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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낙엽 흩날리는 낭만의 길 5選
죽령 옛길, 진안 데미샘, 충주호 정방사, 구리 동구릉, 춘천 남이섬



어느새 가을이 제법 깊어졌다. 가을이 시작될 때만 해도 기상청은 올 단풍이 무척 예쁠 것이라 예보했으나, 가을 가뭄이 길어지면서 단풍은 여느 해에 비해 오히려 초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쉽지만 낙엽으로나마 가을의 낭만을 즐겨보자.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거닐기 좋은 낙엽 산책길 명소 다섯 군데를 소개한다.

죽령 옛길 / 구름도 쉬어가는 오솔길 옛 정취 아직도

백두대간의 죽령(竹嶺, 689m)은 단양과 풍기를 잇는 큰 고개다. 158년에 신라의 죽죽(竹竹)이 처음으로 고갯길을 열었으니 2,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후 죽령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중앙을 연결하는 3대 관문으로 꼽혔다.

죽령을 넘는 5번 국도는 최근까지만 해도 오가는 차량으로 매우 붐볐다. 그러다 2002년 중앙고속도로를 개통하면서 길이 4.6km의 죽령터널이 뚫리게 되자, 안동·풍기·순흥의 선비들과 보부상들이 힘겹게 걷던 오르막길 30리, 내리막길 30리 꼭 하룻길의 죽령 고갯길을 이젠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5번 국도는 예전에 비해 통행량이 크게 줄었다. 그 덕분에 죽령 옛길도 옛 분위기가 많이 살아났다.

죽령 옛길은 5번 국도로 넓혀지기 전에 영남의 길손들이 걸어서 넘던 오솔길이다.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와 장사꾼들도 모두 이 길을 넘었다. 당시 고갯길 곳곳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주막과 마방이 늘어서 있어 사시사철 들끓었다.

몇 년 전 영주시에선 죽령의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해 죽령 옛길 중 일부 구간(2.5km)을 자연탐방로로 복원했다. 희방사역 앞에서 출발하는 죽령 옛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돌담만 남은 옛주막터, 느티정 주막거리, 고갯마루 주막거리 등이 반긴다. 중간중간 죽령에 얽힌 전설이 적혀 있는 안내판도 죽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장승과 솟대가 서있는 고갯마루엔 목을 축이고 요기도 할 수 있는 죽령주막도 있다.

죽령 옛길은 부드러워 가족끼리 걷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요즘 같은 계절엔 늦단풍과 낙엽을 만끽하는 데 손색이 없는 산책길이다. 희방사역 앞에서 출발해 죽령 고갯마루까지 오르는 데 1시간, 내려오는 데 40~50분을 합해 모두 2시간 정도면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다. 또 죽령 옛길 산책과 함께 부석사와 소수서원 답사도 빼놓을 수 없다. 지방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붉은 사과밭이 일품이다.

★ 여행정보

교통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 5번 국도(죽령 방면)→ 희방사역→ 죽령 옛길 입구. 수도권 기준 3시간 소요.

숙식 풍기 읍내엔 풍기인삼관광호텔(054-637-8800), 소백모텔(054-636-5681) 등 숙박업소가 많다. 풍기인삼갈비(054-635-2382)는 진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갈비탕(7,000원)이 유명하다. 부석사 입구에도 숙식할 곳이 여럿 있다. 부석사종점식당(054-633-3606)은 산채정식(6,000원)을 잘한다. 소수서원이 있는 순흥 읍내리의 순흥전통묵밥(054-634-4614)의 묵조밥(4,000원)도 유명하다.

진안 데미샘 / 晩秋가 수줍어 낯 붉힌 '섬진강의 始原'

‘호남지방의 지붕’이라는 진안고원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임실·순창·남원을 거쳐 곡성·구례를 적신 뒤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 사이를 지나 남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길이는 약 212km로 한국에서 아홉 번째로 길고, 남한에선 네 번째, 호남에선 으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랜 세월 남도 땅을 적시고 유장히 흘러온 섬진강의 발원지는 진안군 백운면 신원리 팔공산(1,151m) 북쪽 기슭을 흐르는 상추막이골의 ‘데미샘’이다. ‘데미’는 이 고을 말로 봉우리를 뜻하는 ‘더미’에서 왔다. 샘 동쪽에 솟은 작은 봉우리를 동네 주민들은 천상데미(1,080m)라 부르는데, 이는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굳이 데미샘을 풀이하자면 천상봉에 있는 옹달샘, 곧 천상샘이 되는 것이다.

데미샘으로 가려면 신암리 원신암 마을 위쪽에서 만나는 팔선정이란 정자 앞에서부터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여기서 데미샘까지는 1.19km의 오솔길. 천천히 걷는다 해도 1시간 정도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데미샘으로 이어지는 이 오솔길은 산골 소녀처럼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맑은 계류가 졸졸졸 소리 내며 흐르는 계곡을 끼고 있는 오솔길은 숱한 세월 동안 호남의 뭇 생명들을 키워온 샘물로 안내할 자격이 충분하다. 늦가을엔 오색 단풍과 휘날리는 낙엽이 천상데미봉 전체를 뒤덮는다.

천상데미 주변에서 발원한 계류는 너덜 아래를 흘러 데미샘에서 모인다. 단풍나무와 산죽으로 둘러싸인 샘 주변은 널찍한 너덜지대다. 데미샘 주변의 짙은 숲 그늘엔 긴 의자도 여럿 놓여 있어 물 한 모금 마시고 쉬면서 늦가을을 만끽하기에 더 없이 좋다.

★ 여행정보

교통 경부고속도로→ 대전·통영고속도로→ 장수 나들목→ 26번 국도→ 진안→ 30번 국도(임실 방면)→ 백운→ 742번 지방도(장수 방면)→ 신암리→ 데미샘. 수도권에서 4시간 소요.

숙식 데미샘 가는 길목인 백운면 신암리에 큰바위펜션(063-433-4978)이 있다. 식당은 마땅치 않으므로 마이산 입구에 있는 시설을 이용하는 게 좋다. 마이산 남부 시설지구에 벚꽃마을식당(063-432-2007), 금당민박(063-432-8337) 등이 있다. 식당은 대부분 민박을 겸하고 있다.

충주호 정방사 / 꼬불꼬불 산길 오르자 발밑 '눈 시린 호반'

충북의 단양·제천·충주 등에 걸쳐 있는 충주호는 ‘나라의 길’ 역할을 하던 남한강 물줄기를 막으면서 생긴 호수답게 수많은 문화재와 볼거리가 널려 있다. 조선 시대까지 제천의 중심지였던 청풍도 적지 않은 유물 유적이 있던 고을. 마을의 관문인 팔영루 앞엔 역대 관리들의 송덕비가 즐비했고, 강가 언덕엔 날아갈 듯한 한벽루(보물 제528호)가 있어 시인묵객을 불러들이곤 했다. 그러다 1985년 충주댐이 생기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자 유적들을 옮겨놓고 옛 고을을 재현한 것이 바로 청풍교 너머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

청풍문화재단지를 빠져나와 청풍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한 다음 구불구불 이어지는 호숫길을 따르면 곧 정방사(淨芳寺) 오르는 산길이 왼쪽으로 나타난다. 산허리를 감도는 꼬불꼬불한 산길도 맑은 호수와 제법 잘 어울린다.

낙엽 수북한 산길을 얼마쯤 오르면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정방사다. 가파른 바위 절벽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아담한 정방사의 보물은 호수의 시원한 풍광이다.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흩날리는 법당 뜨락에 서면 눈은 황홀해진다. 수많은 사연을 안고 흐르던 남한강이 잠시 숨을 고르는 충주호 물줄기가 발 아래 아련하다.

정방사를 빠져나와 다시 호숫길을 따라 달리면 고향 같은 산골마을들을 지나고 곧 옥순대교가 나타난다. 충주호의 속살이면서 단양팔경에도 속하는 옥순·구담봉을 다리 위에서 훔쳐보는 즐거움에 마음은 넉넉해진다. 그 가을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에 올라타면 된다.

★ 여행정보

교통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 82번 국가지원지방도(청풍 방면)→ 청풍교. 여기서 다리를 건너면 청풍문화재단지가 나온다. 정방사로 가려면 청풍교를 건너기 직전 좌회전한다. 5~10분쯤 달리면 능강교가 나오고, 여기서 좌회전하면 정방사로 올라가는 산길이다. 승용차도 절 아래 주차장까지 올라갈 수 있다. 수도권에서 2시간30분 소요.

숙식 교리관광단지의 청풍리조트(043-640-7000)는 호수 전망이 좋은 숙박지. 정방사 가는 길목에 있는 이에스리조트(02-6243-2245 www.esresort.co.kr)도 청풍호반 풍광이 일품인 유럽풍의 휴식공간이다. 이외에도 금수산모텔(043-651-523) 등 숙박시설과 민물고기 매운탕이나 토종닭 요리 등을 파는 식당이 여럿 있다.

구리 동구릉 / 이성계 잠든 능역 주변 은빛 억새 장관

서울 경기 지역에 산재한 조선 왕릉도 낙엽을 만끽하기엔 아주 제격이다. 역대 임금과 왕족들의 삶과 죽음을 살필 수 있는 문화유산인 왕릉의 큰 미덕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숲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천하의 대명당인 여주의 영릉(英陵), 세조 잠든 곳으로서 국립수목원과 연계하면 더 없이 좋은 남양주 광릉(光陵), 구중궁궐 여인들의 암투를 엿볼 수 있는 고양의 서오릉(西五陵), 정조의 개혁정신과 효심을 배우게 되는 화성 융건릉(隆健陵), 조선의 마지막을 장식한 고종과 순종을 모신 남양주 홍유릉(洪裕陵), 그리고 조선을 세운 태조가 묻힌 동구릉(東九陵) 등 모두 가을 낭만을 즐기며 산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왕릉들이다.

이 중에 구리의 동구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선시대 능역(陵域)으로 전체 면적은 웬만한 대학 캠퍼스보다도 너른 59만 평에 달한다. 1408년에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建元陵)이 들어온 뒤 문종·선조·현종·영조·헌종 등이 차례로 자리잡았는데, 능에서 능으로 이어진 숲길의 곡선이 아름다워 산책 코스로도 일품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사직의 기초를 놓은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자신의 음택을 물색케 했다고 한다. 무학대사와 함께 지금의 건원릉 자리를 둘러보고 돌아가던 태조는 한 고개에 이르러 자기가 묻힐 터를 굽어보며 “이제야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겠노라”고 말했고, 그 후 그 고개는 ‘근심을 잊는 고개’라는 이름을 얻어 망우(忘憂)고개라 불렸다. 망우리고개의 유래다. 하지만 이는 전설일 뿐이고, 실록에 의하면 건원릉 터는 태조가 세상을 떠난 뒤 하륜이 정한 것이라 한다.

한편, 동구릉의 ‘지주’인 태조 이성계의 무덤엔 가득 핀 억새가 눈길을 끄는데, 이는 고향인 함경도 영흥의 억새를 그리워한 태조의 유언을 따라 영흥에서 옮겨와 심은 것이라 전한다. 동구릉 전화 (031) 563-2909

★ 여행정보

교통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구리 나들목→ 300m→ 동구릉. 서울→ 6번 국도→ 망우로→ 망우리고개→ 구리 교문사거리(좌회전)→ 2km→ 동구릉.

숙식 동구릉 입구에 식당이 여럿 있다.

춘천 남이섬 / 떨어진 은행잎 위로 연인들 蜜語 흐르고…

1980년대 최인호의 소설을 영화화했던 ‘겨울나그네’의 촬영지로 알려지기 시작해, 2000년대에는 텔레비전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남이섬(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북한강 위에 조각배처럼 떠있는 남이섬은 원래 섬이 아니었다. 옛날엔 육지와 연결이 되어 있었고 물이 불어나는 장마철에만 섬으로 바뀌곤 했는데, 일제 강점기인 1943년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완전한 섬이 되었다. 둘레 약 6km, 넓이 13만여 평.

남이섬 선착장에서 내려 중앙로 쪽으로 몇 걸음 옮기면 왼쪽으로 잘 정돈된 묘가 반긴다. 바로 남이(南怡, 1441~1468) 장군 묘소. 남이 장군은 세조 때인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20대에 병조판서에 오르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역모를 꾸민다는 누명을 쓰고 능지처참을 당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건 가묘(假墓)다. 남이 장군은 잠시 이곳에 유배된 인연이 있었을 뿐이고, 실제 묘소는 경기도 화성 비봉면에 있다. 이 가묘는 주민들 사이에 남이 장군 무덤이라고 전해오는 돌무더기 위에 흙을 덮고 봉분을 만들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남이섬의 상징은 멋진 가로수길이다. 배에서 내리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지만 고민할 필요 없이 발길 닫는 대로 가면 된다. 그러면 이내 푸름을 잃지 않은 잣나무,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번갈아 반기며 강변 풍경의 운치를 더해준다. 은행나무 가로수 길에선 연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샛노란 은행잎이 나풀나풀 흩날린다. 강둑으로 발을 돌리면 은사시나무 숲도 반갑다. 이렇듯 남이섬은 말없이 걷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좋은 산책길이 지천이다.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많은 것도 장점이다.

남이섬은 이런 분위기 덕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소로 애용되고 있는데, 1980년대 최인호의 인기소설을 영화화한 ‘겨울나그네’가 그 중심에 있다. 40대 이후 사람들은 의대생 민우가 음대생 다혜를 겨울별장에 두고 사라졌던 앙상한 은사시나무 숲길을 아직도 기억한다.

방갈로를 지나면 ‘연인들의 숲’이다. 나무 그늘에선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연인들이 밀어를 나눌 수 있는 곳은 여기뿐만이 아니다. 중앙로의 잣나무길, ‘겨울연가’ 자전거 신의 목백합·자작나무길 등도 연인들이 걷기 좋은 산책로로 인기가 높다. 이 섬을 천천히 둘러보는 데 2~3시간 정도 걸린다. 남이섬에선 매주 다양한 이벤트도 펼쳐진다. 주차비 4,000원, 왕복 뱃삯 5,000원. 배는 수시(09:00~21:50) 운항. 자세한 정보는 남이섬 홈페이지(www.namisum.com) 참조.

★ 여행정보

숙식 남이섬의 시설은 대부분 중앙로 좌우로 늘어서 있다. 별장, 산장, 방갈로, 신한옥 등의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다. (031) 582-5118.

교통 서울→ 팔당대교→ 6번 국도→ 양수리→ 45번 국도(가평 방면)→ 46번 국도→ 청평→ 경춘주유소 4거리(우회전)→ 2.4km→ 남이섬 선착장. 또는 구리→ 46번 국도→ 미금→ 화도→ 새터삼거리→ 46번 국도→ 청평→ 경춘주유소 4거리(우회전)→ 2.4km→ 남이섬 주차장.



입력시간 : 2006/10/3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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