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가득한 와인바. 그 운치에 취하고…

‘와인바’ 하면 뭐가 생각날까. 우선 근사한 실내 인테리어가 떠오른다. 화려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모던풍으로 현대적이기도 하다. 대부분 잘 꾸며놓아 ‘괜찮다’는 얘기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고 와인바가 다 으리으리하거나 그렇게 멋있기만 하는 곳은 아니다. 투자를 많이 하더라도 엇비슷한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한편으로 너무 천편일률적일 수도 있다.

서울 청담동의 프리마호텔 뒷길. 골목 어귀에 핸드 페인팅으로, 그것도 영문 필기체로 쓰여진 ‘evening people’이란 조그만 간판 하나가 눈에 띈다. 빨간 철제 대문 옆으로 와인병이 한가득 쌓여있는 와인박스만으로 이곳이 와인바임을 짐작케 해 준다. 이름 그대로 ‘저녁때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문을 열면 앞에 보이는 것은 계단. 지하인 줄 알고 내려가려고 하면 바로 조그만 실내가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계단은 단 3개. 건물이 언덕배기 초입에 자리해 반 지하 같은 1층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길고 폭이 좁은 실내는 제법 어둡다. 커다란 홀 대신 좁은 통로를 연상하게 하는 내부는 마치 중세 유럽의 동굴 그대로다. 천장에 매달리거나 테이블에 놓여진 채로 은은하게 빛을 내는 촛불 조명만이 공간을 희미하게 밝혀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새하얀 칠이 입혀진 벽면과 천장. 여기저기 둥그런 모양으로 까맣게 그슬린 자국이 많다. 촛불 때문이다.

“꼭 선술집 같은 와인바 같아요.” 이 곳을 찾는 이들이 간혹 내뱉는 말이다. 서로 아는 사이도, 얘기를 해본 관계도 아닌데 뜻밖에도 같은 표현이 쏟아져 나온다.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진한 갈색의 테이블과 의자, 진홍색의 테이블보는 더욱 고풍스러움을 자아낸다. 마치 오래된 듯한 테이블은 생나무를 불에 태우고 또 태워 무늬와 색깔을 냈다. 대신 의자는 ‘앤티크’다. 80만원부터 150만원까지 호가하는 고가구들인데 손님들이 그대로 사용한다.

와인바가 들어선 이 빌딩은 밖에서 봐도 남다르다. 회색 시멘트 벽을 그대로 노출했고 중간중간에 쇠도 박았다. 창문 틀의 위치와 색다른 형태부터 기하학적인 구조에 지붕은 둥그렇게 씌워져 있는 것이 결코 평범하지도 않다.

건축학도 출신의 빌딩주가 직접 세웠다는 건물은 언뜻 비정형적으로 보인 때문인지 처음엔 청담동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에 시달렸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세련되고도 개성 강한 모습에 ‘가장 청담동스럽다’는 평가를 기꺼이 누리고 있다.

이 와인바 주인은 이병수 씨. 워커힐호텔에서 17년간 근무하며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가진 그는 지난해 12월 우연히 길을 지나다 이 공간을 발견, 그날 당장 계약하고 말았다. 진한 와인 향기와 지하의 습기가 배어나는 숨은 공간 속으로 들어 오는 손님은 이미 유럽 골목에 당도해 있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 그가 의도한 컨셉트. 굳이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의 뒷골목을 가지 않아도 된다.

가녀린 50개의 초가 밝히는 조명은 특히 운치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액자 틀을 떠오르게 하는 장식의 와인바와 와인 장식장, 디자이너가 직접 그림을 그려 넣고 제작한 거울, 아치 모양의 좌석 등도 고품격의 감각이 묻어난다.

근데 음식 메뉴판이 없다. 조리사가 매일매일 재료들을 사와 두세 가지 요리들을 내놓는다. 포테이토 수프, 포크 바비큐, 팬에 구운 도미, 까르보나라 등이 최근 선보인 메뉴들. 가격은 1만~2만원대인데 양 또한 주문하기 나름이다. 나라별로 100여 가지를 갖춘 와인 리스트는 글자가 헤져 있는데 그래도 볼 만하다. 3만5,000원짜리부터 10만원 미만이 주종을 이룬다.

찾아가는 길 프리마호텔 뒤 한식당 풍류관 끼고 골목 어귀. (02) 548-2343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