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직관과 여자의 섬세한 감성이 만들어낸 사랑의 하모니

영화에 대한 만족도를 측정하는 기준은? 정답은 '그때그때 다르다'이다.

휴 그랜트와 드류 배리모어가 로맨스 커플로 맺어지는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이하 <그 여자 그 남자>)은 그 허다한 기준들 중 배우들의 앙상블을 보고 선택해야 하는 영화다. 'Music & Lyrics'라는 영어 원제를 어찌 번역해야 할지 몰라 붙인 한국어 제목의 어색함은 있지만 주연 배우들의 면면은 흥미를 끌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로맨틱 코미디의 제왕 휴 그랜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단점들을 기꺼이 눈 감아 줄 수 있다고 한다. 정말이지, 휴 그랜트만큼 고정된 이미지를 반복하면서도 쉽게 질리지 않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그 여자 그 남자>에서도 휴 그랜트의 거절할 수 없는 매력은 여전하다.

<노팅힐>과 <러브 액츄얼리>에서 보여준 것만큼의 싱싱함은 아니지만 다소 쭈글쭈글해진 얼굴로도 그는 시종일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엔도르핀의 샘 역할을 한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는 엉덩이를 까 보이기까지 한다. 휴 그랜트의 파트너로 간택된 드류 배리모어 역시 생크림 케이크처럼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의 단골손님이었다.

<그 여자 그 남자>는 <웨딩 싱어>, <첫 키스만 50번째>, <날 미치게 하는 남자> 등을 거친 드류 배리모어의 이력에 새롭게 추가할 만한 로맨스 영화다.

가수, 단짝 작사가를 만나다

<그 여자 그 남자>에서 남녀 간의 로맨스가 이뤄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귓가에서 맴도는 음악이다. 우연히 만난 남녀가 한 곡의 노래를 만들면서 사랑을 완성한다는 스토리도 그렇지만, 남자가 곡을 여자가 노랫말을 쓴다는 설정이 ‘통념적인 연애 관계에서 성 역할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직관과 여자의 섬세한 감성의 하모니가 불멸의 ‘작품’을 만들어내고야 만다는 것.

학창 시절 밴드부 활동을 했을 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은 마크 로렌스 감독은 음악적 영감의 발생과 창작의 과정을 빗댄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좋은 곡을 써보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대리충족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감독은 조지 거쉰과 엘튼 존, 버니 토핀 밴드 등 전설적인 밴드들에 대한 자료들을 뒤적여 음악 공동 창작의 비밀을 부지런히 탐문했다.

휴 그랜트 표 로맨스

<그 여자 그 남자>가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원형을 답습하고 있다는 증거는 여러 가지다. 로맨틱 코미디의 뿌리로 일컬어지는 스크루볼 코미디를 현대적으로 살려낸 영화의 설정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테이블 위를 넘나드는 탁구공처럼 남녀 간에 쉴 새 없이 주고 받는 속사포 대사의 묘미로 웃음과 리듬을 만들어가는 스크루볼 코미디 스타일을 이 영화는 다시 살려내려 한다. <연인 프라이데이>,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같은 고전 스크루볼 코미디의 걸작들처럼, <그 여자 그 남자>는 태생과 성격이 다른 남녀가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공동의 목표를 이루고 사랑도 얻게 된다는 판에 박힌 스토리라인을 반복한다.

섹시 컨셉의 댄스 가수 콜만이 서정적인 두 사람의 사랑의 난도질을 요란한 인도 풍 댄스음악으로 난도질할 때, 알렉스와 소피의 상반된 대응이 갈등을 고조시키고 잠시나마 속물근성을 보이던 알렉스의 개과천선으로 다시 재결합을 이룬다는 설정도 익숙한 수순을 따른다.

하지만 과거 할리우드 코미디의 향수를 가진 관객들에게는 반가운 답습이랄 수도 있겠다. 뻔할 뻔자 영화가 성공하는 게 또 장르의 법칙이 아니던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이 같은 법칙을 위배했을 때, 안온한 장르 관람의 쾌락은 깨지기 마련이다. 식상하다 못해 지겹게 느껴지는 드라마를 윤기나게 한 건 휴 그랜트의 헌신이다.

연기 말고도 그는 할 게 많았다.

'듀란듀란'이나 '웸' 같은 80년대 하이틴 아이돌 밴드를 연상시키는 극중 밴드 '팝'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80년대식 머리 모양, 줄줄 촌티가 흐르는 패션, 나팔바지, 다른 배우가 했으면 볼썽사납겠으나 그가 해서 귀엽게 보이는 엉덩이 춤, 피아노 연주, 발성 등을 꼼꼼히 학습했다. 흉내가 아닌 리얼한 실연을 해보인 끝에 그는 <그 여자 그 남자>를 자신의 영화로 만들었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