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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타운] 이냐리투 감독 <바벨>
마음의 바벨탑이 무너지고 소통의 문이 열리는 순간…
졸지에 테러리스트가 된 모로코 소년의 비극, 세 개의 사건으로 비춰본 세계의 풍경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지금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하나다.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단 두 편으로 21세기의 촉망 받는 작가로 급부상한 이 멕시코 출신 감독의 색깔은 한결같다.

기예르모 아리아가라는 1급 각본가, 최고의 촬영감독인 로드리고 프리에토와 줄곧 호흡을 맞춰 온 그는 시공간적으로 무관해보이는 사건들이 어떻게 교묘하게 연결돼 서로 영향을 미치는가를 추적한다. 분리된 에피소드들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방식은 이냐리투-아리아가 콤비의 전매특허다.

아무런 영향도 주고받지 않을 것 같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를 통해 만나고 서로에게 간섭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풍경이 그려진다. 그런 의미에서 <바벨>은 이냐리투의 앞선 두 편에 이어지는 '3부작'이라 부를 만하다. 3부작은 모두 우연적으로 촉발된 사건과 만남이 불러오는 비극을 전경화한다. 비극의 원인은 인간들 사이에 놓여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문화적 차이에 의한 불화와 의사소통의 단절은 <바벨>이 중심으로 삼고 있는 주제다.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사슬

시간과 공간이 섞이기는 하지만 <바벨>은 <아모레스 페로스>나 <21그램>처럼 초장부터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물과 사건을 꼬아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동일하지만, <21그램> 마냥 이야기가 중간에서 시작하는 듯한 황당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이집트 모로코의 산악지대에 사는 양치기 소년 유세프와 아흐메드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장총 한 자루가 주어진다. 황량하고 무료하기만 한 사막에서 즐길 거리가 없었던 두 소년은 총알이 발사되는 거리를 두고 내기를 건다. 장난 삼아 시작한 놀이는 산 아래를 달리는 관광버스를 표적으로 계속된다.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인 아멜리아는 아들의 결혼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가야하지만 유모로 일하고 있는 주인집의 부모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멜리아의 집주인 리처드-수잔 부부는 관계 회복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한다. 한편, 청각장애를 가진 치에코는 어머니의 자살 후, 외로움이 커져만 간다. 이쯤 되면 이 산개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머리로 퍼즐을 만들어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인 여행객은 별안간 날아온 총탄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총쏘기 놀이를 벌였던 모로코 소년들은 졸지에 테러리스트로 간주된다.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사건이 빌미가 돼 시작된 도미노적 비극은 전 지구적 규모로 비화돼 간다. 복잡한 이야기를 특징으로 하는 이냐리투의 무대는 한 마을(<아모레스 페로스>) 혹은 도시(<21그램>)에서 세계적인 규모로 커졌다.

시공간적으로 분리된 네 이야기 단위들은 시간이 갈수록 각자에게 영향을 미쳐 거대한 현대 사회의 벽화를 완성한다. 이냐리투 감독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21세기 현대사회의 구조와 환경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세 개의 에피소드를 연결시키는 것은 '사막'이라는 공간이다.

세 개의 분리된 이야기를 연결시켜주는 장총을 통해 이냐리투는 세계의 절망이 부지불식간에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으로 얻은 명성은 이냐리투에게 더 좋은 제작환경을 선물해줬다.

할리우드 톱 스타 브래드 피트가 제작자 겸 배우로 참여했고, 케이트 블랜챗,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야쿠쇼 코지 등 연기 잘하는 다국적 배우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위기에 빠진 세계의 풍경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3부작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계에 대한 모종의 ‘위기의식’이다.

그것은 증오와 복수가 만연한 시대의 분위기가 어떻게 세계를 포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정치한 탐문 작업과 같다. 시공간의 단면을 베어낸 것처럼 예리하게 세계의 문제를 파고드는 이 심란한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우리의 문제가 겹쳐진다.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증오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차근차근 곱씹게 만든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성서의 '바벨탑 신화' 마냥 <바벨>은 천형을 짊어진 비극적인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비극의 시초는 ‘소통할 수 없음’에서 온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피상적인 이유 외에도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의 의중을 알지 못한 채 미끄러지는 대화만을 나눈다.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의 카메라는 이 같은 절망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그의 촬영은 보는 이의 감정의 온도를 몇 도쯤은 높여 놓는다. 시종일관 대상에 밀착해 사건을 체험하게 만드는 카메라는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절망적인 상황을 우리의 상황으로 받아들이라는 선동적 외침처럼 들린다. 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밝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선뜻 긍정의 답변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두 편의 전작들에 이어, <바벨>은 자성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사건들이 실은 내밀한 관계망 안에서 연결돼 있다는 것. 이냐리투의 비극 3부작은 그 간과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때, 기대에 버금가는 반향을 일으킨 이 영화는 얼마 전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데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가장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바벨>은 미국 밖 이방인들에게 마음을 여는데 인색한 할리우드에서 멕시코 감독 이냐리투가 거둔 성공이 우연히 아님을 증명한다.



입력시간 : 2007/02/2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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