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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규제와 시장이 만능은 아니다 '국가의 역할'
장하성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부키 발행/ 1만6,000원



저자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대안 경제 체제를 모색해온 국제적 학자다. 자신의 이론을 한국 경제에 적용시키는 일련의 집필 작업으로 국내에서도 지명도가 높다. 특히 작년에 출간된 대담집 <쾌도난마 한국경제>(부키)는 청와대 필독서로 유명세를 타면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 번역된 <국가의 역할>은 필자의 지론이 어떤 학문적 논의에 기반하는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본격 학술서라 전작들에 비해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런 것’이라 어림잡고 있는 정도로도 일독의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을 듯싶다.

케인즈주의를 누르고 1970년대 재차 주류 경제 담론으로 부상한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터부시한다. 국가는 민간기업에 비해 시장 정보가 부족할 뿐더러 관료 집단은 국민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부패하기 쉽다는 게 큰 이유다. 외환위기 이후 IMF가 한국에 은행 및 공기업 민영화를 독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나아가 국제 경제에서 국적은 무의미하다며 개발도상국이 시장 규제를 최소화해서 초국적 기업을 유치하는 데 힘쓸 것을 종용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제언하는 바를 하나씩 꼼꼼히 논파하면서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초국적 기업은 연구개발 같은 핵심 부문을 개도국에 이전하는 예가 거의 없다. 게다가 국가 차원의 전략사업 추진이나 시장의 복잡다단한 갈등 해소를 이들에게 기대하기란 언감생심. 저자는 오히려 정부가 먼저 초국적 기업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윤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가 기업에 수세적일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슘페터가 성장 동력으로 중시하는 ‘기업가 정신’은 국가가 능히 감당할 만한 지침 아닌가 반문하기도 한다. 특히 산업구조 변동기에 변혁의 중심 주체로서 거시적 비전을 제공할 수 있는 적임자는 강력한 정책 역량을 지닌 국가라는 것. 평가는 엇갈리겠지만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벤처산업 육성을 통해 구조변동을 추진했던 것도 정부가 나섰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국가의 구실을 긍정하는 이런 입장은 자연스레 산업정책 옹호로 이어진다. 60년대 이후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가 이룬 고성장이 좋은 예다.

저자의 공세는 신자유주의가 전가의 보도로 삼는 탈규제로 이어진다. 우선 탈규제를 주도한 미국·영국이 정작 70년대 이후 보여준 경제 실적은 대단치 않다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탈규제가 단기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생산성 향상까지 이끈다는 학문적 증거는 없다고 공박한다. 오히려 시장의 실패에 대한 견제가 무뎌지면서 분배 측면에 양극화 같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편 저자는 다양한 통계를 인용하며 개도국에서 공기업이 수행하는 순기능에도 주목한다.

저자가 보기에 시장은, 모든 제도가 그렇듯, 인위적이고 상호 의존적이며 늘 실패하는 제도다. 그런데도 가치 판단이나 규제 일체를 거부하며 시장을 신성시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태도는 “지나치게 천진난만하거나, 은밀한 정치적 의제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필자의 방점은 후자 쪽에 찍혀 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시장을 평범한 제도로 자리매김한 뒤 ‘총괄적 제도’로서 국가가 적극 개입할 것을 주장하며, 이것이 바로 필자가 신자유주의를 발전적으로 극복하는 대안이라 칭한 ‘제도주의 경제학’의 단초로 보인다.

선진국 진입을 갈구하는 개도국 경제에 신자유주의가 만능인가에 대한 회의감은 갈수록 짙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판에 그치는 비판을 넘어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안을 탐구하는 필자의 작업은 진일보한 것임에 분명하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내놓은 주요 정책 하나하나에 가한 설득력 있는 비판 자체도 이 시대의 교양으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그 제도주의적 대안이란 게 30, 40년 전 한국이 경제발전을 위해 택한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가 모호하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의 핵심에 자리한 금융산업을 논외로 한 점도 아쉽다.



입력시간 : 2006/12/10 22:48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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