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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타운] 아들의 원수를 아들 삼은 모성 '해바라기'
강석범 감독作, 개과천선 건달의 가족지키기 사투… 스토리 비약은 아쉬움





'가족'은 2006년 한국영화의 화두 중 하나다. 그 특징은 감동적인 가족애를 강조하는 전형적 가족영화의 한계를 너머 가족이라는 한국 사회의 불요불급한 이슈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발언하는 대담한 시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족의 가치를 설파하는' 영화가 아니라 '가족을 가치를 되묻는'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비혈연 가족의 가능성을 제시했던 <가족의 탄생>부터 <아이스케키> <마음이····> 등의 가족영화, 기이한 엽기 가족들의 이야기 <구미호 가족>, <열혈남아>, <해바라기> 등 조폭 세계와 가족의 결합을 시도한 색다른 가족 멜로드라마까지 '가족'은 장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2006년 충무로의 키워드가 됐다. <해바라기>는 얼마 전 개봉한 <열혈남아>에 이어 다시 한번 비정한 조폭이 뒤늦게 깨닫게 되는 가족의 가치를 다룬다.

비현실적 母性에 기대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인근 조직을 평정한 타고난 싸움꾼 오태식(김래원)은 별다른 죄책감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10년 간의 수형생활 동안 태식의 세계관은 완전히 바뀐다. 자신이 살해했던 피해자의 어머니인 덕자(김해숙) 때문이다. 아들의 죽음을 따지러 왔던 덕자는 근본만은 악하지 않은 태식의 진솔한 참회를 듣고 그를 아들 삼기로 한다. 출소하자마자 태식은 양어머니 덕자가 운영하는 해바라기 식당을 찾아가 '술 먹지 않고, 싸우지 않고, 울지 않겠다'고 쓴 '희망수첩'의 문구들을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덕자의 딸 희주(허이재)와도 티격태격 정이 들어갈 무렵, 지역 내 이권사업을 기반으로 정계 진출을 노리는 야심가 조판수(김병옥)가 해바라기 가족을 압박해 온다. 새로 건설할 쇼핑몰 부지 확보를 위해 해바라기 식당을 팔라는 것. 죽은 아들과의 추억이 담긴 식당을 내줄 수 없다고 덕자가 버티자 판수는 폭력과 협박을 동원해 가족의 행복을 깨트리려 한다.

개과천선한 건달의 가족지키기 분투를 묘사하는 <해바라기>의 설정은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아들을 살해한 살인자를 용서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아들로 삼기로 한 어머니. 모성의 힘이 위대하다고들 하나 이다지 박애적인 어머니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영화의 관건은 바로 이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는 '모성의 위대함'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거칠게만 살아온 건달에게 그런 자애로운 안식처가 있다면 충분히 자신의 과거를 씻을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태식이 교도소에 있었던 10년 간 덕자와 그 사이에는 어떤 지극한 교감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는 그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있다면 덕자가 태식에게 건네준 '희망수첩'에 적힌 문구들이다.

남의 눈에 피눈물나게 하며 살았던 과거를 뉘우치고 새 삶을 살겠다는 다짐의 흔적이 그 수첩 속에 담겨 있다. 하지만 태식이 하나씩 지워가는 희망수첩의 소망들만으로 이 종교적 희생의 본질을 감지하기는 힘들다. 어머니 덕자 역을 한 김해숙은 "자식을 죽인 원수지만 그의 약함과 인간적인 모습을 보았을 때 어머니로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이외에도 <해바라기>는 몇 가지 주요 설정들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주지 않는다. 덕자는 친엄마에게 밥 먹듯 폭력을 휘둘렀던 패륜아 아들에게 어떻게 그토록 살가운 모정을 갖게 되었는지, 친아들과 일궈온 해바라기 식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호하기만 하다. 모든 건 '위대한 모성애'라는 추상적 가치에 의해 모두 봉합된다. 이런 단점이 드라마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걸리는 건 아니지만 극 중 인물들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되는 것을 종종 가로막는다.

김해숙·김래원 내면연기 돋보여

설정상의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해바라기>는 뒷짐지고 관망하게 되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드라마적 목표를 위해 배치된 극적 비약과 설명 부족은 흠이지만 영화가 전하는 감정적 파장은 만만치 않다. 죄지은 자의 죄책감과 보상심리, 불우한 과거를 짊어진 소외된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열망, 모성애 라는 보편적 감성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단순한 선악의 구도로 진행되는 영화의 목표는 명확하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으로 데뷔한 강석범 감독은 소박한 행복을 바라는 가족들의 투쟁과 그들의 꿈을 강탈하려는 악독한 안티 세력의 뚜렷한 대비를 통해 호소한다. 드라마적 허점들을 메우는 것은 물심양면의 열연을 보여준 배우들의 열연이다. 무려 20시간씩 전신에 문신을 새겨가며 철저함으로 보인 김래원의 연기는 그가 안온한 청춘스타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청춘>, <어린 신부>, 등에서 유약하고 부드러운 미남 배우의 이미지를 쌓아온 김래원은, 제 멋대로 살아왔으나 이제는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내지르고 싶은 응어리와 꿈을 안고 사는 속 깊은 인물 태식을 훌륭하게 연기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서적 진실을 체화한 강인한 어머니 덕자를 연기한 김해숙 역시 첨언이 불필요한 호연을 보여준다. <해바라기>는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군데군데 허점도 있지만 묵직한 감동의 순간도 함께 지녔다. 제목으로 삼은 해바라기의 꽃말은 '동경'과 '아쉬움'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 대한 인상 역시 그 꽃말을 닮았다. 무조건적으로, 착하게만 가족의 가치를 설교하지 않는 새로운 가족영화에 대한 '동경'과 좀 더 진일보한 화술로 관객의 감정을 설득하는 세련미에 대한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두 가지 가치를 주장하고 싶었겠으나 영화는 둘 중 하나를 버렸어야 했다.



입력시간 : 2006/12/0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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