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춤춘다공연장 연일 매진 주부·직장인도 즐겨… "비보이팀 모셔라" 광고업계선 유치전연중 지속 위해선 시스템 확보가 관건

어둠 속에서 한 젊은이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는다. 두 다리를 쭉 뻗어 빙글빙글 회전을 하는가 싶더니 순간 새처럼 공중으로 날아 오른다.

비보이 팀 ‘갬블러’가 모델로 나선 KB국민은행의 최근 CF다. 강렬한 비트의 음악도 없이 매우 느린 동작으로 펼쳐지는 이 광고는 그러나 전파를 타자마자 단숨에 화제의 광고로 떠올랐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단지 춤을 추고 있는 비보이들의 모습이 아닌 세계 최고가 되고자 노력했던 그들의 당당한 도전과 열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요즘 비보이(B-boy)는 단순히 춤을 추는 아이들이 아니다. ‘대한민국 1등을 넘어’라는 광고 카피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떴다.

한국 비보이들의 실력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이제 코흘리개도 다 아는 얘기. 세계 최대 규모 비보이 대회인 ‘Battle of the year’에서 2003년 익스프레션, 2004년 갬블러, 2005년 라스트 포 원이 정상에 올라 세계 곳곳에 태극기를 휘날리며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했다.

한낱 ‘거리 아이들’의 불량한 짓거리로 치부되던 ‘비보잉’이 국민적 자긍심의 문화 코드로 급부상한 것이다.

공연계의 구애가 가장 빠르고 확실했다. 지난해 12월부터 홍대 앞 전용극장에서 공연 중인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가 초대박 롱런 행진을 이어가면서 공연계의 비보이 열풍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11월 27일 오후 1시 20분.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이하 비사발)’ 공연장에는 공연 40분 전부터 지하 1층 공연장 문 앞에서 계단까지 100m가 넘는 줄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연일 매진 행렬. 이 공연을 기획한 최윤엽 대표는 “2007년 새해 매출 목표가 300억에 달한다”며 “기획 당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데, 국내 관객들의 열기가 예상 외로 너무 뜨거워 해외 관객들을 위한 프로모션에 별도의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라고 폭발적인 관객 반응을 전했다.

아닌 게 아니라, 공연장은 말 그래도 열광의 도가니였다. 쿵쾅거리는 리듬에 맞춰 비보이들의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가 펼쳐질 때마다 ‘캬악’, ‘너무 멋있어’, ‘어떡해’ 등의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또 다른 공연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연기획사 트라이프로가 9월 15~10월 15일 한 달간 대학로 씨어터일에 올린 ‘마리오네트’ 역시 유료관객 점유율 87%라는 흥행 대기록을 수립하며 공연 오픈 후 2주 연속 인터넷 공연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의 예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러한 호응에 힘입어 내년 1월 12일~3월 11일 충무아트홀에서 열릴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이런 인기는 비단 젊은이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11월 29일 서울 중구 정동 스타식스. PMC 프로덕션이 ‘난타’에 이어 한국을 대표할 문화 상품 2호로 야심차게 내놓은 ‘비보이 코리아’가 끝나고 삼삼오오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 사이에는 직장인 동료 김혜경(41) 씨와 박인영(38) 씨가 섞여 있었다.

“재미있었어요. 화면에서만 보던 비보이들을 눈 앞에서 본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비보이 공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공연장을 찾았다는 김 씨는 “젊은 청년들의 역동적인 춤에 가슴이 설렌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비사발’의 최윤엽 대표도 “10대 중고등학생에서 주부, 직장인은 물론 임산부와 60,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춤 마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비보이 문화는 10대의 전유물이라는 기존 관념은 이제 깨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보이의 위력에 기업들도 흥분했다. 젊은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패션용품이나 IT회사, 광고업계 뿐 아니라 은행 자동차 건설회사들까지 줄줄이 나서 ‘비보이 모시기’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기아자동차와 닛산은 각각 신차 발표를 위한 CF와 전시장에서 비보이를 내세운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스포츠화 및 의류브랜드 ‘뉴발란스’는 비보이팀‘익스프레션’과 전속 계약을 맺어 ‘마리오네트’를 비롯한 모든 공연에 뉴발란스 의상을 착용케 하고 브레이크 댄스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효성은 지난해말부터 비보이팀 ‘라스트 포 원’을 후원하며 기업 홍보를 하고 있다.

비보이는 백화점에도 진출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는 12월 비보이팀 ‘리버스 크루’를 강사로 내세워 20대 남성 고객을 겨냥한 비보이 아카데미 강좌를 신설했고,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비보이 교실을 마련했다.

정부도 비보이 알리기에 적극적이다. 한국관광공사는 12월 6~11일 서울 광장동 AX홀에서 ‘2006 코리아 인 모션’을 열고 새로운 한류붐을 조성하기 위한 공연 마케팅의 일환으로 비보이 공연을 주목, ‘마이오네트’와 ‘더 코드’를 수출용 문화상품으로 선정ㆍ홍보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의 비보이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과연 한류 상품으로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아직 유보되어 있다. KB국민은행 홍보팀 김진영 과장은 “최근 광고업계에 미인(Beauty) 아기(Baby) 동물(Beast)이 나오면 성공한다는 3B이론에 비보이가 더해져 ‘4B 마케팅’이 유행하고 있지만, 비보이 댄스를 내세운 비슷비슷한 광고가 쏟아지다 보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마련”이라며 “창작성의 차별화 노력이 결여되면 ‘비보이’ 코드에 대한 환호는 머지 않아 가라앉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많은 대중들이 비보이 상품에 환호를 보내지만, 이런 유행은 한순간에 지나가버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 특히 국내 문화계는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선진국들에 비해 ‘몰려 가는’ 현상이 심각하다. ‘비보이’라는 자원은 많지만 이를 문화 상품으로다듬는 시스템의 확립과 콘텐츠 확보가 관건이다.

‘마리오네트’의 안광용 트라이프로 대표는 비주류 문화로 성장해온 비보이 문화의 양성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춤 잘추는 형을 따라 몰려 다니는 지금과 같은 형태에선 성장에 한계가 있다. 발레 같은 다른 춤의 장르처럼 정식 교육 시스템 아래 교육을 받고 나이 들어서도 안무가나 교육자 등으로 후배 양성에 나설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PMC 김찬서 제작총괄부장은 냉정한 비즈니스의 속성을 지적하며 “비보이 춤(기술)은 매력적이나, 문화상품으로서의 수준은 이제 걸음마 단계”라면서 “결국은 잘 만든 극소수 상품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비보이 신드롬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시작부터 낮춰 바라볼 필요는 없다.

문화평론가 김동식 씨는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기존의 한류가 자본이 키운 스타 마케팅이었다면, 비보이 열풍은 맨몸으로 세계 정상에 선 비보이들에게 자본이 뒤늦게 뒷받침하고 있는 양상이어서 가능성이 보다 크게 열려 있다.”

비주류 문화에서 대중 문화의 중심으로 도약한 비보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대중들의 환호는 바로 이 자생적인 힘 때문인지 모른다. 무에서 유를 일궈낸 비보이의 다양한 진화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