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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추위에도 상앗빛 꽃달고 '비파나무'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풀과 나무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생식물이 아닌 식물들이 주변 산야에 함부로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엄격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때로는 ‘우리와 함께 지내온 세월이 얼마인데 넓은 의미의 우리 식물로 생각하면 되지’ 하고 짐짓 너그럽게 말하고 싶기도 하다. 배롱나무, 수선화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비파나무 같은 식물들이 그러하다. 물론 모든 식물이 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나름의 기준이 있긴 하다. 사람이 좋게 생각하여 곁에 두고 가꾸는 식물과 생태계가 그대로 보전되어야 하는 곳에 분포하는 식물이 그 기준에 해당한다.

비파나무의 원래 고향은 동남아시아의 따뜻한 지역이다. 예전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하며 상록성 넓은잎나무이다. 추위에 약해 중부지방에서는 낯선 식물이지만 남도나 섬 지방의 오래되고 여유 있는 집안의 정원에 가면 비파나무 한 그루쯤은 쉽게 볼 수 있다.

비파나무가 겨울의 문턱에서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바로 이즈음에 꽃이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황갈색 털이 보송한 꽃받침을 열며 상앗빛 꽃송이들을 펼쳐내기 때문이다. 해를 넘기도록 겨우내 꽃이 피는 까닭에 다소 길쭉한 공 모양의 황금빛 열매들은 이듬해 여름의 문턱에 가야 열린다.

열매는 아직 맛보지 못했으나 달면서도 상큼한 맛이 나서 맛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옛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조이 나무열매를 아껴 그 수를 헤아린 후 보초를 세워 지켰는데, 한 병사가 몰래 따먹었다고 한다. 돌아와서 비파의 열매 수가 모자람을 안 조조는 “나무가 여러 불화의 원인이 되니 베어버리라”고 말했다. 열매를 따먹은 병사는 “맛있는 열매가 달리는 나무를 왜 아깝게 베어버립니까” 라고 한마디를 했다. 그러자 조조는 이내 그 병사가 범인임을 알고 죄를 내렸다는 이야기이다. 말을 아끼라는 교훈이 비파나무의 맛있는 열매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열매는 과일로 먹을 뿐 아니라 약으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항암 성분이 있고 진통 작용을 한다. 피를 맑게 하고 가래를 삭히며 몸에 열이 많을 때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잎도 약으로 쓴다. 더위를 먹거나 설사가 나면 잎을 달여 마시면 된다. 오죽하면 '비파나무가 자라고 있는 가정에는 아픈 사람이 없다'는 속담이 있을까 보다.

목재는 조직이 치밀하지만 크게 자라지 않아 빗, 도장 등 작은 생활용품의 재료로 사용된다. 꽃은 특별한 계절에 피고, 잎은 늘 푸르며 열매는 보기에 좋고 맛있으니 정원수로도 그만이다.

비파나무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해 여러 이야기들이 있으나 열매의 모양이 악기 비파와 닮아 그렇게 명명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다른 식물들이 무성하지 않은 계절에 꽃을 피우며, 열매가 풍성하지 않은 계절에 열매를 맺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비파나무. 말 때문에 말이 많은 세상에 비파나무는 ‘화를 부를 수 있는 말을 아끼라’는 교훈을 던지며 묵묵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입력시간 : 2006/12/04 16:03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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