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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은 혁명, 1848
역사를 전진시킨 '실패한 혁명'
볼프강 J. 몸젠 지음, 최호근 옮김, 푸른역사 발행, 2만원.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떠돌아다니고 있다”며 마르크스가 벽두부터 <공산당 선언>을 외쳤던 1848년은 유럽이 다시금 혁명의 열병에 달뜬 해였다. 학생·노동자 무리에 국민병까지 가세해 루이 필립을 왕좌에서 끌어내린 2월의 프랑스를 필두로 혁명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심하진 않았지만 에스파냐, 덴마크, 루마니아, 아일랜드, 그리스 심지어 영국에도 변혁의 더운 기운이 전해졌다. 열풍은 이듬해까지 계속되면서 나폴레옹 몰락 이후 보수로 회귀한 유럽 정치 질서를 뿌리째 흔들었다.

독일 좌파 역사학자 볼프강 J. 몸젠(1930~2004)은 당시 독일 연방(현재의 독일-오스트리아 지역을 포괄하는, 연방국가 간 느슨한 결합)을 중심으로 ‘1848 혁명’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막스 베버 연구로도 일가를 이룬 이 사학자의 번역서(원서는 1999년 출간)는 1848 혁명의 세계사적 중요성에 비해 국내에 관련 서적이 적은 터라 더욱 반갑다. 덧붙이자면 몸젠가(家)는 독일 역사학계의 명문이다. 저자의 조부인 테어도어 몸젠은 고대 로마사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대학자이고, 부친 빌헬름 몸젠 또한 저명한 역사학자다. 나치즘 연구로 명성을 얻은 한스 몸젠은 저자와 쌍둥이 형제다.

제목처럼 저자는 1848 혁명을 ‘원치 않은 혁명’으로 규정한다. 기존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자는, 지극히 목적 지향적이자 의지적 행위를, 원치도 않으면서 수행했다? 이 아이러니의 주체로 지목되는 계급은 중상류 부르주아지. 저자가 ‘(온건) 자유주의자’로 통칭하는 이들은 유산(有産) 계급이나 자유주의적 귀족으로 구성돼 있다. 왕정 복고와 함께 득세한 전통 귀족 세력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자신들의 기득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이들은 혁명 파트너였던 ‘급진 민주주의자’들을 가까이할 수도, 혁명 대상이었던 보수주의 세력을 멀리할 수도 없었다. 폭발적 변혁을 저어하며 타협을 도모했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기회주의적 처신은 1848 혁명이 외양상 실패로 저문 원인이 됐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급진 민주주의자들을 진정한 혁명정신의 담지자로 여기는 건 아니다. 하층 부르주아, 소규모 제조업자, 학생 등 지식인 일부를 아우른 이 급진 세력은 무장투쟁까지 불사하는 실천력을 지녔지만 이들이 꾀하던 ‘민주주의’란 전통적 사회의 전복이라기보단 재생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실 당시 급진전하던 산업화에서 새로운 사회 질서를 전망했던 무리는 마르크스를 비롯한 소수 사회주의자에 지나지 않았다. 수공업자·제조업자 등 급진파의 주요 세력에게 산업사회는 그들의 처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디스토피아였다. 이들이 바라던 것은 모든 직업종사자에게 전통에 상응하는 보수가 지급되도록 국가가 신경 써주는 ‘도덕 경제’로의 회귀였다.

프랑스 2월혁명의 바통을 이어받아 독일 연방에선 연방국마다 ‘3월 내각’과 국민회의(입헌 의회)가 들어선다. 가열차게 나아가던 혁명은 10월 빈에서 일어난 봉기가 황제의 군대에게 무참히 진압되면서 변곡점을 찍게 된다. 기력을 찾은 반(反)혁명 구세력의 눈치 살피기에 급급하던 국민회의는 정치적 대실책을 거듭하며 지리멸렬한다. 급진 민주주의 세력은 그즈음 발흥한 민족주의 이념을 적극 수용해 ‘헌법으로 통치되는 민족국가’를 표방하며 무장봉기에 나서지만 1849년 바덴에서의 패배를 끝으로 혁명의 종언을 고한다. 다시금 아이러니한 것은 해방운동의 동력이었던 민족주의가 이후 급속히 근대국가의 꼴을 갖춘 유럽 각국이 제국주의라는 억압적 행태를 보이는데 있어 이념적 근간이 됐다는 점이다.

홈스봄은 1848 혁명을 역저 <혁명의 시대>의 종점으로 삼고 “인류 역사상 세계 혁명에 가장 근접했던 시대”로 규정했다. 몸젠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견 실패한 듯 보이지만 입헌주의 정부 형태를 온존시키는 등 역사의 수레바퀴를 전진시킨 사건이며 나아가 “유럽의 평화로운 신질서에 관한 원대한 비전”의 원천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유럽연합(EU)이 기대 이상으로 제몫을 해내고 있는 오늘날을 “자유로운 민족국가들로 이뤄진 평화로운 유럽”이라는 ‘위대한 이상’의 발현이라 여기는 저자의 에필로그를 읽다보면 유럽사에 있어 1848 혁명이 지니는 무게를 새삼 깨닫게 된다.



입력시간 : 2007/01/29 14:26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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