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디 귀해 '식물의 개똥이'가 된 야생난

이름이 특별하다. 그래서 한번 들으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예전엔 흔히들 ‘개불알꽃’이라 불렀는데, 이리 고운 식물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 하여 언제부터인가 ‘복주머니란’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식물이름이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 멋대로 고쳐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식물이름에 대한 논란과 혼란이 크다보니 표준식물이름을 정하였다. 그것이 바로 복주머니란이다.

그러니 공식적으로는 복주머니란이라고 불러야 한다. 개불알꽃이 더 정답다며 개명에 대해 불평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옛 어른들이 귀한 자식 이름을 개똥이라고 불렀듯이 고운 식물에 대한 애정과 장난기를 담아 표현했던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왜 복주머니란 이름을 붙였는지는 꽃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복주머니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야생난초. 난초과 식물의 독특한 꽃의 구조에서 흔히 순판(脣瓣) 즉 입술모양의 꽃잎이라고 부르는 아래쪽에 붙은 꽃잎이 항아리 혹은 주머니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은 오월에서 칠월까지 주름진 타원형의 시원한 잎새를 3~5장 달고서 30~40cm까지 자라는 줄기 끝에 큼직한 분홍색 꽃송이가 하나씩 달려 핀다.

손가락 길이의 잎에는 나란히맥이 둥글게 발달해 있으며 그 아랫부분이 줄기를 가볍게 감싼다. 줄기 끝에 달려 피어나는 꽃송이 크기는 간난아기 주먹만큼은 되는데 분홍빛이 강하다. 땅속에서는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린다.

이 꽃의 학명은 시프리페디움 마크란텀(Cypripedium macranthum)이다. 속명은 미의 여신인 비너스를 뜻하는 사이프리스(Cypris)와 슬리퍼라는 뜻을 가진 페디롬(Pedilon)에서 유래된 합성어라고 한다. 영어 이름은 ‘숙녀의 슬리퍼’라는 뜻의 ‘lady`s slipper’이다. 우리말 이름으로는 앞의 두 이름 이외에도 개불란, 까치오줌통, 오종개꽃, 요강꽃, 작란화 등이 있다.

애석하게도 요즘 산에서 친근하고 아름다운 복주머니란을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졌다. 차라리 화훼 시장에 찾아가는 일이 빠르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이유는 뻔하다.

사람들이 마구 채취하였기 때문. 꽃이 아름다운 희귀난초라는 명성을 얻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산에 있는 개불알꽃을 캐가기 시작했다. 산지에서 아주 헐값으로 수매해도 현지인들은 식물의 귀중함도 모른 채 캐내 푼돈을 벌었고, 그렇게 사들인 꽃들은 도시로 옮겨져 열 배가 넘는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몇 년 전에 만났던 큰 군락을 찾아가 보면 한두 포기를 찾기도 어려울 만큼 황폐화되었으니 야생 난초에 대한 섣부른 관심이 그 식물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다 주는지 알 수 있다.

더욱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복주머니란은 키우기가 아주 까다로워 팔려나가더라도 몇 달 못가 대부분 그대로 죽어버린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이 난초를 산에서 캐 오지 않고 재배하려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고 또한 개체 증식에 성공하고 있다니 반갑다.

복주머니란이 원래부터 터전을 잡은 곳이니 키우기도 훨씬 수월할 터이고 더욱이 희귀식물이 되어 버린 이 난초를 멸종 위기에서 구해 오래오래 볼 수 있으니 인간에게나 식물에게나 모두 좋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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