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화구의 신비에 넋잃고 억새의 군무에 춤추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생화산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시칠리섬의 에트나 화산엔 기생화산이 260개쯤 이지만, 제주의 기생화산은 100여 개가 더 많은 366개나 된다. 그래서 제주는 단일 화산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생화산을 간직한 곳이 된다. 제주 사람들이 ‘오름’이라 부르는 기생화산을 빼놓고는 제주를 이해할 수 없다. 한라산이 경외의 대상이었다면, 오름은 삶의 터전이었다. 오름 주변의 풀밭에서 농사를 짓고 마소를 놓아먹였으며, 마침내 그 자락에 묻히는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균제미 빼어난 북제주 다랑쉬오름

“세상에! 오름 꼭대기에 이런 분화구가 있으리라곤 정말로 상상도 못했어요.”

구좌읍 세화리와 송당리 사이에 솟은 다랑쉬오름(382.4m)은 제주 사람들이 매우 사랑하는 오름이다. 동녘으로 뜨는 달이 좋아서일까 일명 월랑봉(月郞峰)이라고도 하는데, 그 빼어난 균제미(均齊美)는 오름이 많은 동부에서도 단연 여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주의 동부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제주 주민들이나 외지인들 모두에게 인기가 높은 오름이다.

다랑쉬라는 이름은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 하여 얻었다. 둥그런 분화구에서 쟁반 같은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달맞이는 다랑쉬오름 서쪽의 송당리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고. 남동녘 자락에는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을 당한 4·3 사건 때의 참살현장인 다랑쉬굴이 남아 있다.

산길 초입은 동쪽이다. 다랑쉬의 축소판인 아끈다랑쉬(小月郞峰) 사이의 공터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다랑쉬오름은 거의 원형인 밑지름이 1,000m에 이르는 큰 몸집에다가 산 자체 높이인 비고가 200m나 된다. 사면은 돌아가며 어느 쪽으로나 매우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산길은 화산재에다가 경사가 가파른 풀밭이라 매우 미끄럽다. 그래서 미끄러지지 않게끔 고무판을 깔아놓았다. 가끔 뒤를 돌아보면 귀엽게 생긴 아끈다랑쉬 너머로 원통형 오름인 성산 일출봉이 얼굴을 내민다.

다랑쉬오름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아끈다랑쉬오름. 마치 떠오르는 비행접시처럼 생겼다.
이렇게 20~30분쯤 오르면 문득 시야가 확 트이며 화구륜(火口輪)에 올라서게 된다. 그 너머 발아래로는 분화구가 까마득히 보인다. 오름과 더불어 평생을 살아온 제주도 사람이라 해도 반드시 감탄사를 터뜨리게 되는 풍경이다. 분화구는 산의 외형과는 반대로 깔대기 모양으로 움쑥 패어 있는데, 매우 크고 깊어 누구라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다. 다랑쉬오름의 분화구 깊이는 백록담과 같은 115m에 이르고, 원형에 가까운 바닥은 지름 30m 정도 된다.

분화구는 제주도 말로 ‘굼부리’라 한다. 제주도 전설의 거신(巨神)인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나르면서 한줌씩 집어 놓으며 간 것이 수많은 오름이 되었는데, 봉우리가 너무 도드라졌다 하여 주먹으로 탁 친 것이 푹 파여 분화구가 되었다 한다.

억새 가득 피어난 저 깊은 분화구를 바라보는 맛은 정말 감동적이다. 뜨거운 마그마가 불길을 내뿜었던 저 깊고도 깊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환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런 느낌은 다랑쉬오름 분화구를 처음 보는 외지인뿐만이 아니라, 운동 삼아 이곳을 찾은 현지인들도 마찬가지리라.

백록담과 깊이가 같은 분화구

몸은 자석에 끌리듯 저절로 분화구로 딸려간다. 그러나 이쪽 산길엔 바닥에 고무판이 없다. 따라서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가파른 경사에 줄줄 미끄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추락의 위험성이 있는 곳은 아니니 아이의 손을 잡아주면 된다. 경사면에 자란 빽빽한 억새숲을 헤치고 5~10분쯤 내려서면 드디어 분화구 바닥에 다다른다.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 특유의 현무암으로 쌓은 돌탑 몇 기가 눈길을 끈다.

분화구 바닥에서 반대쪽으로 오르는 산길도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코가 땅 끝에 닿을 정도로 만만치 않다. 발이 저절로 미끄러지는 경사를 10분 정도 오르면 반대편 화구륜에 올라서게 된다. 이제 완만한 경사의 분화구 주위를 천천히 거닐며 다랑쉬오름 주변의 이국적인 조망을 실컷 즐기다가 감탄사를 흘리는 일만 남았다.

다랑쉬오름은 주차장~화구륜~분화구~화구륜 일주~주차장 코스로 걷는다. 소요시간은 주차장에서 화구륜까지 20~30분, 분화구 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 데 30분, 화구륜을 한 바퀴 도는 데 30분, 화구륜에서 주차장까지 20분 정도로 잡으면 된다. 한 바퀴 돌아본다 해도 총 2시간 정도면 여유가 있다. 오름 주변에서 물을 구할 곳은 전혀 없다.

여행정보

별미 제주 토종돼지는 털이 검어 흑돼지라 한다. 들판에 자연 방목을 하기 때문에 비계도 씹는 촉감이 좋고 육질도 쫄깃쫄깃하다. 갖은 양념을 하여 불고기로 먹어도 좋고, 생고기를 그대로 구워 소금장에 찍어 먹을 수도 있다. 다랑쉬오름에서 승용차로 20~30분 거리의 성읍민속마을엔 나그네식당(064-787-1379) 등 흑돼지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토속음식점들이 여럿 있다. 보통 1인분(200g)에 7,000~1만원 한다.

숙식 다랑쉬 주변에는 마땅한 숙박 시설이 없으므로 승용차로 10~20분 거리의 구좌읍 해변가나 성산 일출봉 주변에서 찾으면 된다. 해오름리조트(064-783-0804), 어촌계펜션 (064-783-3075), 바다와 호수사이(064-784-4447), 무지개펜션(064-782-4449), 준하우스 (064-853-2508) 등이 있다.

교통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에서 제주공항까지 수시 운항. 부산·광주·대구에서도 각각 하루 5회 운항. △제주공항→ 97번 국가지원지방도(동부관광도로)→ 대천(좌회전)→ 구좌읍 송당리→ 다랑쉬오름<1시간30분 소요> △제주→ 구좌= 종합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좌읍 세화리까지 매일 30분 간격(05:40~21:00) 운행. 1시간10분 소요, 요금 2,900원. △구좌→ 송당리= 구좌읍 세화리에서 매일 13회(07:40~8:30) 운행. 20분 소요, 요금 900원.


글·사진/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