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作,

낯설지만 부정할 수 없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이성이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 경험이나 의지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순간 - 그러나 그러한 순간이 꼭 거창하고 강렬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러한 순간은 하찮고 미약하고 야릇하다.

미세한 변화에 주위가 환기되고 흐름이 뒤바뀌고 감각이 동요한다. 마치 다른 차원으로 가는 입구를 우연히 발견한 것 같은 순간이 우리를 찾아온다. 말하자면 그것은 ‘미미한 균열’의 순간이다. 바야흐로 치명적인 것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어떤가. 마치 달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세계신기록을 향해 경이로운 질주를 펼치고 있는 장거리 육상 주자. 레이스의 3분의 2를 소화한 열여섯 바퀴째에도 그의 힘찬 발걸음은 흔들림이 없다.

강인한 체력과 끈기와 집중력. 그는 다른 주자들을 일찌감치 따돌리고 홀로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기록의 갱신과 우승의 영광이 눈앞에 있다. 그의 코치도,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도, 수많은 관중도 모두 그의 유연하고 아름다운 질주에 환호한다. 그러나 결승점을 얼마 앞두지 않고 주자는 문득 ‘멈추어 서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이성이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차원으로 가는 입구, 미미한 균열의 순간이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주자는 쓰러진다. 사람들은 그가 레이스를 잘못 계산한 것이라고, 불행하게도 부상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영원히 달릴 수 있을 것처럼 달리고 있던 그는 그저 달리기를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을 뿐이다.

“천천히 바닥을 향해 미끄러지며 머리를 들자, 아, 키 큰 나무들과 청명한 하늘과 느릿한 구름, 꼬여있는 나무줄기들과 나뭇잎들이 움직이고, 눈을 들어 그는 조화로운 새들의 움직임을 음미한다. 주위에선 아우성이 들려오지만 그는 듣지 않는다. 분명 원망과 모욕일 테지. 좌절한 그의 코치는 짧은 경주복을 입은 다른 주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볼 테고, 몇 명의 주자는 눈에 띄게 숨을 헐떡이며 코치는 옆구리에 손을 가져다 놓는다. 아, 너는 끝내지 못하는구나, 너는 마무리 짓지 못하는구나, 하지만 저 위에선 어느 누구도 감지하지 못하는 기묘한 공기 속에서 나무들이 흔들리고, 지금 금발의 선수는 경련과 통증을 겪는다. 내가 저 새를 본 적이 있던가? 아나운서는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을 보고하고, 그의 속도는 빛처럼 일정했지만 멈추어 서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장거리 주자 멈추어 서다’라는 제목의 짧은 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1941년생)는 우루과이 출신의 여성작가로 군부독재의 탄압을 피해 스페인으로 망명한 후,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며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여성, 망명 작가, 동성애자, 좌파’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소설 속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페리 로시가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현대인의 부조리한 삶의 편린’이다.

30편의 짧은 소설들이 담긴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은 국내에 유일하게 발간된 페리 로시의 단행본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공허와 소외가 지배하는 일상 속에서 회의하고 분열하는 인간의 모습을 독특하고 상징적인 구조와 간결하고 유려한 문장을 통해 보여준다.

‘틈’이라는 단편 역시 앞서 말한 미미한 균열의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던 한 남자가 문득 멈칫거린다. 남자는 순간 자신의 행위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의미와 목적이 갑자기 실종된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걷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 계단을 올라가고 있던 중인지 내려가고 있던 중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사소한 망설임은 심각한 소요를 불러일으킨다. 바쁘게 계단을 오르내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남자의 멈칫거림으로 충돌을 일으켜 일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남자는 공공질서를 교란한 죄로 체포되어 심문을 받지만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가 없다. 심문을 받는 동안 그는 벽에 생긴 작은 틈을 발견한다. 남자 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볼 수 없다. 틈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며 점점 더 커져간다.

이성이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미미한 균열의 순간이 바로 ‘인간의 순간’이다. 니체 식으로 말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순간인 것이다.

현대사회는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한 확고한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아무도 그 시스템 자체를 전복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그 시스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균열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지만 한편으로는 부조리하고 기괴하고 무모하고 엉뚱하고 모호한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미미하지만 치명적인 균열을 통해 자신이 인간임을 느끼고 확인한다. 그것이 우리가 미미한 균열을 옹호해야 하는 이유다.

표제작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은 그러한 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페리 로시는 세상 어딘가에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이 존재하고, 거기에 쓸모없는 노력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관리하는 사람들과 쓸모없는 노력을 열람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상상한다.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에 가면 각기 다른 기구를 장착하고 일곱 번이나 날기를 시도한 남자와 불멸하기를 원했던 여자와 한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20년이 넘는 시간을 쏟아 부은 남자의 쓸모없는 노력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또 눈을 잘못 맞아 시력을 잃을 때까지 다섯 번이나 타이틀을 되찾으려 했던 권투선수와 현기증이 심해 아래를 내려다볼 수 없는 곡예사와 자신을 치료해줄 의사를 찾아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닌 난쟁이의 쓸모없는 노력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에는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심혈을 기울였던 그 수많은 쓸모없는 노력들 역시 빠짐없이 보관되어 있다.

쓸모없는 노력은 그저 쓸모없는 노력일 뿐이다. 그러나 쓸모 있는 노력만으로 일생을 보낸 인간은 아무도 없다.

쓸모 있는 노력만으로는 결코 인간의 본질에 다가갈 수는 없다. 하여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이란 책을 읽음으로 우리가 발견하게 될 경이롭고 황홀한 쓸모 있음에 대해 굳이 말하려 한다는 것은 쓸모없는 노력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신조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