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니핑크
독신수난기 '서른 넘은 여자는 남자 만나기가 원자폭탄 맞는 것보다 어렵다' 영화 '파니핑크'에서 독신자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최후통첩은 이렇게 시작된다. 계란 한 판 나이에 괜찮은 놈 건질 생각 일절 말라는 경고다.

말이 좋아 싱글족이지 예나 지금이나 나이 차면 노총각, 노처녀인건 매한가지다. 또 생물학적으로도 독신의 큰 이점은 별로 없다.

유난히 연구결과 좋아하는 언론기사에 따르면 독신자들은 기혼자들보다 심장병에 걸릴 확률도 높고 단명하기도 쉽고 질병 감염 가능성도 무려 5배나 높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독신자들의 결혼을 독려해 가부장적 제도를 안정화하려는 정부의 음모일지도 모르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 뼈에 사무치도록 외롭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우울증에라도 걸리는 게 당연지사다.

추석 같은 민족 대명절에 자의반 타의반 우울을 즐겨야만 하는 독신자들. 이어지는 영화 세 편을 통해 독신자들에 대한 희비극적 진단을 보고 고독의 삶을 반추해보는 건 어떨까? 그야말로 지독한 독신 수난기를 통해서 독신의 삶이 얼마나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지 알게 될 테니 말이다.

파니핑크 설레는 노처녀의 '남자 꼬시기' 대작전

노처녀 연애법 ‘파니핑크’ 첫 번째 영화는 '원자폭탄' 메타포로 노처녀의 가슴에 버섯구름을 일으키는 영화 '파니핑크'다.

주인공은 29세 노처녀 파니핑크. 퀄른 본 공항 소지품 검색원인 그녀는 현재 4년째 독수공방 중이다. 외로운 그녀의 유일한 낙은 해골무늬 악세사리 모으기와 '스스로 결정하는 죽음'이라는 자살 모임에서 핸드메이드 관을 제작하는 것.

독신자는 원래 특유의 반사회적이고 가치 전복적인 취미를 가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미혼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반사회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들은 유독 주술과 심령술을 신봉한다. 신점, 타롯점, 사주풀이, 별자리 운세 등은 미래의 왕자님을 꿈꾸는 그녀들에게 때론 삶의 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파니핑크 역시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심령술사 오르페오에게 연애운을 점쳐본다. 오르페오는 그녀에게 숫자 23과 연관이 있는 금발의 멋진 남성과의 만남을 예견해주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때마침 그 조건에 맞는 아파트 관리인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너무 오래 굶었다고 되는 대로 들이대는 것은 금물. 파니핑크는 그를 꼬시기 위해 오르페오의 도움을 다시 받는다. 복채를 두둑히 받아든 오르페오는 일명 남자가 꼬이게 하는 주술을 걸어준다.

하지만 서른 살 넘어서 하는 연애는 더이상 할리퀸 문고에 등장하는 핑크빛 로맨스가 아니다. 때로는 본의 아니게 인기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뒷통수 맞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그나마 운이 좋으면 듀오가 광고하는 성공 사례의 자랑스런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상대남의 머리카락까지 자르며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자 했던 파니핑크에게 늦깎이 연애는 안타깝게도 처참한 미국판 '사랑과 전쟁'이었다.

과연 파니핑크에게 핑크빛 사랑이 찾아올까? 영화의 결말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연애의 해답을 소외된 자들끼리의 연대의식에서 찾을 것. 즉 멀리 있는 남의 떡 욕심내지 말고 가까운 곳으로 눈들 돌려라. 이것이 의외로 간단한 노처녀 연애법이다.

파이트클럽 독수공방男 사회를 향해 주먹을 날리다

노총각 연애법도 매한가지다. 가까운 데서 찾되 가까운 곳에 사람의 무리가 없거든 무조건 사람의 무리를 좇아라. 그래서 영화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은 갖가지 동호회에 참가한다. 고환암 환자 모임, 혈액질환 환자 모임, 뇌경색 환자 모임 등등.

근데 어째 모임들이 하나같이 이상하지 않은가.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의 경우는 독신자 가운데서도 죄질(?)이 아주 안 좋은 경우다. 그는 결코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지 않는다. 이케아 가구, 호버트렉 운동기구, 스타벅스, 크리스피 크림 도넛, 그리고 지독한 불면증만이 그의 친구다. 그리고 이러한 반사회적 경향때문에 그는 결국 일을 낸다.

어느 날 출장 길에서 만난 비누제조업자 타일러. 그를 만나고부터 일이 벌어진다. 출장에서 돌아와보니 난데없이 주인공 집이 폭파당해 있고 얼떨결에 찾아간 타일러는 자기를 사정없이 때려 달라 하고. 타일러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주인공은 타일러의 이상한 이론에 빠져든다. 싸움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다는 궤변 말이다. 이 둘은 1대1로 붙는 '파이트 클럽'을 조직해 전국의 소위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선동해 새로운 테러집단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 파이트클럽(위), 포스트맨 블루스

영화는 한마디로 사회 친화적이지 않고 고립된 생활을 오래 하면 스스로에게 폭력을 휘두를 만큼 변태가 된다는 애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서 혹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학대하는 '파이트 클럽'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지 고민해보자. 그리고 독신자들이여, 권태는 이제 그만. 아파트를 나가라, 이성을 만나라, 살아 있음을 증명하라.

포스트맨 블루스 숙맥 노총각 "나도 화끈한 사랑 하고싶어"

그런데 여기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독신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나이 들면서 사회와 연결 고리가 점점 줄어드는 독신자는 자칫 주위 사람들에게 존재감마저 상실해 버릴 수가 있다.

영화 '포스트맨 블루스'의 노총각 주인공이 오해와 무관심 속에서 비극을 맞는 것은 애초에 가정과 사회 안에서 존재감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영화 '포스트맨 블루스'의 주인공은 권태로운 삶에 빠져 사는 33세 노총각 사와키 료이치다. 우체부로 일하는 그는 여자랑 관계 한 번 제대로 못해봤을 만큼 숙맥 같은 인간으로 주변에는 친한 친구도 애인도 심지어 가족조차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릴 적 친구 노구치의 집에 우편물 배달을 하러 갔다가 야쿠자 입단을 위해 손가락을 자르는 친구의 모습을 목격한다. 노구치는 한 번 사는 인생 화끈하게 살아보라며 주인공을 자극시키고 그 말에 고무된 료이치는 배달해야 할 편지를 죄다 뜯어 본다. 그리고 우연히 읽게 된 말기암 환자의 편지 덕분에 그녀와 사랑에 빠진 료이치는 난생 처음 생의 환희를 만끽한다.

하지만 야쿠자 똘마니인 노구치를 감시하기 위해 잠복하고 있던 경찰들이 료이치가 노구치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그를 범죄자로 오인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와중에 우연히 말기암 환자 킬러 조를 만나면서 경찰의 오해는 점점 설득력을 더해가고 처음부터 존재감이 없던 그는 하루 아침에 마약 밀매자에서 킬러, 거기에 신 권력체제를 구축하려는 테러리스트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33세 노총각이 연애 한 번 하고자 한 것뿐인데 사회는 별 볼일 없는 남성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영화 '포스트맨 블루스'는 평범한 남자가 졸지에 킬러나 야쿠자와 같은 사회 음지의 인간들과 엮이면서 범죄에 연루되는 과정을 블랙코미디로 그리고 있다. 원래 외롭고 고립된 사람들은 쉽게 음지에 내몰릴 수 있는 법이다. 삶이 허무하고 우울할수록 양지에서 노는 습관을 기르도록 해보자. 처박혀 살기 쉬운 독신의 삶에는 양지의 광합성이 필수다.

독신의 삶은 자칫 고립되어 오래되면 될수록 독(毒)이 된다. 이 독 때문에 누군가는 핸드메이드 관에 집착하고 또 누군가는 갖가지 해괴망측한 동호회에 집착한다.

그런데 권태와 변태에 빠지기 쉬운 독신 삶의 유일한 백신은 역시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들뿐이다. 올 추석 연휴엔 서로서로에게 독신의 독소를 약화시킬 백신을 투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