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생기고 다달이 앨범도 발표… 장막을 걷고 뒤늦게 '행복의 나라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자녀, 가정, 이런 단어와는 무관한 듯하던 히피 가수 한대수가 아기 아빠가 된다. 그의 아내 옥사나(36)가 벌써 임신 3개월이다. 그는 딱 60세가 되는 내년 여름쯤이면 초보 아기 아빠가 될 예정이다.

지난 9일 토요일 오전, 놀랍고 기쁜 마음에 전화를 했다. 한대수 부부는 일요일에 뉴욕으로 떠나기 위해 여행준비로 분주했다. 임신이야기를 꺼내자 예상 못한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아내 임신 때문이라면 인터뷰 못해요. 아내가 사진촬영도 싫어합니다." 솔직히 자유인 한대수라면 능히 '임신한 아내의 배를 드러내고 자랑스럽게 누드사진을 찍자'고 오버할 것으로 지레짐작했는데 이거 웬 보수적 한대수?

다짜고짜 그의 신촌 오피스텔로 갔다. "임신 소식이 알려진 후 20군데가 넘는 여성지에서 전화가 왔다. 나에 대한 관심에 감사했지만 그들은 음악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흥밋거리로 아내 임신에만 초점을 맞추니 짜증이 났다"며 "평생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던 지라 처음엔 쇼크를 받았지만 지금은 너무 기쁘다. 태어날 아기에게 사랑을 듬뿍 주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면 내 아이는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고 말문을 연다.

부인은 아들을 원하지만 그는 상관없단다. 아기의 이름도 벌써 지었다. 평소 자신이 자주 쓰는 표현 '양호하다'에서 착안한 '한양호'로 결정했다. 한대수는 "몽골계 러시아인인 아내와 한국인인 내 피가 섞인 아이는 꼬마 칭기즈칸이 될 것 같다"며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니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국수집을 차리든지 해서 아이를 기를 경제력을 갖춰야 할 텐데…"라며 벌써부터 고민이다.

한 달 사이에 2장의 신보를 발표한 음악이야기로 가보자. 군사정권의 핍박에 도망치듯 고국을 떠났던 그다. 30년 만에 돌아왔을 때 그의 활발한 음악활동을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다. 그는 작년 10월 음악인생을 정리한 13장의 CD와 1장의 DVD를 담은 '더 박스'음반으로 주목을 받았다. 음악인생을 정리하는 듯했다.

하지만 금년 10월, 영화 <라디오 스타>, <타짜>를 제작한 영화음악감독집단 복숭아 프로젝트의 장영규 음악감독이 12집 '욕망' 제작 제의를 해왔다. 신보 제작 중 <타짜>의 엔딩곡 '불나비'도 함께 취입해 화제가 되었다. 노래의 주인공인 김상국 씨가 때마침 타계했기 때문. "앞으로 5년 후면 음반 자체가 없어질 터인데 한 달에 한 번씩 신곡 앨범을 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다. 가수가 죽은 뒤 남는 건 결국 앨범밖에 없는 것 아닌가."

12집 '욕망'은 대담한 앨범 타이틀만큼이나 전위적이고 파격적인 앨범이다. 수록된 12곡 중 한대수는 5곡을 작곡했고 나머지 7곡은 복숭아팀 4명의 곡이다. "살아보니 인간은 욕망을 채우려고 버둥거리다가 죽는 것 같다. 정치인들의 권력도 일시적이고 마이클 잭슨도 잠시 물질욕은 채웠을지 모르지만 존경을 받지 못하지 않는가." 이 앨범은 인간의 성욕, 물질욕, 식욕, 명예욕, 권력욕을 염세적으로 이야기한 생소한 장르인 누드아트앨범이다. 우선 아내 옥사나의 전신누드사진으로 장식한 앨범재킷부터 심상치 않다.

왜 와이프를 누드모델로 썼는지 물었다. 간단했다. "모델이 없어서." 사진은 강원도 속초의 바닷가에서 찍었다. "좋은 사진이 많은데 거의 빠졌다. 음반사에서 겁을 내 커버사진도 먹을 뿌려 여체의 중요 부위를 가렸다. 슬픈 현실이다." 옥사나도 "왜 자기 몸매를 다 가렸냐"고 짜증을 냈다. 38선과 누드. '여체의 아름다움으로 38선을 무너뜨리자'는 메시지는 근사하지만 아직은 우리 사회가 수용하기엔 시기상조였을 것이다.

모든 음악이 리메이크판으로 부활하는 요즘, 한대수의 새로운 음악 시도는 음악정체기에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앨범의 차별성은 노래가사에 맞춰 달리한 창법이다. 불륜을 다룬 '정사'에서 시도한 가성의 하이옥타브 목소리는 아주 끈적끈적하다. 성애를 찬양한 '바닷가에'는 여인의 에로틱한 오르가슴 소리가 잘 표현되었다. 예상대로 음반에 대한 반응은 '뒤로 자빠질 만큼 좋다','이상하다' 두 갈래로 양분되고 있다. "60년대엔 아프리카 수단 수준이었던 한국은 30년 만에 일본, 미국, 독일 다음 가는 경제국가로 발전했다. 다 양호한데 관념의 문은 여전히 좁다. 내가 '장막을 거둬라'고 외쳤듯 더 열어야 한다. 우리에게 포르노만 있고 선진국엔 다 있는 누드아트는 없다."

한 달 만에 '한대수&도올 광주 라이브' 음반이 또 나왔다. 지난 4월8일 광주MBC 공개홀에서 펼친 두 사람의 합동공연 실황이다. 1997년 일본 후쿠오카, 2001년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 이어 세 번째 라이브 음반이다. 이번 라이브 음반은 마치 스튜디오 녹음처럼 밸런스와 해상력이 뛰어나 녹음 여부가 궁금했다. "앞으로 라이브를 얼마나 더 하겠나 싶어 48트랙으로 정식 녹음을 했다. 인간은 늙어가면서 목청이 가장 빨리 가는 것 같다.

로드 스튜어트, 파바로티도 목 수술을 해 이젠 노래를 못한다고 들었다." 가수와 철학자가 함께 공연을 하고 음반을 낸 것도 드문 일이다. 2장의 CD에 담긴 16곡 중 도올이 직접 작사하고 절규하듯 이야기한 '청춘과 록'은 특별한 곡이다. 헤비메탈 랩퍼로 변신한 김용옥의 가수 데뷔곡이기 때문. 국악 록의 달인 김도균의 전자기타 가야금소리에 도올이 개사해 노래한 '한 오백년'도 압권이다. '희망가'도 한대수-도울 듀오의 환상적 불협화음(?)이다. 한대수는 "내 인생과 노래의 음악적ㆍ사회적 의미를 도올 선생의 청산유수 같은 내레이션을 통해 들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함께 또 다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만족감을 표시한다.

가족과 함께 연말을 보내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며 남긴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제 아버님은 벌써 81세입니다. 그동안 속을 무던히도 썩혀 드렸는데 아내의 임신소식에 너무 좋아하십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효도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결코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한대수. 뒤늦게 데뷔 이래 가장 왕성한 음악활동은 물론 2세 탄생이라는 겹경사를 맞고보니 '가수의 인생은 자신의 노래를 따라간다'는 속설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대표곡인 '행복의 나라로'처럼 그는 결국 늘그막에 음악적으로든 가정적으로든 '행복의 나라'로 가는 것 같다. 사실 요즘 행복한 가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길고 긴 음반불황 탓에 음반 발매는 고사하고 음반 시장의 종말이 예상되는 이 시점에 한 달 간격으로 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2세까지 잉태한 그는 분명 행복한 가수임에 틀림없다.



한대수와 옥사나
12집 욕망누드 CD 자켓
한대수와 도올 라이브 음반 자켓

글·사진=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