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은 이리 청명한데 이래저래 걱정은 있기 마련인가 보다. 한동안 맑은 하늘 아래 아름답게 쏟아지는 가을 햇살에만 마음이 팔려있었는데 비가 적게 와 단풍빛은 곱지 않고 가을 꽃도 풍성하지 않다는 소식이 들린다. 논에도 들에도 산에도 인고의 여름을 견디고 장하게 맺은 열매들이 잘 익어 갔으면 싶다.

청미래덩굴도 이런 가을 하늘 아래서 익어 간다. 파랗던 잎사귀들은 노랗게 가을을 담고, 대신 동그란 열매들은 빨갛게 그리고 반들반들하게 익어 가는데 이내 앙상한 가지에 앙증스럽게 남아있을 듯싶다. 그래서 청미래덩굴은 낙엽이 지는 나무이면서도 가을이나 겨울에 그리고 이른 봄 다른 생명들이 새로운 움을 틔우지 못하는 그런 시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청미래덩굴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나무’이다. 아주 자그마해도 숲이 발달한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고 게다가 그리 크지 않은 키로 숲속의 다른 식물들 사이에 섞여 자란다. 청미래덩굴이란 이름이 혹시 낯설다면 망개나무, 맹감 혹은 명감나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고향과 함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을까? 하긴 꽃가게에 가면 이 나무는 멍개나무로 통한다.

청미래덩굴은 백합과에 속하는 덩굴성 식물이고 낙엽이 지는 나무이다. 백합과 식물은 대부분 풀이고 백합이나 원추리처럼 크고 화려한 꽃이 피는 것이 많은데, 청미래덩굴은 봄이 한창일 때에 연한 녹색과 노란색을 섞어 만든 작은 꽃들이 우산살처럼 둥그렇게 달려 귀엽다. 하지만 이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른 백합과 식물처럼 꽃잎의 끝이 여섯갈래로 나누어져 있고 잎맥도 나란하니 백합과 식물임에 틀림없다.

청미래덩굴은 잎 모양도 재미있다. 둥그런 잎은 갑자기 끝에서 뾰족해져 깜찍하고, 둥글둥글 달리며 반질거리며, 만져보면 생각보다 두껍다. 잎의 질감은 보통 가죽 같아 혁질이라 부른다. 혁질의 잎은 대개 겨울에도 잎이 남아 있는 상록성 활엽수에 달리기 마련인데 청미래덩굴이 낙엽성인 사실도 상식에서 벗어난다. 청미래덩굴은 지나치게 많은 햇빛을 두꺼운 잎으로 반사시켜 체온의 상승을 막아보자는 그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담고 있다.

청미래덩굴에는 덩굴손도 있는데 잎겨드랑이에 달리는 탁엽이 변하여 생긴다. 두 갈래로 갈라져 돼지꼬리처럼 꼬불거리며 자라는 모습이 어릴 때에는 무척 재미나다.

땅속으로 굵은 줄기가 넘실넘실 이어지고 그 중간 마디에서 줄기가 올라오곤 하는데 갈고리 같은 가시가 나 있다. 산에서 가끔은 몹시 엉켜 있는 그 덩굴에 바지를 찢기기도 한다. 청미래덩굴은 일본에서 사투리로 이바라라고도 한다. 원숭이를 잡는 나무란 뜻이다.

청미래덩굴은 한방에서 사용하기도 하고 덩이뿌리는 한때 구황식물이었다. 요즈음엔 그 열매를 가을 꽂꽂이 소재로 쓰기도 한다. 잎은 차로 달여 마셔도 좋고 담배 대용으로 쓰인다.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으며, 떡갈나무 잎이 그러듯이 떡을 큰 잎에 싸서 먹기도 한다.

청미래덩굴의 가장 매력있는 모습은 누가 뭐래도 열매이다. 지름 1cm쯤 둥근 열매들이 둥글게 여럿 매어 달려 다시 좀더 큰 공을 만든다. 파랗던 열매들은 잎을 떨군 가지가 맨살을 드러내는 속도에 맞추어 점차 붉게 익어간다. 빨갛게 익다 못해 검기까지 한 그 열매들을 그냥 두고 가기 아까워 몇 개 따서 입에 넣으면 매끄럽고 둥그런 열매들이 입안에서 구르다 맥없이 폭하며 꺼져 버린다. 그런 추억이 담긴 고향과 어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더라면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