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욕에 대한 능청맞은 꼬집기유순웅, 1인 15역 절묘한 연기… 자연스런 관객참여 유도 돋보여

“10만 명의 염쟁이를 양성해야 한다고 율곡 이이 선생께서도 소리 높여 주장한 10만 ‘염병설’!”

“‘염쟁이가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염내천’ 사상!”

“이놈아, (염쟁이로서의 가업이)할 만하니까 하라는 거여.”

“아부지, 저도 안 할 만하니까 안 한다는 거여요.”

염쟁이 유씨는 관객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비율은 3대 1, 웃거나 울거나 둘 중 하나다. 고로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유쾌한씨’다. 극단 두레에서 펼치는 연극 <염쟁이 유씨>가 대학로 연극가에서 수개월째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배우 유순웅의 1인극으로 진행되는 이 공연은 대물림한 염쟁이 일을 수십 년째 생업으로 삼고 있는 주인공의 넋두리와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반함과 소렴, 대렴, 입관 등 실제 염의 절차에 따라 극이 전개되지만, 사실상 주인공이 보여주려 하는 것은 그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세태 풍자에 있다. 이 시대가 만들어낸 갖가지 죽음의 양태와 재산상속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과 추태 등이 염쟁이 유씨의 체험담 형식으로 쏟아진다.

솔직히, 스토리는 뻔하다. 가끔 사용되는 조명이나 효과음악도 거칠고 단순하다. 하지만 이 모든 ‘뻔함’들을 흔쾌히 눈감아주고 싶을 만큼 유순웅의 연기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이 공연은 무엇보다 20여 년 관록의 연기파 배우의 무대 장악력과 순발력을 확인시켜 주는 무대다. 제목이 주는 무거움과는 정반대로 그는 등장 초반부터 2, 3분에 한 번씩 관객들의 폭소를 끌어낸다. 공연의 4분의3은 희극, 4분의1 정도가 비극이다.

이 1인극 안에서 유 씨는 무려 15인 역을 자연스레 소화해낸다. 특히 장례 브로커 ‘장사치’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두 사람이 한데 마주치는 상황에서 코믹 마임에 가까운 절묘한 연기를 펼쳐 관객들의 웃음과 갈채를 받았다. 이번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의 ‘끼’에 대해서는 굳이 주석을 달 필요가 없어 보인다.

모노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공연은 배우와 관객들과의 합작품이다. 일반적인 공연들에 비해 관객들의 참여 비중이 상당히 높다. 모두 유 씨에 의해 객석에서 임의로‘차출’당한 일반인들이 함께 호흡을 맞춘다.

어느 아버지의 장례날, 관을 덮기 직전 유족들이 유언장을 둘러싸고 벌이는 해프닝 대목에서는 특히 유 씨의 위트와 관록이 빛을 발한다. 객석에 있던 관객 4명이 얼떨결에 불려나가 유족 역할을 맡았다.

유 씨의 능청맞고도 강력한 연출 아래 출연 당사자와 관객, 무대와 객석은 삽시간에 폭소의 홍수를 이루었다. 그가 지난해 서울연극제에서 인기상을 수상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만 하다.

연극 <염쟁이 유씨>는 어떤 이유에서든 머릿속이 복잡한 이들에게 권할 만한 공연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각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가능한 한 객석의 맨 앞줄 좌석을 예약하는 것이 좋다. 염쟁이 유씨에게 등 떼밀려 1일 출연자로 무대에‘데뷔’할 확률이 높다. 공연은 4월 1일까지 대학로 두레홀 1관에서 계속된다.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