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감독 '모두 하고 있습니까'

최근 우리나라에서 중산층 몰락이나 비정규직 고용 불안정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일본에서는 얼마 전 ‘하류사회’라는 말이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하류사회’는 미츠비시 종합 연구소 출신 미우라 아쓰시가 쓴 책 ‘하류사회, 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에서 나온 말로 양극화가 심화된 일본 사회를 설명하는 대표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전 국민이 중산층이라는 ‘1억 총중류’의 신화가 깨지면서 극심한 양극화를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 사회를 가치구미(승자)와 마케구미(패자)로만 이루어진 사회로 명명할 정도다. 하류사회의 하류 인간도 이러한 격차 사회의 배경 하에 등장한다.

그러나 하류 인간이 저소득 계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류 인간형들은 대개 생활능력, 일할 의욕, 배울 의욕, 소비의욕 등이 총체적으로 낮아 사회 전반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패배의식과 무기력증으로 외부 세계와 소통 장애를 경험하는 이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 욕망을 극단적 형태로 표출하기도 하는데 이 욕망의 가장 근원적 형태가 성(性)이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블랙 코미디 영화 ‘모두 하고 있습니까’는 바로 이러한 하류 인간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사회의 낙오자로서 모든 일에 무기력한 개인이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성애에 집착하면서 벌이는 엽기발랄한 행각을 그린다.

영화 속 주인공은 돈 없고 애인 없는 가난한 노총각 아사오. 어느 날 카섹스가 나오는 에로 비디오에 심취하던 그는 카섹스를 하려는 일념 하에 차를 구입하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수중에는 단 돈 200만원 뿐. 아사오는 어렵사리 구입한 중고차로 카섹스할 여자를 꼬셔보지만 여자는 도통 꼬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의 간과 장기를 이식해서 번 돈으로 스포츠카까지 마련하지만 역시 여자는 꼬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화끈한 여자와 불타는 카섹스를 벌일 수 있을까?’ 카섹스 외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아사오는 1등석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은행을 털기로 한다. 1등석 정도면 승무원이 섹스 정도는 서비스로 해줄 거라는 허무맹랑한 생각 때문이다.

카섹스에 대한 아사오의 황당무계한 기대와 바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명 배우가 되면 할 수 있으려나, 경비행기 정도를 타면 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모든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주인공은 난데없이 야쿠자로 오인받고 만다.

감독의 상상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투명 인간이 되면 원없이 섹스를 할 수 있으려는 기대에 과학자를 찾아가는 아사오. 그의 미래는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황당 속으로 빠져든다. 단지 카섹스를 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가 왜 카섹스에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단지 그의 행각을 통해 그가 사회에서 무능력한 인간이고 경쟁에서 낙오된 자라는 사실만을 감지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무기력이 그를 무한 카섹스 욕망에 사로잡히도록 했다는 결론을 내려 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무능력한 그에게는 화끈한 섹스도 허락되지 않는다)

생활 능력, 일할 의욕 제로인 하류 인간 아사오. 그는 결국 파리인간이 되어 사회의 제거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일본처럼 중산층이 붕괴되고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는 우리 사회에도 점점 무기력하고 냉소주의로 물든 아사오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파리인간이 되지 않도록 영화처럼 서로에게 질문을 해봐야 할지 모른다. 정상적인 노동 활동과 소비생활, 그리고 건강한 성생활을 ‘모두 하고 있습니까?’ 아니, ‘모두 잘하고 있습니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