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기만 한 가을이 툭툭 떨어지고 찬바람에 실려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가 되면 자연 속의 생물체들은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듯, 생장을 멈추고 숨죽이며 고행의 시간을 대비한다. 그 화려했던 단풍빛도 모두 바래고, 초록의 풀들은 누런빛으로 변하여 먼저 눕고, 나뭇가지는 하나둘 자신을 비우고 앙상한 나신을 드러낸다. 소나무나 잣나무 같은 늘푸른 나무들조차도 색이 바랜다. 그래서 이즈음 꽃을 찾는 일, 더욱이 아름답게 활짝 핀 꽃을 발견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럴 때 밝고 아름다운 샛노란 꽃을 피워내는 식물이 있으니 그게 바로 털머위다.

털머위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더욱이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는 상록성이다. 그 때문에 털머위를 중부지방에서는 만나기 어렵고 제주도를 비롯한 남쪽바다 섬이나 울릉도에 가야만 볼 수 있다.

털머위는 꽃대까지 올려 다 자라면 높이가 50cm정도 된다. 뿌리 부근에서 모여 달리는 잎은 자루가 길고 모양은 콩팥처럼 생겨 세로보다 가로가 더 길다. 길이는 4~10cm이며 잘 자란 것은 15cm정도가 된다. 너비는 30cm까지도 큰다. 잎은 두껍고 색이 진하며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것이 특징. 하기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추위와 바람을 이길까. 가장자리에는 약간의 톱니가 있기도, 없기도 하다.

가을에 피기 시작하여 겨울 초입까지 볼 수 있는 꽃은 샛노란색이다. 국화과이므로 두상화서의 지음은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데 이러한 송이들이 다시 길쭉한 산방상으로 달린다.

북한에서는 털머위를 두고 말곰취라고 부르기도 한다. 곰취잎을 사람 대신 말(馬)이 먹기 때문일까? 털머위는 요즈음 야생화를 재배하는 곳에서 아주 인기가 높다. 꽃의 모양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항상 예쁜 잎을 달고 있는 상록성이고, 꽃이 흔하지 않은 시기에 꽃을 피우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노변에 줄지어 심어 놓은 털머위를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여름과 초가을까지는 잎만 보아도 눈부시다. 더욱이 볕이 드는 노변은 물론이고 내음성이 강해 숲속에서도 잘 자란다. 나무들이 줄지어 선 곳에 털머위 군락을 만들어 놓으면 어둑한 숲속이 대번에 환해지는 효과를 얻는다.

정원이나 숲속의 지피식물로서뿐만 아니라 실내에서 가꿔도 좋고 초물분재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잎에 노란색 무늬가 들어가 있는 변이종이 만들어져 거래되고 있다.

관상용 이외에 머위처럼 잎자루를 나물로 먹기도 하고 한방에서는 식물 전체를 연봉초(蓮蓬草)라 하여 약으로 쓴다. 감기와 인후염에 효과가 있고 종기가 나거나 타박상을 입었을 때에는 식물체를 찧어서 바르기도 한다. 생선의 독성에 중독되었을 때에는 즙을 내어 마신다.

몸도 마음도 잔뜩 움츠러드는 겨울 문턱에서 만나는, 눈부시게 환한 털머위 꽃송이들. 보기만 해도 먹구름이 밀려 가듯 마음이 밝아진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