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유학 와서 산 지 7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변에 결혼하는 동료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들의 신분이 학생이다보니 다들 혼인 신고만 하고 결혼식은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침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던 중 결혼식장의 일거리가 있어 1년간 근무했다. 덕분에 예식장 세팅서 음식 서빙까지 결혼식 전반을 경험했다. 일본 문화도 접하고, 돈도 벌고, 푸짐한 호텔 점심까지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 체면 불구하고 긴 기간 일했다. 그때 느낀 점은 일본의 결혼 문화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일본인 친구나 지인들에게서 청첩장을 받을 수도 있을 터이니 그들의 결혼 문화를 알아두는 것도 유익할 듯싶다.

청첩장

한국에서는 결혼식 초청 청첩장을 친척, 친구 등 웬만한 지인들에게 모두 돌린다. 평소에 뿌린 만큼 거두기(?) 위함이요, 혼사를 널리 알리려는 목적일 게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다르다. 결혼식에는 가족 이외에는 참석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양가 부모와 아주 친한 친구 한두 명만 참석해서 예식을 올린다.

대신 2차 피로연 자리에 직장 동료나 친지, 친구들을 초대한다. 청첩장(초대장)을 받았다면, 결혼식이 아닌 2차 피로연 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때 꼭 참석할지 여부를 되도록 빨리 알려줘야 한다. 정해진 인원 수에 맞춰서 좌석과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하객 의상

가끔 주말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여자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엔 무슨 술집 분위기를 풍기는 옷차림인데, 피로연 때 여자 친구들이 입는 옷이다. 그들은 대부분 기모노나 드레스를 입는다. 신부를 생각해서 순백의 색깔은 피해야 한다. 대부분 드레스에 숄을 걸치는 스타일이다. 머리 모양은 미용실에서 돈 깨나 들여야 한다. 가끔 그냥 화사한 정장을 입고 참석하는 사람도 있다. 남자는 대개 양복을 입는다.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도 마땅히 입고 갈 옷이 없어 포기하는 친구들을 봤다.

피로연 음식

피로연장에 도착하면 자신의 이름이 적힌 표식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 신랑 신부가 미리 명단을 보고 좌석 배치를 정해서 호텔측에 알려준다. 대개 그룹별로 앉는다. 초대장에 적힌 표시(매화, 난초 등)에 따라 테이블에 앉고 신랑 신부를 맞이하면 된다. 음식은 보통 뷔페식이다.

일반적인 뷔페가 아닌 중국식이라고 해야 할까. 원탁 가운데에 놓인 큰 접시에 음식이 나오면 덜어 먹는다. 그러니 음식의 수를 확인해 가며 먹어야 한다. 예를 들면 갯수가 적은 음식(튀김 등)은 1인당 1~2개씩 정해져 있어서 만약 내가 맛있다고 3개를 집어버리면 다른 사람이 못 먹게 될 수도 있다. 한 바퀴를 돈 후에도 음식이 남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먹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한 후 먹는다.

신랑 신부

신부는 이날 3, 4차례 옷을 갈아입는다. 파티용 드레스, 결혼식용 기모노, 웨딩드레스, 다시 파티복 정도로 갈아입는데 이걸 ‘이로나오시’라고 말한다. 적절한 시기에 피로연장 테이블을 돌면서 촛불을 밝히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신부 친구들이 대표로 편지를 읽는다. 이때 감동 받아서 우는 신부들도 간혹 있고 혹은 편지 내용이 재미 있어 하객들과 함께 웃기도 한다.

부모님께 꽃다발 전달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신부가 3kg 정도 되는 꽃다발을 가져와서 준비한 편지와 함께 양가 어머님께 드린다. 그동안 키워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는 인사말도 함께 곁들인다. 3kg은 신생아 무게를 의미한다. 이 순간이 오면 신부와 어머니는 물론이고, 도우미들도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감동적인 장면이 끝나면 예식도 마무리된다. 피로연까지 2~3시간 걸린다. 하객이 집으로 돌아갈 때는 테이블에 있는 장식용 생화는 물론 음식 역시 싸달라고 해서 가져 가도 된다. 기쁜 날의 음식이라 많이 나눠 먹을수록 좋다고 한다. 꽃도 마찬가지다. 피로연이 끝나면 분위기에 따라서 젊은 사람들끼리 3차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는데 대개 가라오케로 간다.

이상이 일본의 결혼식 풍경이다. 하객들은 축의금으로 2만-3만엔을 낸다. 비싸지만, 피로연에서 먹는 음식 값이 1인당 1만5,000엔이고 음료수 비용까지 포함하면 1인당 2만엔꼴로 대접을 받기 때문에 그 정도는 감수한다. 일본인들이 결혼식을 해외에서 올리거나, 아니면 혼인 신고만 하고 예식을 올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같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결혼식 비용으로 3,000만원이 들어가므로 부담이 큰 것이다.

요즘 결혼을 앞둔 우리 회사 동기도 매일 굶다시피하면서 결혼식 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의문도 들지만, 남녀가 가정을 이루는 경사스러운 날에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것이 바로 일본의 문화이고 풍습인 것 같다.

박신영 통신원 (일본 츠쿠바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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