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에 스타 캐스팅 무용론이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올해 초부터 스타 연기자를 앞세운 드라마들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며 스타 캐스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가을로 접어들어서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특히 회당 출연료 2,000만원을 거뜬히 넘긴 MBC ‘여우야 뭐하니’의 고현정, KBS 2TV ‘황진이’의 하지원, SBS ‘무적의 낙하산 요원’의 에릭 등 고액 출연료 스타들이 주인공으로 나선 이른바 ‘2,000만원 클럽의 전쟁’이 생각보다 시시하게 막을 내리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한층 확고해지고 있다. 또한 이들의 뒤를 잇는 KBS 2TV ‘눈의 여왕’의 현빈과 성유리, MBC ‘90일, 사랑할 시간’의 김하늘, SBS ‘연인’의 김정은과 이서진 등도 저조하기 그지없는 초반 시청률 때문에 제작진으로 하여금 고액 출연료에 대한 ‘본전 생각’의 씁쓸함을 곱씹게 하고 있다. 스타의 고액 출연료로 인해 불거진 드라마의 위기를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여우야 뭐하니’, ‘황진이’, ‘무적의 낙하산 요원’ 등은 화려한 스타를 내세운 볼거리로 시청자들을 매혹시키며 스타의 힘을 유감없이 과시할 것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스타들이 나선 드라마들의 연속된 부진에서 비롯된 ‘스타 캐스팅 무용론’을 훌훌 털어낼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드라마 성공의 일반적인 잣대인 20%의 시청률을 좀처럼 넘지 못하는 양상이었다. 심지어 ‘무적의 낙하산 요원’은 10%에 미치지도 못하는 부진한 시청률로 실망감만을 안겨줬을 뿐이다. 스타 출연자들은 제작비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출연료를 받고도 그에 걸맞은 활약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결과를 보여준 셈이다. 또한 이들의 뒤를 이어 등장한 고액 출연료 스타들 역시, 비록 초반이긴 하지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스타에 투입되는 고액 출연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김현준 KBS 드라마팀장은 “스타 연기자의 출연료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돼 있다. 현재 드라마 제작 환경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재편이 필요한 현실이다. 스타 연기자가 출연한 작품들이 연달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요즘이 논의가 시작될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스타 연기자의 ‘투입 대비 산출’ 효과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가 1억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연기자 1명에게 2,000만원이 넘는 출연료를 안겨주는 것은 분명 기형적이다. 남녀 주인공에게 전체 제작비의 절반에 가까운 비용이 투입되기도 한다. 차라리 출연료가 적은 신인 연기자를 발굴하고 촬영 비용을 늘려 완성도를 높이자는 논의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예전에도 ‘스타 캐스팅 무용론’은 방송가에서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항상 탁상공론 수준을 넘지 못했다. 방송사 및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이 타당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했지만 스타 연기자의 마케팅 파워를 무시하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스타를 배제하고 신인을 발굴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스타 모시기에 급급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이 연합해 만든 한국드라마제작자협회가 스타들의 출연료 현실화를 선언했고, 몇몇 외주제작사는 자체적으로 신인 발굴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초 MBC를 통해 방영될 ‘궁 시즌2’가 연기 초보인 세븐과 신예 허이재, 박신혜 등을 주인공으로 깜짝 발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팬들의 사랑과 응원이 있기에 스타는 존재할 수 있고 가치를 지닌다. 그렇지만 최근 드라마를 통해 비춰진 현실은 팬들이 그저 스타에게 열광하기만 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스타 캐스팅 무용론’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값비싼 수업료를 낸 제작자들은 이제 그저 스타를 모신다고 팬들이 작품에 무작정 호응을 보내지 않는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이동현 스포츠한국 연예부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