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색과 구조, 완벽한 고려시대 목조건축의 백미절 입구 수덕여관엔 이응로 화백의 체취 아직도…

백두대간의 속리산(1,058m)에서 뻗어 나온 금북정맥이 서해에서 세력을 다하기 전에 정성들여 빚은 산이 바로 가야산(伽倻山, 678m)이다. 비록 표고는 600m급으로 낮은 편이지만, 서해 가까운 내포평야에 솟았기 때문에 상대적 고도가 높아 보인다. 그래서 가야산은 오래 전부터 내포의 중심 역할을 맡아왔다. 신라 때 나라에서는 산 동쪽에 가야사를 짓고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 시대까지도 덕산 현감이 이곳에서 봄·가을로 제를 올리기도 했다.

2대에 걸쳐서 왕이 나온다는 명당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가야산 자락에는 100여 개의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예산 쪽에는 가야사와 수덕사가 유명했다. 현재 폐사된 가야사(伽倻寺)는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때는 인근의 수덕사보다 규모가 큰 절집이었다 한다. 그 절터는 예부터 2대에 걸쳐서 왕손이 나온다는 명당으로 알려져 왔다.

젊은 시절 안동 김씨의 세도에 밀려 파락호 시절을 보낸 야심가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재산을 처분한 2만 냥의 반을 주지에게 주어 불을 질러 폐사를 만들고는 아버지 남연군(南延君, ?~1822) 묘를 이곳에 옮기고 때를 기다렸다. 7년 후 대원군은 차남 재황(載晃)을 얻었고,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아들이 실제로 왕이 되자, 이하응은 불태운 가야사에 사죄하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1865년 남연군묘 맞은편에 보덕사(報德寺)를 세우고 원당 사찰로 삼았다. 당시 이장 때 썼던 상여는 산 아래 남은들 주민들에게 선물했다. 이 남은들상여(중요민속자료 제31호)는 현재 남연군묘 옆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1868년 4월엔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Oppert)의 남연군묘 도굴사건이 터졌다. 그는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하자 대원군과 흥정을 위하여 남연군의 시신과 부장품을 도굴하려 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대원군의 쇄국양이 정책은 강화되었고, 천주교 탄압도 심해졌다.

가야산 기슭의 남연군묘는 2대에 걸쳐서 왕이 나온다는 명당이다. / 수덕사 대웅전 내부.<오른쪽 부터>
단아한 미학이 돋보이는 수덕사 대웅전

가야산을 빠져나와 승용차로 10여 분만 달리면 수덕사(修德寺)다. 일주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만나는 수덕여관은 우리 미술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드높인 화가 고암(顧菴) 이응로(1904~1989) 선생 사적지. 이 여관은 이응로가 1944년 구입하여 한국전쟁 때 피난처로도 사용하였으며,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으로 옮긴 곳이기도 하다.

또한 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수덕여관 앞의 바위조각은 69년 동백림 사건으로 귀국했을 때 고향산천에서 삼라만상의 성함과 쇠함을 추상화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수덕사에는 조선 후기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중흥조로 출현하여 무애의 생활 속에서 전등의 법맥을 이으며 선(禪)불교를 진작시킨 경허 성우(鏡虛 性牛, 1849~1912)선사, 경허의 제자로서 스승의 선지를 충실히 계승하여 선풍을 진작시킨 만공 월면(滿空 月面, 1871~1946)선사가 덕숭산처럼 우뚝 솟아 있다.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꼽히는 수덕사 대웅전은 세 건물 중 유일하게 건립연도(1308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건물이다. 고건축 전문가들은 수덕사 대웅전을 볼 때 몇 가지 감상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째가 절제미(節制美)다. 이 건물은 장식을 하지 않고도 얼마나 세련되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둥은 단아한 인상을 주는 주심포식이고, 지붕 앞면과 뒷면이 단순히 맞닿아 있는 맞배지붕은 경건한 느낌이 잘 표현되어 있다. 또 단청이 거의 없는 담백한 목재의 질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아 시원한 느낌의 창살, 그리고 목조를 짜맞추는 구조 수법의 탄탄함 등도 절제미가 잘 살아있다. 간단한 공포구조와 측면에 보이는 부재들의 아름다운 곡선은 대웅전의 건축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특히, 소꼬리 모양의 우리량은 백미로 꼽는다.

두 번째는 비례미(比例美). 수덕사 대웅전은 기둥 간격이 넓어 건물이 답답하지 않고 개방적이다. 기둥의 높이와 지붕크기의 비례는 지붕에 짓눌린 인상이 아니라 날아 갈 듯 사뿐히 올린 느낌을 준다. 처마의 돌출 길이도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긴데, 날렵한 백제 건축비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히 대웅전 옆면은 황금 비례 그 자체다.

대웅전을 감상한 후에는 산길을 거닐어보자. 대웅전 왼쪽 관음바위 쪽으로 이어진 산길은 돌로 잘 다듬어놓은 계단길이다. 가파르지 않고 그렇다고 완만하지도 않아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돌계단은 모두 1,080개. 절반쯤 오르면 오솔길 오른쪽으로 초가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만공 선사가 참선을 위해 거처하던 소림초당이다. 이어 만나는 향운각 옆에는 만공스님이 세웠다는 7.5m의 거대한 관음불입상이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오르면 스님들의 참선도량인 정혜사(定慧寺)가 산길 끝에서 반긴다.

정혜사의 널찍한 앞마당은 최고의 조망터다. 먼발치로 수덕사가 조망되고, 그 너머 멀리 해미읍내가 아련하다. 마침 경치 구경하며 앉아있기 좋은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도 있으니 더 없이 좋다. 수덕사에서 정혜사까지는 왕복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 여행정보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해미나들목→ 45번 국도(예산 방면)→ 시량리 삼거리(우회전)→ 40번 국도(홍성 방면)→ 수덕사. 해미나들목에서 20분 소요. △예산행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매일 8회(07:00~19:05), 인천종합터미널에서 매일 8회(07:55~18:40), 대전동부터미널에서 매일 27회(07:00~19:10) 운행한다. △예산터미널(041-333-2921~2)에서 수덕사행 버스가 매일 20분 간격(06:25~19:00) 운행. 1시간 소요, 요금 1,450원.

숙식 수덕사 입구에 자연식당(041-337-6060), 수덕골미락(041-337-0606), 청암회관(041-337-0085) 등 수십 개의 식당이 있다. 덕산온천 주변에는 온천장 7개소와 호텔, 여관 등 50여 개의 숙박업소 및 음식점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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