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은 스타의 굴욕을 즐긴다?’

안방극장에 '굴욕'이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TV 오락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들이 연예인의 ‘굴욕’적인 순간을 포착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

‘굴욕’의 사전적 정의는 ‘남에게 억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이다. 그런데 최근엔 일그러진 표정이나 민망한 장면을 순간 포착해 웃음을 자아낸다는 의미의 말로 더욱 익숙해졌다. 부정적인 측면보다 친숙하고 유쾌함을 담은 표현으로 의미가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유머 게시판을 중심으로 인기 스타들의 부끄러운 순간을 포착한 사진에 ‘XXX의 굴욕’, ‘XXX 굴욕 3종 세트’라 명명하는 등 스타들을 활용한 ‘굴욕’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굴욕’이 ‘엽기’에 이은 새로운 웃음 코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희화된 연예인의 굴욕은 이제 인터넷 세상을 뛰어 나와 TV에까지 진출해 웃음을 유발하는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우연하게 실수한 모습이 포착돼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 연예인들에겐 당혹스러운 일이겠지만 시청자들의 눈길이 사로잡는데는 이만큼 재미난 소재도 없는 모양이다.

‘연예인의 굴욕’이 방송가의 인기 소재로 떠오른 것은 케이블 음악채널 Mnet의 ‘재용이의 순결한 19’가 인터넷에 떠도는 연예인들의 굴욕 사진을 소개하면서 본격화됐다. 이 프로그램은 인터넷에 떠도는 스타들의 굴욕 사진을 테마별 순위까지 곁들여 자세하게 소개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MBC 오락프로그램 ‘황금어장’도 당당히 한 코너로 ‘굴욕의 순간’을 배치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SBS ‘X맨을 찾아라’와 ‘연애편지’ , KBS 2TV ‘여걸 식스’ 등 인기 오락프로그램이나 코너들 대부분은 ‘굴욕’을 활용한 웃음을 빠뜨리지 않는다. 스타 망가뜨리기라는 가학적 재미를 추구해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굴욕’이라는 유쾌한 포장은 재미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사용돼 가학적인 웃음의 부정적인 의미를 상당히 완화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재용이의 순결한 19’와 ‘황금어장’은 연예인의 굴욕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재용이의 순결한 19’는 연예계 굴욕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굴욕의 현장을 포착해낸다. 반면 ‘황금어장’은 연예인들이 연출한 가장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직접 설정하는 방식으로 굴욕을 강조한다. 특정 게스트의 가장 굴욕적인 장면을 뽑아내 ‘오늘의 굴욕’으로 선정하고 시청자들에게 스타의 굴욕의 순간을 ‘캡처’할 준비까지 하라고 알려주는 친절함도 보여준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생산해낸 굴욕을 보는 데 그쳤던 시청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처럼 오락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의 굴욕이 인기 소재로 부각되는 이유는 스타에 대한 팬들의 엿보기 심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해왔던 굴욕의 순간 포착을 아예 스타의 동의 아래 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점이 웃음의 업그레이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단순히 스타가 망가지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던 웃음이 ‘굴욕’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이 가세하면서 웃음의 강도를 더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KBS 예능팀의 한 연출자는 “굴욕이라 불리는 의도하지 않은 순간의 표정이나 동작이 억지로 꾸며낸 웃음보다 오락적인 요소가 더욱 강하다. 요즘처럼 프로그램 자막에 ‘굴욕’이란 단어를 많이 쓴 적도 없다. 그렇지만 굴욕은 연예인에게 부상의 위험이나 설화(舌禍)로 인한 타격을 주지 않고도 망가지는 효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인기 소재로 부각되는 듯하다”고 ‘굴욕’의 확산에 대해 분석했다.


이동현 스포츠한국 연예부 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