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영화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에는 몇 가지 공식화된 규범들이 있다. 전편보다 더 세고, 크고, 화끈하게 볼거리를 강화할 것, 성공한 오리지널과의 차별화를 꾀할 것, 새로운 얼굴들을 등장시킬 것 등등.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요즘처럼 속편 제작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이 같은 규범들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은 주변에 널려 있다.

'조폭코미디'라는 독특한 내수용 트렌드를 만들었던 <조폭마누라> 시리즈의 최신판 <조폭마누라3>도 이런 원칙들에 기반해 또 한번의 조폭코미디 붐을 노리고 있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했던 <조폭마누라2>의 참패가 부담이 됐던 탓인지, <조폭마누라3>는 '새 출발'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모든 걸 뜯어고쳤다. 감독은 <조폭마누라> 1편의 조진규 감독이 컴백했고 홍콩 여배우 서기를 캐스팅해 한층 무게감을 실었다.

한국과 홍콩을 왕래하는 로케이션으로 볼거리를 담보했고 '액션'과 '코미디'라는 성공의 열쇠를 실현시키려는 노력들도 곳곳에 묻어있다.

<조폭마누라>의 환골탈태

기존 시리즈가 무시무시한 조폭마누라와 맺어져 수난을 당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려 했다면 <조폭마누라3>는 지리멸렬한 삼류 조폭이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홍콩산(産) 조폭마누라를 맞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홍콩 최대 조직 중 하나인 화백련 보스 임 회장(적룡)의 딸 아령(서기)은 칼 솜씨와 무술 능력이 뛰어난 미모의 재원(?)이다.

아령의 돌출행동에 의해 좌국충(노혜광) 조직과 세력 다툼이 벌어지자 임 회장은 아령을 대한민국 서울로 피신시킨다. 아령의 엄청난 배경을 전혀 모르고 그녀의 신변보호를 맡은 사람은 한국 조직 동방파 넘버3 기철(이범수)과 그 수하인 꽁치(오지호), 도미(조희봉). 조선족 처녀 연희(현영)를 통역사로 구한 기철 일행은 티격태격하면서 아령과 국제적 동거에 들어간다. 한편, 세력 다툼을 빌미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좌국충은 임 회장에게 테러를 가하고 용병을 보내 아령의 목숨을 노린다. <조폭마누라3>는 홍콩에서 '조폭마누라'만 수입한 게 아니다.

이국적인 조폭마누라로 분위기을 일신하는 동시에 80년대 말 조폭영화의 붐을 일으켰던 홍콩영화의 노하우까지 함께 들어오려 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영화를 보고 나면 홍콩 누아르와 한국 조폭코미디라는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감상한 듯한 착각이 든다. 조직 간 암투가 벌어지는 홍콩 촬영분은 전형적인 홍콩 누아르를 연상시키고 기철 일행과 아령의 동거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유머, 동방파와 라이벌 조직의 힘겨루기에 끼어든 아령의 대활약은 조폭코미디의 전형적 웃음 코드를 따라간다. 언어와 배우만 다른 게 아니라 화면의 질감과 연출 스타일, 분위기가 완전히 상반돼 다른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비장미마저 느껴지는 홍콩 조폭 영화의 특성과 느슨하게 풀어진 한국 조폭 영화의 색깔을 한 영화에 농축시킨 셈이다. <조폭마누라3>가 이처럼 홍콩과 한국을 오가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조폭마누라>가 얻은 국제적 명성 때문이다.

홍콩과 중국 등지에서 '조폭마누라'는 히트상품으로 불릴 만큼 인기를 얻은 캐릭터였고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권이 팔렸을 만큼 인터내셔널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행인 것은 상반돼 보이는 두 나라 영화 스타일의 동거가 아령과 기철의 동거처럼 마냥 그렇게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조폭마누라로 발탁된 홍콩 배우 서기의 존재감도 오리지널 시리즈의 신은경에 비해 뒤지지 않을 만큼 묵직하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라는 우려는 현영이 연기하는 조선족 통역사 연희를 메신저로 투입함으로써 비교적 매끄럽게 해소된다.

영화적 재미에 '올인'

'혁신하는 시리즈'라는 모토를 내세웠지만 <조폭마누라3>는 영화적 재미에 ‘올인’한 어쩔 수 없는 오락영화다.

‘홍콩산 조폭마누라’라는 지역적 거리감을 덜어내기 위해 아령에게 한국인 어머니가 있었다는 출생의 비화를 삽입했고, 아령의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동 코드, 액션-코미디 라인에 덜 떨어진 한국 조폭 기철과의 로맨스를 또 하나의 기둥 플롯으로 끌고 나간다. 한국과 홍콩영화의 특징, 다양한 장르, 주연·조연 배우들의 특성을 한데 뭉뚱그려 대중영화의 재미를 살려낸 조진규 감독의 솜씨는 그럴 듯하다.

시리즈를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제목과 '조폭마누라'라는 캐릭터를 제외하고 모든 걸 바꾼 새 시리즈는 관객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모든 걸 재구성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걸 한 영화에 담아내려는 욕심이 과해 중심이 흔들리는 단점도 있다. 액션과 언어 유희, 자학 개그, 화장실 유머 등 웃음과 볼거리를 위해 필요한 요소들은 선악을 논하지 않고 모두 등장시킨다. '저질'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는 성적 농담도 스스럼없다.

그런 이유에선지 '성 역할의 전도'라는 <조폭마누라> 시리즈만의 독특한 특성은 많이 약화됐다. 별볼일없는 한국의 삼류 조폭들을 평정하는 홍콩아가씨의 당당함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그 역시 기철의 인간적이고 헌신적인 사랑 앞에 무너지고 마는 어쩔 수 없는 여심(女心)으로 묘사될 뿐이다.

몇몇 장면들에서 보여지는 무리한 설정과 반복되는 유머의 코드는 거북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목표는 분명하지 않은가? 500만 명이 넘는 대박 성공을 거뒀던 원작 시리즈의 명성을 회복하겠다는 것. <조폭마누라3>는 그 굳은 의지에 의해 모든 게 지배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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