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 시카고의 유력 은행 퍼스트 시카고가 고객들로부터 창구 직원의 서비스 요금 3달러를 받겠다고 발표하자 여론은 들끓었다. 언론에선 ‘돈독 오른 은행’, ‘탐욕에 찬 강도’ 등 험한 비난이 쏟아졌고, 제이 레노는 투나잇 쇼에서 “1달러 더 내면 은행 직원이 음란한 얘기도 해줄 것”이라며 비꼬았다. 경쟁 은행들은 지점 방문객에게 되레 돈을 주며 손님 뺏기에 나섰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퍼스트 시카고였다. 은행 의도대로 현금 인출기를 사용하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그해 말 수익성 고객은 11%포인트, 이익은 28% 증가했다.

퍼스트 시카고의 조치에 맹렬한 역반응-10년 이상 흐른 요즘도 그렇겠지만-이 일어난 이유는 뭘까. 기업이 감히(!) 고객 이탈에 아랑곳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고객충성도 높이기’라는 금쪽 같은 경영지침을 팽개치고 이윤을 추구하겠다는, 비상식적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상식이 결국 상식을 물리친, 이 낯선 시장 풍경에 저자들이 전하고픈 메시지가 오롯이 담겨 있다. 대다수 경영자가 법칙처럼 여기는 “모든 고객은 시간이 지나면 가치있게 된다”는 명제는 사실 거짓에 가까운 신화라는 것. 경영 실무와 이론을 두루 겸비한 공저자 4명은 49개의 오해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방식으로 고객충성의 신화를 해체한다.

저자들은 먼저 고객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라고 말한다. 가져다주는 수익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따져 수익성-손익분기점-비수익성 고객으로 나눠야 한다. 심각한 문제는 수익이 0 이하인 두 유형이 전체 고객의 80%에 달하는 게 보통이란 점이다. 이들을 모두 유지하려는 노력은 저자들이 보기에 그야말로 경영상 자살행위다. 게다가 고객을 지키려는 기업의 조바심어린 노력은 무시로 외면받곤 한다. 경영자의 기대 섞인 믿음과 달리 소비자는 한번 충성했다고 영원히 충성하지도 않고, 우호적인 입소문으로 수익에 보탬을 주지도 않는다. 고객은 대체로 상황에 맞게 여러 브랜드를 상대하는 ‘일부다처식 충성’을 즐기는 존재라는 진단이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흠칫 놀랄 지적은 또 있다. 항공 마일리지 제공이나 포인트 적립 방식으로 운영되는 충성도 프로그램은 고객 유지 및 매출 증가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중도에 혜택을 줄이거나 변경할 경우 고객 이탈의 빌미가 될 수 있고, 타사 프로그램과 비교당할 경우 출혈 경쟁의 늪에 빠져들 위험이 크다. 이름표만 떼면 어떤 회사 것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일 때도 효과가 미비하다. 이 같은 단골 지키기 방식으론 고객충성도 제고는 요원하다는 게 저자들의 따끔한 충고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이에 앞서 염두에 둘 것은 책을 쓴 네 사람이 고객충성도 개념 자체의 폐기를 명시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충성 고객=단골 고객=수익성 고객이란 허구적 믿음 위에 쌓아올린 경영 기법들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정도가 집필 목표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책 말미에 제시된 ‘충성도 프로세스 모델’은 “수익성 고객이 곧 충성 고객”이란 재정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실상 “충성 고객은 단골 고객이자 곧 수익성 고객”이라는 정의 자체를 무너뜨린 셈이다. 이제부터 기업에겐 자사 상품을 자주 찾는 ‘돈 안 되는 손님’보다 뜸하게 구매해도 ‘돈이 되는 손님’이 충성도 높은 고객이다. 앞의 5단계 실천 모델이 고객을 수익 관점에서 분류해 모두 충성 고객층으로 리모델링하자는 제언이란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책의 요지를 가장 잘 뒷받침해주는 예는 4장 도입부에 소개된 터키의 슈퍼마켓 체인 탄사스의 성공 사례일 것이다. 나날이 적자가 늘어가는 회사의 경영을 맡은 토팔오루는 충성도 카드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매장 이미지를 확 바꿨다. 이어 ‘놀라운 구매자의 권리’라는 모토 아래 차별화된 정책을 펼쳤다. 일례로 자기를 취하게 했다며 반쯤 남은 술을 환불해달라는 손님의 요청도 들어줬고, 실수로 실제보다 낮은 가격으로 인쇄되었다면 그 값에 판매했다. 닫힌 계산대가 소비자가 요구한 지 3분 내에 안 열리면 15달러어치 상품을 무료로 줬다. 성공한 CEO 토팔오루는 “고객이 보여준 충성도의 결과”라고 자평했지만 필자들은 이렇게 정정한다. “(탄사스의 성공은) 충성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에 가능했다”고.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