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타이완(臺灣)에 다녀왔다. 서울서 비행기로 3시간이 채 못 되는 거리에 있는 그 나라는 우리와 같은 한자문화권인 데다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검소하고 따뜻해 마음이 서로 통하는 나라이지만 식물들은 사뭇 다르다.

상록성 활엽수들이 겨울에도 싱그럽고, 농장에 야자와 바나나를 키우고, 숲 속에는 원시적인 느낌이 가득한 나무고사리들이 무성하다. 그곳에 간 이유는 섬일엽아재나 파초일엽 같이 우리나라에서 아주 희귀한 식물들의 제대로 된 표본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재미난 사실은 그런 식물들이 타이완에선 비교적 흔하고,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흔한 온대성 식물들이 때로는 그곳에서 아주 특별하게 대우받는다는 점이었다. 이념이나 국경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적합한 자연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식물이 분명 인간보다 한 수 위의 삶을 영위하는 듯하다.

굴거리나무도 그렇게 타이완의 늘푸른 숲에 자라며 북으로 터전을 넓혀 우리나라에도 분포한다. 이 나무의 북쪽 한계는 우리나라의 내장산이며 그 의미가 각별하여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따뜻한 남해안이나 특히 제주도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더욱이 이즈음엔 길쭉한 타원형의 반질하고 단정한 잎이 붉은 줄기와 대비되어 특별한 자태로 달린다. 여기에 검은 보랏빛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는데 그 표면은 분백색을 띄어 더욱 싱그럽게 느껴진다.

굴거리나무는 대극과에 속하는 넓은 잎을 가진 늘푸른 나무이다. 잎은 어긋나지만 가지 끝에 촘촘히 달려 모여서 돌려난 듯 보인다. 길이는 12~20cm 정도. 꽃은 4, 5월께 지난해 난 잎겨드랑이에서 암꽃과 수꽃이 다르게 달린다. 꽃잎이 없는 작은 꽃이어서 꽃 자체만으로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꽃 역시 특별하다.

이러저러한 기록을 찾아보니 굴거리나무란 이름은 굿거리나무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 굿거리에 이용되었는지 자세한 근거가 없다보니 신빙성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 한자로는 굴거리나무 교양목(交讓木)이라고 하는데 새 잎이 나고 나서 먼저 달렸던 잎이 떨어져 나가므로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더러 만병초(萬病草)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잎이 진달래과에 속하는 만병초 잎과 비슷하여 생긴 오해이다. 이 때문에 괜한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월동이 가능하다면 정원수나 가로수로도 아주 좋다. 잎이며 줄기며 열매며 부족함이 없고, 새 잎과 묵은 잎이 함께 달리는 모습 또한 멋지다. 재배도 그리 까다롭지 않으니 더욱 좋다. 그늘에도 견디는 특성이 있어 중부지방에서 실내정원에 활용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외에 약재로도 쓰인다. 나무껍질과 잎을 다린 즙은 구충제와 피부 부스럼에 좋고 염료로도 쓴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굴거리나무가 이렇듯 조경적 가치가 높기에 좀 더 추운지역에서도 자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누구나 한번쯤 가지는 바람이다. 그래서 내한성이 강한 굴거리나무 종류를 선발한다면 그건 분명 우리나라 내장산이나 백양산에 있는 집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니 그 숲에 사는 나무들이 얼마나 장래성 있고 가치가 있는지 새삼 가슴이 뿌듯해진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