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칼질'이 빚어낸 정통 일식

서울 강남의 한 특일급호텔 일식당. 국내 최고급 수준의 음식을 자랑하는 이곳은 알고 보면 일본의 유명 일식당과 기술제휴 관계를 맺고 있었다. 현지에서 일본인 셰프(chefㆍ조리장)가 와 한국에 머물며 본토 일식의 조리 기술과 메뉴를 내놓고 있었던 것. 그간 남달랐던 맛과 풍미를 선보였던 것도 나름대로의 이유와 노하우가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계속돼 온 이 호텔과 일본 식당 간의 ‘밀월 관계’가 지난 10월로 끝났다. ‘주방의 일’이라 양측 간에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 일반인들이야 알 수 없는 얘기이지만 업계에서는 제법 큰 화젯거리다. 그리고 일본인 조리사는 ‘정든’ 주방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셰프 다카하시 다케후미(高橋武文). 국내 호텔 근무 경력만 10년이 넘는 그는 지난 10월 서울 오크우드호텔의 일식당 ‘아까마쯔(赤松)’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자리 이동이 뉴스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 특급호텔들 중에서도 일본인 셰프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지금 국내 일식당에서 일본인 조리사는 희소성이 있다.

그가 조리장으로 온 후 아까마쯔는 ‘달라졌다’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생선 사시미(회) 한 점의 맛과 모양부터 데코레이션, 그릇과의 조화까지···. 특히 횟감 표면에 흐르는 윤기와 여전히 살 틈에 품고 있는 듯한 수분의 촉촉함은 그의 ‘칼질’ 수준을 짐작케 한다. 또 가위바시(관자) 사이사이에 레몬을 곁들여 멋을 냈고 학꽁치 회는 돌돌 말아 변화를 준 것은 그만이 선보일 수 있는 식탁 위의 예술.

짧은 머리에 커다란 체구를 이끌고 종종 테이블을 찾는 그는 20여 개의 사시미 칼을 사용한다. 생선 껍질만 벗겨내는 칼, 직접 살점을 써는 칼 등 칼마다 용도가 다르다. “칼질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일정하게 횟감을 잘라야 한다”는 그는 “사시미는 칼질 하나에 맛이 바뀐다”고 장인의 솜씨를 강조한다.

횟감 못지않게 그의 튀김 실력도 기대 이상이다. 갓 튀겨낸 튀김 반죽이 무척 바삭하고 탄력 있다. 게살이나 튀김 속을 밀가루에 묻혀 튀겨내는 것이 아니고 얇은 만두피를 잘게 썰어 묻혀 튀겨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머리카락이 흩날리듯 튀김 반죽 표면에도 길고 가느다란 꼬리(?)들이 휘날린다. 이들 꼬리 맛은 더 고소하다.

그가 또 자신있게 내놓는 메뉴는 냄비요리. 게살이나 오리 생선 등을 냄비에 넣고 각종 야채와 함께 끓여 내는데 국물 맛이 깊고도 시원하다. 가쓰오부시(참치 말린 것)를 바탕으로 약간의 간장류와 맛술을 넣어 낸 본토 국물 맛은 한번 맛본 이들은 꼭 다시 찾는다고. 일본 도쿄의 긴자에서 가장 유명한 일식당 중 하나인 세키데이(石亭)과 오다큐 하루구 하세진, 그린호텔 등에서 일해온 36년 주방 경력의 결실이다.

때문에 이 식당은 일본인 손님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도 이름을 높이고 있다. 평균 손님의 20% 정도를 차지. 특히 이 호텔 2층에 자리한 세븐럭 카지노를 이용하는 일본인들은 정통 일식에서 오는 만족감을 표시하곤 한다. 이곳 또한 카지노처럼 호텔 직영이 아니고 아웃소싱 일식당이다. 카지노 오픈 때문에 원래 2층에 있다가 올 봄 3층으로 이전했다. 인테리어 비용으로만 10억원 가까이 썼다고 해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메뉴 스시바나 홀에서 간단히 맛볼 수 있는 식사류는 죽, 우동, 소바, 메밀 덮밥 등이 1만2,000원부터. 회와 튀김 또는 구이, 조림 또는 무침, 밥과 장국, 과일 등으로 이뤄진 점심 코스는 3만원부터, 저녁 정식류는 장어, 쇠고기 데리야키, 초밥 등이 4만원부터.

찾아가는 길 서울 강남 삼성역 도심공항타워와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 사이. (02)3466-7733




글ㆍ사진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