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를 택한 그 죽음이 이상향일까사지 마비로 평온한 지옥같은 삶… 죽음으로 생명 존엄성 지키려는 몸부림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네 번째 장편영화 <씨 인사이드>는 아메나바르가 이제껏 만들어왔던 서스펜스 호러 장르와는 거리가 멀다.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지가 마비된 남자 라몬 삼페드로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안락사’라는 논쟁적인 주제를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제작 당시 대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베나바르는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에 이은 또 한 편의 화제작으로 세계 영화계에 주목할 만한 거장으로 떠올랐다. 사지가 마비된 주인공 라몬 삼페드로에 스페인의 대표적인 섹스 심볼 하비에르 바르뎀을 캐스팅한 파격 역시 제작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내게 죽을 권리를 달라

26년 전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나간 것을 알지 못하고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 목을 다쳐 사지가 마비된 라몬 샴페드로(하비에르 바르뎀)는 그 이후 부모님과 형 내외의 도움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다치기 전 배 기술자로 세계를 여행하던 그였기에 오로지 얼굴만을 움직일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은 평온한 지옥과도 같다.

라몬은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그를 변호하기 위해 찾아온 미모의 변호사 줄리아는 서서히 몸이 마비되어가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이기도 하다. 안락사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는 라몬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줄리아(발란 루에다)는 서서히 그에게 빠져들어간다.

한편 라몬이 사는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웃 마을에서 어린 두 아들을 키우는 로사(로라 두에나스)는 TV에서 우연히 라몬이 등장한 프로그램을 접하고 그를 찾아온다.

잼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노동자인 로사 또한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삶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라몬에게 사랑을 느낀다.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라몬의 죽음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고 명징한 것이다.

아메나바르 감독은 안락사를 택한 주인공 라몬을 극한 상황 속에 놓인 인물로 묘사하기보다는 매우 인간적이고 현명한 남자로 묘사한다.

라몬에게 있어서 안락사는 순간의 충동이나 절망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자신의 삶을 마감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이다. 삶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외치는 라몬의 지지자들의 발언은 라몬의 희망을 가장 적확하게 설명해내고 있다.

오로지 타인의 도움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그의 자괴감을 종식시킬 수 있는,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죽음인 것이다. 그의 안락사 소송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한편으로 법적, 제도적, 그리고 종교적 반대에 부딪친다. 결국 라몬은 법에 호소하는 대신 비합법적인 죽음을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씨 인사이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안락사에 대해 어떤 특정한 객관적인 잣대를 결코 들이대지 않으면서 라몬이라는 인물의 마음 속으로 관객들을 조금씩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감독은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던 실존인물의 투쟁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며, 안락사의 법적 제도화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교차로에 선 인간

영화 속에서 라몬은 다른 어떤 전신마비 환자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전신마비 환자로 살아오면서 죽음을 앞당기려는 소망을 키워온 한 사람일 뿐이다. 아메나바르 감독은 라몬을 통해서 죽음과 삶이 얼마나 가깝게 서로 이어져 있으며 인간이란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라몬의 불행한 사고의 시발점인 동시에 배의 기술자였던 라몬이 평생을 함께 했던 바다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다.

라몬은 다이빙을 하다 목을 다친 후 바다 위에 떠서 익사 직전까지 갔던 과거의 기억을 되풀이해서 떠올린다. 그 기억은 죽음에 대한 공포의 순간이라기보다, 안락사를 바라는 현재의 라몬에게 일종의 이상향처럼 보여지고 있다. 그리하여 죽음을 의미하는 바다는 그에게 있어 새로운 이상향, 죽음으로서 완성되는 새로운 삶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50대의 사지 마비 환자로 분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경이로운 연기 변신은 <씨 인사이드>의 또 다른 볼거리다. 아메나바르라는 천재 감독의 탄생 외에도 이 영화는 하비에르 바르뎀의 재탄생이라는 의미를 달 수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바르뎀은 바다 깊숙한 심연까지 내려간 숙성된 연기력을 보여준다.

단순히 육체적인 변화뿐 아니라 20여 년을 침대에서만 누워 살아 온 한 남자의 무기력함과 정신적 고뇌를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한 톤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메나바르는 그의 연기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거듭했고 각종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이 같은 노력이 보상받았다.

아메나바르 감독은 <디 아더스>나 <떼시스>, <오픈 유어 아이즈>와 같은 그의 전작들에서 장르의 외피를 뒤집어쓰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죽음을 다뤄왔다.

<씨 인사이드>는 그의 이러한 관심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낸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씨 인사이드>는 건조한 사실보다는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시각적 상상의 이미지를 곳곳에 심어놓았다.

마치 관객에게 최면이라도 거는 듯한 몽환적인 화면과 섬세한 정서에는 이 영화를 이성적인 관점에서라기보다는 감각적인 체험의 영화로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감독의 의도가 묻어 있다.

77회 아카데미 시상식과 같은 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었고, 61회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 특별대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저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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