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베이컨 게임’을 아시는지. 이 유명한 다작(多作) 배우와 함께 영화에 출연한 인연을 헤아리면 몇 다리 안 건너 모든 할리우드 배우가 연관된다는 데 착안한 놀이다. 20세기 전반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파리에서 이와 유사한 게임을 하려면 케빈 베이컨 자리에 누구의 이름을 올려야 할까.

거트루드 스타인(1887~1946)이 확실한 답일 것이다. 피카소·마티스 등 젊은 화가의 후원자이자 헤밍웨이의 글선생이었고 그 자신도 전위적 문장을 선뵌 문인이었던 예술계의 대모다. 그녀가 살던 플뢰뤼가(街) 27번지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거장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살롱이었다.

‘앨리스 B. 토클라스의 자서전’이란 원제의 이 책은 1933년에 출간된 거트루드의 자서전이다. 토클라스는 당시 24년간 동거 중이었던 거트루드의 동성 연인이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이 자전(自傳)은 애인을 화자로 내세워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흥미로운 글쓰기 전략은 여기서 멎지 않는다.

통상의 연대기적 서술을 과감히 물리치고 필자는 “이 얘기는 나중에 하겠다”는 문장을 매개로 생애의 시공간을 다이내믹하게 넘나든다. 매우 ‘말하기스러운’ 이런 서술은 문체와 맞물려 더욱 빛을 발한다. 거트루드는 사랑하는 이가 지닌 특유의 말투를 간파해 맛깔스러운 구어체적 문장을 창조해냈다. 덕분에 자서전은, 너무 실험적이라고 외면받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당시에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특히 거트루드의 조국 미국이 보여준 열광은 대단해서 30여 년 만의 귀국길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자국민이 예술의 중심지 파리를 호령하는 명사라는 자부심에 겨웠기 때문이리라.

그녀 나이 57세에 출판한 자서전은 지나온 세월을 샅샅이 훑는 신변잡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눈에 띈다. 1903년 평생 정착할 파리로 건너오기 전까지 성장기를 보냈던 미국 생활에 대해 이 책이 알려주는 바는 그리 많지 않다. 영특하지만 대학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던 20대 삶의 편린이 간간히 발견될 뿐. 하지만 그녀는 이국에 살면서도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점을 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녀의 작품 대다수가 영어로 쓰인 것은 물론이다. 오랜 파리 체류에도 불구하고 영 나아지지 않는 그녀의 불어 실력은 피카소를 비롯한 친구들의 단골 농담거리이기도 했다.

회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이는 이 책이 초점을 맞춘 것은 크게 두 가지인 듯싶다. 하나는 필자가 교우하고 때론 반목했던 화가·문인·학자들의 초상(肖像)이고, 다른 하나는 쓸 때는 순조로웠지만 출판은 대체로 지난했던 작품 활동에 대한 고충 토로다. 이 중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주제는 단연 전자다.

조강지처 격인 페르낭드의 여자 친구와 눈이 맞아 달아난 피카소, 혈기 넘치는 학생들과 매일 실랑이를 벌였던 미술 교사 마티스, 자원해 전선으로 간 아들을 애틋해 하는 화이트헤드의 부정(父情), 거트루드의 쓴소리에 등 돌린 후 공공연히 스승을 헐뜯었던 헤밍웨이…. 오늘날 거장의 칭호가 아깝지 않은 예술가들이 젊은 시절 파리에서 보여준 매우 사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들은 이 책이 선사하는 최고의 풍경이다. 그 이면에 공고히 다져온 문화 권력을 인물평의 방식으로 발휘하고자 하는 저자의 은근한 욕구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20세기 전반은 전통을 과감히 뿌리친 추상적 예술사조가 백화난만한 격동기였다. 1차 대전의 전화를 겪으면서 휴머니즘에 대한 회의가 깊어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 시기를 견디듯 헤쳐가던 ‘길 잃은 세대’ 예술가들에게 거트루드는 때론 길을 밝혀주고 때론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잘 짜여져 그저 편안하게 읽히는 이 책엔 그녀의 성숙한 품성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만 책 중간에 삽입된 8쪽짜리 화보는 사진의 화질이 너무 조악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게 됐다. 흠잡을 게 별로 없는 편집에 있어 ‘옥에 티’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