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알다가도 모를 민족이라고 한다. 개개인의 능력은 출중하지만 뭉치면 한 사람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올림픽에서 개인 종목 금메달은 심심치 않게 얻지만 구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경우는 드물다. 혹자는 이를 두고 한국은 대륙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리다보니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주의가 더 중시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쩌다 테니스를 치고 싶거나 술 한 잔이 생각날 때면 나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있는 한인 술집에 종종 들른다. 이제는 제법 안면을 터놓아 사장 및 주방장과는 허물없이 술잔을 들이키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사이가 되었다. 사장은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리지만 지역 한인 커뮤니티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어 그곳의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줬다. 그 덕에 지역 한인사회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까지 알게 되었다.

오클랜드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있는 데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서 커뮤니티 활동이 현저히 부진하고 동포들 간에 유대가 적다고 술집 사장은 토로했다. 때문에 한인들은 미국에서 각자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과 베트남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서로 돕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인들은 어떤가. 오히려 같은 한인들을 비방하고, 심지어 이용하려는 경향까지 나타내 상호불신의 벽만 높이 쌓여간다고 한다.

그 전에도 종종 듣던 말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한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그들과 자주 접촉하는 사람한테 들으니 마음이 더 씁쓸했다. 한인 술집 사장은 이곳에 터전을 잡고 싶어하는 유학생이나 이민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젠 젊은 유학생들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유학생들이 한인 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하고, 함께 고민하고,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본다. 기성세대의 높은 단절의 벽을 개방적인 젊은 세대가 노력하면 깰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규오 통신원(미국 버클리 거주)


한국은 필리핀보다 가난한 나라?

아시아에 한류 바람이 여전하고, 한국의 첨단 IT기술이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한국인들은 이젠 웬만한 아시아인들도 한국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호주, 그중에서도 북동부 퀸즐랜드주의 투움바(toowoomba)시에 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나는 지난해 11월부터 투움바에서 필리핀 출신의 아줌마가 주인인 집에서 홈스테이하고 있다. 숙박비가 싸서 큰 부담없이 머물 수 있어 늘 감사해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필리핀 아줌마가 “내년쯤에 한국을 한번 관광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동방예의지국 출신답게 난 “언제나 환영합니다. 기꺼이 한국에 놀러 오세요”라고 답했다

그 다음이 예상밖이었다. 필리핀 아줌마는 “한국은 물가가 싸기 때문에 큰 비용 들이지 않고도 놀러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고. 속으로 기분 나빴다. 덧붙인 말도 가히 예술급이다. 한국은 어쩌고 저쩌구 뭐라 말하는데,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구요?”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철자를 또박또박 말했다. ‘p…o…o…r', ‘p…o…o…r'.

한마디로 한국이 필리핀보다 가난하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또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필리핀이 그저 한국보다 못 산다고만 알았지, 한국을 잘 모르는 필리핀의 실상에 대해 나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 것이었다. 한국이 필리핀보다 가난하다는 필리핀 아줌마의 고정관념에 대해서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서투른 영어 실력을 총동원하여 “필리핀인들은 1달러로 식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한 끼 식사는커녕 과자 한 봉지밖에 못 산다”고 설명해줬다. 하지만 그녀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필리핀 아줌마는 호주에서 21년을 살았다며 지금은 호주 시민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식구들은 모두 필리핀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예 호주인으로 행세했다. 그녀의 친구는 내게 호주가 좋다고 생각하면 그냥 여기서 살라고 충고했다. 호주인이랑 결혼하면 바로 시민권이 나오기 때문이라나. “난 한국에 사귀는 남자 친구가 있으며 한국이 더 좋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필리핀인은 “그래도 호주가 한국보다 더 낫다”며 “호주인과 먼저 결혼해서 시민권을 얻고, 그 다음에 한국 남자 친구와 결혼하면 되지 않느냐”고 묘안(?)을 제시했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궤변? 내가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이후 필리핀 아줌마들에 대한 좋은 인상이 싹 가셨다.

그들은 호주 시민으로 사는 것이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출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그런 이미지를 그들에게 심어주지는 않았을까? 호주 시민권을 얻으려고 아둥바둥하는 한국인으로 말이다. 자괴감이 들었다. 한국이 좋은 나라 라는 것을 그들에게 인식시키려고 열심히 살았는데, 모든 게 헛수고로 끝난 꼴이었다.

완전히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한국에 있을 땐 몰랐는데 호주에서 그런 대접받으니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모두가 더 노력해야겠다는 걸 절감했다. 캐나다에 사는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도 현지에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류는 아직 걸음마다. 한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여전히 이렇게 많다는 걸 우리 국민들은 제대로 알까. 요즘 난 매일 다짐한다.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아야겠다’고. 한류는 스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이다.

지현주 통신원(호주 누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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