 추석 전에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추석 즈음에 꽃송이가 시들면 그제야 잎이 돋아나는데, 특이하게도 잎은 겨울을 견디고 그 이듬해 봄에 시든다.

이렇듯 꽃무릇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이다. 이런 사정은 비슷하게 생긴 상사화(相思花)와 똑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사화와 꽃무릇을 혼동하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다.

둘 다 백합목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란 공통점이 있으나 상사화는 백양꽃·위도상사화·붉은상사화·붉노랑상사화·노랑상사화 등 여러 종류고, 꽃무릇은 한가지뿐이다. 개화 시기를 보면 상사화는 여름 칠월칠석을 전후해 피지만, 꽃무릇은 초가을인 백로와 추분 사이에 꽃을 피워낸다. 또 상사화의 꽃색깔은 주로 연분홍이나 노랑이고, 꽃무릇은 아주 붉은 진홍색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불갑사 꽃무릇은 일주문부터 부도밭, 대웅전 주변과 뒤편의 불갑저수지, 그리고 불갑사에서 구수재까지 이르는 산기슭 등을 중심으로 3만여 평에 걸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올해엔 9월 중순 무렵에 만개할 것 같다는 게 불갑사 스님의 말씀이다. 산자락의 꽃무릇은 부도밭 주변보다 보통 사나흘 정도 늦게 만개한다.

불갑면 상사화 축제추진위원회에서 주최하는 불갑사의 꽃무릇축제는 9월15일(금)과 16일(토) 이틀 간 불갑사 소운동장과 불갑산 일대에서 열린다. 이전엔 ‘상사화 꽃길 등반대회’라는 이름으로 조촐하게 진행되었지만 규모가 조금 확대됐다.

역시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꽃무릇으로 가득 뒤덮여 불이라도 난 것 같은 산길을 따라 불갑산 정상 연실봉까지 다녀오는 행사다. 둘째 날인 1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3시간 동안 펼쳐진다.

꽃무릇 외에도 불갑사 일대엔 녹나무과에 속하는 참식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이 참식나무는 원래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로 이곳이 참식나무의 북한계선이다.

전설에 의하면, 불갑사의 정운이라는 스님이 인도에서 공부하고 돌아올 때 그곳서 연정을 나누던 공주가 이별의 징표로 준 나무 열매를 심은 것이 자라났다고 한다. 현재 절 뒤편 산 중턱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12호)의 나무들은 그 씨앗들이 퍼져 자란 것이라고 전해진다.

불갑사는 백제 불교 최초의 사찰

▲ 불갑사 부도밭과 꽃무릇

산도 낮고, 산세도 부드러운 불갑산은 아늑한 산의 형상이 어머니와 같아서 모악산(母岳山)이라고 불렸는데, 부처의 교리를 백제에 전해준 인도승 마라난타가 불갑사(佛甲寺)를 지으면서 산 이름도 불갑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제 불교 최초의 사찰이라 해서 육십갑자의 으뜸인 ‘갑(甲)’자를 절집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모악산이라는 이름은 현재 정상 서쪽의 작은 봉우리에 붙어있다.

불갑사는 이렇듯 유서 깊은 도량이건만, 여러 차례 화재로 중건한 탓에 조선후기 양식의 전각만 남아있다.

사천왕상에서는 월인석보 등 귀중한 문화재도 나왔다. 경내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축물인 대웅전(보물 제830호)은 서향인데, 부처님은 오른쪽(남쪽)으로 돌아앉아 계신다. 따라서 정문을 열게 되면 여느 절집과 달리 부처의 옆모습이 보인다. 이는 남방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한다.

가운데 칸에 달린 창살은 연꽃과 국화 모양으로 수려하게 조각하였는데, 조각 솜씨는 저 유명한 부안 내소사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빼어나다. 불갑사(www.bulgapsa.org) 종무소 (061) 352-8097.

한편, 마라난타가 첫발을 내디딘 백제 땅은 불갑사에서 북쪽으로 20km 거리에 있는 법성포. 이곳은 조선 시대부터 굴비로 유명하다.

굴비를 만들 때 여느 지방에선 조기를 소금물에 담갔다 말리지만 이곳에선 섶간이란 염장법을 사용한다. 이는 2년 넘게 보관하여 간수가 완전히 빠진 천일염으로 조기를 켜켜이 재는 방법을 말한다.

조기는 음력으로 삼월 중순 사리 무렵에 가장 알이 충실하고 황금빛 윤기가 도는 참조기를 쓰기 때문에 오늘날 최고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법성포 항구에 가면 굴비를 엮어서 널어놓은 광경을 볼 수 있다.

숙식 불갑사 주변엔 마땅한 숙박시설은 없고 보리밥 등을 파는 식당만 몇 곳 있다. 영광 읍내에 세종모텔(061-352-1118), 미성호텔(061-353-4242)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가족 여행객이라면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백바위해수욕장의 두리펜션(061-353-2400)도 괜찮다. 법성포 항구에 가면 굴비정식(1인분 1만~1만2,000원)을 차리는 식당이 여럿 있다.

교통 △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나들목→ 23번 국도→ 영광읍(함평 방면)→ 불갑 삼거리(좌회전)→ 불갑사. 수도권에서 4시간 소요.
△ 서울→ 영광=매일 40분 간격(07:00~19:00) 운행. 4시간20분 소요. 광주→ 영광=시외버스가 매일 20~30분마다(05:55~19:25) 운행. 영광→ 불갑사=매일 9회(06:30~20:10) 운행. 20분 소요.




글·사진=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