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착하고 아름답기 위해서

이 책은 아주 두껍고 무척 비싸다. 그러나 단언컨대 결코, 충분히는 아니다. 인터넷 서점의 독자 평점은 거의 모두 만점에 가깝다. 그러나 짐짓 별다섯 개로는 어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감히 평점을 매긴다는 자체가 왠지 송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인 황인숙은 어느 글에서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치 전도사처럼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했다고 쓰고 있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고종석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사전이나 성경처럼 늘 곁에 두고 수시로 들춰보며 조금씩 곱씹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밖에도 익히이책의 파괴력(?)에대해 들어온 터라 나는 선입견을 떨치고 선뜻 책장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어렵게 첫 페이지를 펼쳐 들었을 때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선뜻 덮어버리기란 더욱 어려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준식 옥중서한>을 완독하는 데 나는 무려 4개월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물론 어느 독자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고 ‘서준식 폐인’이 되어 단 일주일 만에 독파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완독에 4개월이 걸렸든 일주일이 걸렸든 그것은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다.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찬, 자그마치 83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책이, 이 길고 긴 글이 장장 17년에 걸쳐 씌어졌다는 것. 이 글이 이데올로기 대립의 희생양으로 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자신의 피붙이들에게 고작 한 달에 몇 번 기회를 얻어 간신히 쓸 수 있었던 편지라는 것.

그 사이 스물다섯 살의 청년은 마흔한 살의 중년이 되었다는 것. 한 인간의 사상과 신념, 갈등과 좌절, 사랑과 희망이 오롯이 이 편지들에 담겨 있다는 것. 별의 개수를 매기는 독자 평점이라니,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야말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는, 더없이 절절하고 지극한 한영혼의 보고서인 것이다.

편지는 관제엽서나 봉함엽서에 씌어졌음에도 한번에 보통 원고지 십수 매분량을 헤아린다. 추위에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혹은 찜통더위 속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파지(破紙)를 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므로 한 글 자 한 글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써내려간 편지. 물론 요시찰 정치범의 편지는 빠짐없이 검열을 당했고, 발송이 불허되거나 아예 편지쓰기 자체가 금지되기도 했다.

이책을 완독하는데 내가 4개월의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것은 글의 내용이 난해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서준식의 편지를 읽는 내내 나는 그가‘차마 쓰지 못한 글’까지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편지에는 씌어있지 않았다 - 일본에 계신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의 충격과 비통함이, 체포된 후 몇 년 동안 전향을 강요하는 살인적인 고문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무섭고 괴로운 악몽을 꾸다 소스라치며 깨어난 차디찬 독방에서의 어느 새벽이, 수십 일간의 단식투쟁으로 목숨이 위태로웠던 절체절명의 순간이, 감옥 안에서 한 여인을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고 또 헤어지고만 상세한 사연이, 그 눈물겨운 17년간의 시간들이, 모두, 온전히, 차마 씌어있지는 않았다.

하여 편지의 행간에서 그것을 알아채고 느끼고 되새기는 일은 무척이나 아프고 슬프고 힘겨운 일이었다. 반면 고통 대신 그가 편지에 써 내려간 소박한 기쁨들 - 반가운 얼굴들과 나눈 짧은 면회의 감회, 가족친지들의 안녕과 발전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기원하는 바람, 어느 일요일 오후 그해 처음으로 보았다는 나비 한 마리, 삭막한 감옥에서 그래도 매일 한 시간씩 아코디언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희소식 등은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독서체험이었다. 감옥안에서의 자신을 다잡고 공부와 성찰에 더욱 정진하기 위해 일주일 요일의 이름을 ‘정의요일’, ‘사랑요일’, ‘집중요일’, ‘용기요일’, ‘인내요일’, ‘절제요일’, ‘소박요일’로 바꿔버렸다는 대목 에서는 아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걸음마조차 떼지 못했던 일본의 조카가 장성해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한국음악을 소개하고 굿거리장단이며 세마치장단을 매뉴얼처럼 설명해 써 보낸 편지에는‘와, 졌다’ 라는 기분이 들어 또 쉽게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감옥에서 열 번째로 맞이하는 겨울의 목표가 ‘동상 걸리지 않기’라는 구절에, ‘사상전향서’인지‘준법서약서’인지 말로만 들어봤던 그 종이쪼가리 한 장의 엄청난 무게를 실감하게 되어, ‘이런 고집쟁이, 이렇게까지 가족들을 속상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주제 넘는 신경질이 뻗쳐 책을 덮어버리고 몇 날 며칠 거들떠보지 않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감옥에 있던 시절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종종‘반공글짓기대회’에서 상장을 받아오기까지 했던 것이다.

좋은 글을 읽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서준식의 바람 역시 너무나도 극진한 것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직업 글쟁이로서 부끄러움을 넘어 자괴감을 느낀 적도 여러 차례였다.

거장이나 대가가 되기에는 어림없는 재능이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습작을 하면 신춘문예 등단 정도는 가능한 신인 소설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의 조심스러운 기대와 망설임. 배움이 짧은 사촌동생들에게 수도 없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좋은 책이란 그럴듯한 미사 여구를 늘어놓은 책이 아니라, 오직‘착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씌어져 읽는 사람에게도‘착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라는 진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는 책이라는 그의 일갈. 나는 읽기를 멈추고 어둠 속에서 한동안 웅크린 채 숨을 골라야 했다.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창 밖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가 말하는‘착하고 아름답게 살기’가 너무도 버겁게 느껴져 그의 글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럴수록 더욱 간절히 그를 꼭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만나고 싶다. 직접 그의 손을 잡아보고 싶다. 직접 그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 감옥을 나와 얻은 두 딸을 그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오래도록 긴 긴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리고 카레. 편지 속에서 그는 몇 번이나 어린 시절부터 광적으로 좋아했다는 카레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에게 카레를 만들어주고 싶다. 제일 좋은 재료들을 엄선해 정성껏 솜씨를 부려 더없이 푸짐하고 맛있는 카레라이스를 그에게 대접하고 싶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그에게만은 아직 나의 글을 보여줄 용기가 나지 않기에, 한 순간이나마 진정 착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것만 같다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