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아다리 약수
가을은 약수의 계절이다. 톡 쏘는 한 모금에 몸 안의 노폐물이 다 빠져 나갈 것만 같은 탄산약수는 메밀꽃이 피는 계절에 찾아야 제맛이 난다. 강수량이 적은 시기라 약수의 효능과 맛에 치명적인 잡수가 섞이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연휴는 어느 해보다 길다. 고향 오가는 길에 시간을 내서 약수도 마시고 숲길도 거닐며 건강을 챙겨보자.

방아다리약수 - 탄산·철분 듬뿍… 위장병에 효험

오대산국립공원 구역에 있는 방아다리약수의 매력은 무엇보다 약수터 들머리의 전나무와 잣나무 숲. 이런 침엽수 향기에 휩싸여 약수터 숲길을 걷다보면 도시에서 얻은 근심 걱정은 금방 사라진다. 방아다리약수 오가는 길에 들르게 되는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도 빼놓을 수 없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서 화전을 일구고 살던 아낙네가 바위 한가운데 움푹한 곳에 곡식을 넣고 방아를 찧는 중 바위가 갈라지면서 약수가 솟아 나왔다고 한다.

또 일제 강점기인 1924년경 경상북도에 살던 이명호라는 사람이 위장병을 고치려고 산천을 헤매다 찾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가 이곳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산신령이 나타나 “잔내골에 가면 약수가 있으니 그걸 마셔라. 그리고 백일 동안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산신령의 요구대로 백일 동안의 비밀을 지켰고, 결국 위장병도 고칠 수 있었다고.

1930년대에는 병을 고치러 오는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여관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일제 강점기 말에 황폐화되었다. 그러다 광복 후 약수터 위쪽에 다시 여관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탄산과 철분이 주성분인 약수는 위장병·신경통·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약수터 옆에 서있는 퇴색한 건물은 이 약수를 지켜주는 용신각(龍神閣)이다. 물은 우리 민속신앙에서 생명력과 풍요의 원리, 정화의 상징으로 섬겨지면서 독특한 종교적 기능을 발휘해 왔는데, 이런 기능은 용신 또는 용왕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약수도 당연히 생명력과 풍요의 원리로서 섬겨졌다. 물의 생명력에서 ‘약’이라는 말을 붙여 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빌었던 것이다. 이 용신각은 방아다리약수를 지켜주면서 지병을 치료하러 오는 사람들의 소원도 들어주고 있다.

교통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 6번 국도(오대산 방면)→ 1.5km→ 삼거리(좌회전)→ 8km→ 방아다리약수.

숙식 방아다리약수산장(033-335-7480)에는 장기 투숙하면서 약수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서는 산채 된장찌개와 약수로 지은 돌솥밥, 토종닭 등도 판다. 약수터 아랫마을인 척천리에도 민박을 치는 집이 있다.

달기약수 - 무색·무취… 가슴까지 시원

전국에서 이름 드높은 청송 주왕산 기슭에 있다. 조선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안동에서 이곳 부곡리에 자리잡고 살면서 마을 사람들과 수로공사를 하던 중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약수를 발견한 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달계약수라고도 불리는 달기약수의 특징은 아무리 가물어도 사계절 나오는 양이 일정하고 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색깔과 냄새가 없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이 약수가 위장병에 특효가 있고, 빈혈·관절염·신경질환·심장병·부인병에도 좋다고 말한다.

하탕·중탕·신탕·상탕 등이 있는데, 가장 먼저 발견된 하탕에는 약수탕번영회 소속의 아주머니가 나와 약수를 배급하고 있다. 옆에는 이전에 약수를 잘 관리했던 분을 추모하는 비석이 있다.

약수를 마신 다음 주왕산 산행은 물론 태고의 신비를 보여주는 주산지도 반드시 찾아가보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가을 새벽녘엔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교통 서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 34번 국도→ 안동→ 35번 국도(영천 방면)→ 길안→ 914번 지방도→ 청송읍→ 3km→ 달기약수.

숙식 약수터 주변의 식당은 모두 민박을 겸한다. 모텔급 숙박업소도 여럿 있다. 약수로 푹 고아낸 백숙이 별미다. 겨울에도 손발이 따뜻해진다는 옻닭도 알아준다.

오전약수 - 마음마저 정갈해지는 깨끗한 맛

아름답기로 소문난 영주의 부석사와 한 코스로 엮이는 약수다. 조선 중종 때(1542년)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오전약수를 마시고 물맛에 반해 이렇게 말했다. “이 약수는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 오전약수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약수 옆 바위에는 주세붕이 쓴 휘호가 남아있다.

이 약수터는 물맛뿐 아니라 시설도 손색이 없으며, 신경통·신경허약증·선후풍·고혈압을 비롯해 위장병·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성분은 유리탄산·마그네슘·망간 등이 함유된 탄산수다. 사이다 맛을 느끼게 하는 혀끝을 톡 쏘는 청량감이 일품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 소백산 자락에서 살던 한 여인이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고 이 약수터를 찾아왔다. 그녀가 이곳에 도착해 물을 마시려 하자 그때까지 맑게 흐르던 약수가 갑자기 흙탕물로 변하며 뱀이 나왔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전설이 약수를 마실 때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마시라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기왕에 오전약수까지 갔다면 무량수전으로 잘 알려진 부석사의 가을 경치도 놓칠 수 없다. 주세붕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등이 있다.

교통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우회전)→ 931번 지방도→ 8km→ 소수서원→ 10km→ 부석면 삼거리(좌회전)→ 3km→ 부석사 주차장. 부석면 삼거리→ 931번 지방도→ 8km→ 물야면 삼거리(좌회전)→ 915번 지방도→ 5km→ 오전약수.

숙식 오전약수 주변에 숙박할 수 있는 민박집과 약수탕 닭백숙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아주 많다. 약수백숙 1마리(1인분)에 1만5,000원 수준이다.

▲ 삼봉약수
▲ 방동약수

삼봉약수 - 풍치·구강빈혈 치료에 효과

백두대간 기슭의 홍천 삼봉자연휴양림 안에 있으므로 삼림욕을 겸해 찾기에 아주 좋다. 산막이 조성된 숲은 아름드리 전나무와 주목 등 침엽수와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등 활엽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1급수에만 사는 천연기념물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는 맑은 계류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삼봉약수는 백두대간 갈전곡봉(1,204m)에서 서쪽으로 10리쯤 뻗어나온 산줄기인 가칠봉(1,240m)과 응복산(1,156m)에서 발원하는 실룬계곡에 있어 실룬약수라고도 불린다. 삼봉약수라는 이름은 이 세 봉우리의 정기가 모인 곳에서 나오는 약수라는 뜻이다. 물맛이 좋아 ‘한국의 명수 100선’에도 들었다.

삼봉약수의 주성분은 제일철·탄산·중탄산이온으로 위장병에 특효가 있고, 신경쇠약·피부병·신장병·신경통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20여 년 전에 수질검사를 한 결과 적정량의 불소이온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약수는 풍치나 구강빈혈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약수가 나오는 구멍이 세 개가 있으며 그 맛이 모두 다르다. 그중 맨 아랫것이 가장 강한 맛이 나는데 처음 먹는 이는 쇳내 때문에 못 먹을 정도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바위틈에서 졸졸 흘렀지만, 물을 받기가 곤란해서 관리하던 사람이 바위 틈 아래의 보글거리는 곳에 구멍을 파자 바위틈에서 나오던 물이 그쳤다. 그리고 나중에 그 아래에 구멍을 또 하나 파니 위쪽 두 구멍에서 나던 약수의 물맛이 약해졌다고 한다. 약수 옆의 산장은 병을 고치러 온 사람들이 장기 체류하는 곳이다. 휴양림 입구에 민박집이 여럿 있다.

약수 한 모금 들고 삼림욕을 한 다음, 열목어가 뛰어오르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칡소폭포 구경, 그리고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인 구룡령 드라이브도 빼놓을 수 없다.

교통 서울→ 6번 국도→ 양평→ 44번 국도→ 홍천→ 56번 국도(양양 방면)→ 서석→ 창촌삼거리(좌회전)→ 14km→ 칡소폭포→ 삼봉자연휴양림. 영동고속도로→ 속사 나들목→ 속사 삼거리(좌회전)→ 31번 국도(내면 방면)→ 운두령→ 창촌 삼거리(우회전)→ 56번 국도(구룡령 방면)→ 14km→ 칡소폭포→ 삼봉자연휴양림.

숙식 삼봉자연휴양림(www.huyang.go.kr 033-435-8535)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 3,000원. 산막은 8평형(4만4,000원), 9평형(5만5,000원), 11평형(5만5,000원), 13~14평형(6만원), 21평형(9만원)이 있다. 야영데크는 4,000원, 오토캠프장 8,000원이다. 약수터 입구에 민박집이 여럿 있다. 이곳에서는 약수에 삶은 토종닭과 백숙을 판다.

방동약수 - 톡 쏘는 맛에 정신이 번쩍

경치가 아름다운 인제 방태산자연휴양림 가는 길목에 있다. 톡 쏘는 물맛도 물맛이지만,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한번쯤 꼭 가볼 만한 곳이다.

300년 묵은 엄나무 아래의 암반에서 솟아나는 방동약수에는 다음과 같은 산신령 전설이 전한다. 옛날 한 착한 심마니가 산삼을 캐려는 일념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산속을 헤맸지만 매번 허탕만 쳤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산신령이다. 정직한 너에게 산삼을 캐게 하고 또 약물도 주겠다.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려라.”

꿈에서 깨어난 심마니는 그 길로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한 동자가 나타나 손짓하는 곳에 이끌려 가보았더니 동자는 간데없고 그 자리에 수백 년 묵은 산삼이 있었다. 심마니가 산삼을 캐자 그 자리에서 약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조선 현종 때인 1670년의 일이라 한다.

탄산·철·불소·망간 등이 주성분인 방동약수는 피부병과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약수를 찾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돌탑이 즐비한 약수터 주변은 계곡이 울창하다. 사륜구동 차라면 조경동 안쪽까지 구경을 할 수 있다. 약수터 위쪽으로 뚫린 임도를 따라 오르다 고개를 넘으면 조경동이 보인다.

교통 서울→ 6번 국도→ 양평→ 44번 국도→ 홍천→ 철정검문소(우회전)→ 451번 지방도→ 내촌→ 31번 국도(인제 방면)→ 상남→ 현리교(우회전)→ 8km→ 휴양림 입구 삼거리. 여기서 우회전해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해 1km 정도 가면 방동약수.

숙식 방동약수 앞에 닭백숙을 파는 식당이 있다. 휴양림 입구에 꽃 피는 산골(033-463-7397) 등 깔끔한 펜션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이 근처의 정보는 방동약수마을 홈페이지(www.bangdong.net) 참조. 방태산자연휴양림(033-463-8590)에서도 숙박을 할 수 있다.



▲ 달기약수
▲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
▲ 오전약수

글·사진=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