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폭력성을 여과없이 그려낸 하드보일드 누아르

최양일은 괴물 감독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한국인 감독 최양일은 일본 현대영화계에 선연한 족적을 남긴 거장 대접을 받을 뿐 아니라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고 일본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을 연임했을 만큼 영향력도 지대하다.

급진적 탐미주의자였던 오시마 나기사의 조감독을 거친 그의 영화는 폭발할 듯한 에너지로 가득차다. 거칠고 폭력적인 범죄세계의 인간들을 등장시킨 누아르 영화에서 그의 괴력은 빛을 발한다.

비릿한 날 것 냄새가 물씬 풍기는 범죄적 인물들이 끝장을 볼 때까지 쟁투를 벌이는 그의 영화를 볼라치면, 절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또 하나의 괴물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한 <피와 뼈>는 한국 관객들에게 최양일의 진가를 깊이 각인시켰다. 한국 자본으로 한국 스탭들을 데리고 찍은 첫 번째 영화 <수>에서 최양일의 스타일은 재차 폭발한다.

한국과 일본의 시스템 차이로 현장에서 그의 분노가 폭발하고 촬영이 중단되는 위태로운 상황까지 갔지만 문화 차이로 인한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되고 영화는 완성됐다.

제작 과정에서의 잡음이 영화에 슬쩍 묻어 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는 최양일식 하드보일드의 아우라가 전체에 짙게 배어 있다. 중제: 복수는 나의 것 <수>는 마르고 닳도록 보아 온 복수담이다. 어린 시절 마약 조직 보스 구양원(문성근)의 약을 훔치다 걸린 쌍둥이 동생 태진과

생이별한 태수(지진희)는 '수'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해결사가 돼 있다. 수소문 끝에 태진과 재회하는 자리에 나가지만 동생은 수의 면전에서 살해당한다. 절절하게 만나고 싶었던 피붙이 동생을 보낸 수는 구양원 일당을 향한 복수를 결심한다. 간단하게 요약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건 물론 아니다.

<수>는 몸이 욱신거릴 정도로 관객을 지치게 한다. 폭력만이 통용되는 처절한 복수담을 통해 그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풍경을 그려낸다. 물리적 폭력의 선명함은 그 자체로 '잔혹하다'. 묘사가 극단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맨 밑바닥에서 추출한 순수한 폭력이라는 측면에서 잔혹하다. 극소로 축약된 이야기적 설정은 스타일의 폭발을 위한 구실일 뿐이다. 복수에 불타는 남자가 있고 그에게는 처단해야 할 상대가 있다.

목적한 바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수는 흡사 살인기계 마냥 앞길을 막는 자들을 제거해간다. 신영우의 원작만화 <더블 캐스팅>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는 실은 정보의 수준도 되지 못한다. 최양일은 한국 영화사에서 기획해 의뢰한 이 프로젝트를 자신의 방식대로 요리한다.

무미건조한 주인공이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돌진하는 하드보일드 누아르 영화. 수식을 배제한 드라이한 문체로 냉혹하게 세계를 묘사하는 헤밍웨이나 레이먼드 챈들러의 탐정소설에서 비롯된 하드보일드라 불리는 스타일은 최양일의 전매특허였다.

<10층의 모기>, <막스의 산> 같은 초기작들은 하드보일드 수사학의 영화판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최근 들어 최양일은 싱거운 블랙코미디 영화나 강아지가 나오는 가족영화 <퀼>로 일본에서 대박을 터트리기도 했다. <수>에서 그는 타협하지 않고 끝을 보는 하드보일드 세계의 냉혹함에 기반한 영화로 돌아왔다. 하드보일드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이유'보다 중요한 건 '기질'이다.

얼음 같은 영혼을 지닌 그들은 상식이나 개연성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기질에 의해 행동만을 일삼는다. 자신의 기질을 포기하는 순간, 세상이 무너질 거라 생각하는 듯,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귓조각을 뜯어내고 눈알을 뽑는 살풍경한 장면들 때문에 이 영화를 하드보일드라 부르는 건 온당치 않다.

그 멈출 수 없는 자동기계들의 무감동한 액션이 관객을 의아스럽게, 때로는 가슴이 철렁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제: 애증의 가족 뼈대만 남은 이 이야기 위에 덧붙여진 건 강력한 폭력 묘사와 '가족'의 문제다. <피와 뼈>에서 피와 폭력에 물든 살벌한 가족의

풍경을 보여준 그는 <수>에서 다시 한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반복한다. 부모 없는 고아인 듯한 쌍둥이 형제 중 동생은 악으로 똘똘 뭉친 마약왕의 손에 의해 사육되고, 형은 정체가 모호한 고미술상에 의해 해결사가 된다. 애증 어린 부자 관계,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살부의식이 영화 전편을 지배하고 있다. 혈육임을 증오하면서 연민을 느낄 수 없는 것으로 보자면 극악한 악당 구양원도 마찬가지다.

그 자신은 약 한 번 먹지 않으면서 약쟁이 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그는 가족관계에서 파생된 짐을 말없이 보여주는 인물이다. 일본에서 국외자로 살아온 최양일 감독이 가지고 있을 '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감정 또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아버지 세대 혹은 아버지로 상징되는 질서에 대한 적개심이 수의 복수극 심층에 놓여 있다.

<수>의 폭력 묘사는 일찍이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수준이다.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결기로 가득한 수의 앙다문 입은 감독으로서 최양일의 기질과 겹쳐진다. 하지만 상업영화로서 미끈하게 빠진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설명도 충분치 않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도 묘연하며 군데군데 생략된 내용들에 대한 의문도 사라지지 않는다. 최양일 감독은 "그것은 관객 스스로 상상하고 추리해야 할 몫"이라고 배짱좋게 말한다.

쳐내고 덜어내다 보니 앙상한 가지만 남은 드라마는 이 영화의 지향점을 분명히 한다. <수>는 최양일의 초기 걸작들에 비견할 만한 깜냥은 안 되지만 하드보일드 스타일리스트 최양일의 개성이 분명히 드러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