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건설 둘러싸고 사사건건 서로 딴죽한국 사회의 분파주의 비튼 '장규성표 코미디'

코미디가 세태를 풍자하거나 희화화하는 장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풍자의 대상이 누구인지, 웃음의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영화의 꼴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촌철살인의 비수를 감추고 있는 고단수 코미디가 있기도 하지만, 헛웃음만 새어 나오게 하는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들이 실은 대부분이다.

그 수준과 층위에 따라 코미디 영화가 현실과 주고 받는 영향 관계도 달리 평가된다.

지금 이곳에 꼭 있어야 할 영화인가, 변죽만 울리는 웃음잔치인가? 한국 최초의 패러디 코미디 <재밌는 영화>로 출발해, <선생 김봉두>, <여선생 vs 여제자> 등 코미디라는 한 장르에 매진해 온 장규성 감독에게 이 같은 질문은 유효하다.

장규성의 코미디 중 가장 웃기고 감동적이었던 <선생 김봉두>의 주인공 차승원이 여기서 다시 한번 생활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무게감 있는 조연 배우 유해진은 차승원과 함께 투톱 주연을 맡았다. <이장과 군수>는 마냥 웃기려는 목적으로 모든 걸 희생하지 않고 상황과 캐릭터를 통해 현실에 다가가려는 장규성 코미디의 연장선상에 있다.

뛰는 이장 위에 나는 군수

<이장과 군수>는 작품을 거듭하면서 하나의 공식처럼 돼 버린 장규성 코미디의 법칙을 다시 한번 반복한다. 태생과 성격, 외모마저 상이한 두 인물이 갈등을 거듭하는 이야기. 사소하게 시작한 대립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화해할 수 없는 극한 상황까지 가지만 종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화합의 대단원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여기서도 반복된다.

지방 초등학교에 부임한 총각 교사를 두고 연적이 된 여선생과 여제자의 신경전을 다룬 <여선생 vs 여제자>에 이어 <이장과 군수>는 졸지에 처지가 뒤바뀐 어린시절 친구들의 20년 후를 보여준다.

학창 시절, 춘삼(차승원)은 대규(유해진)로서는 넘볼 수 없는 상대였다. 공부와 감투, 외모, 싸움, 모든 면에서 밀리는 건 대규였지만, 20년 뒤 두 사람의 운명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다.

못난이 대규는 어엿한 군수로, 의기양양 뻐기던 춘삼은 마을 이장으로 평범한 삶을 살게 된 것. 그들은 서로가 못마땅하다.

춘삼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군수 친구가 아니꼽고, 대규는 아직도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장 친구가 밉상이다.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던 두 친구는 시골 마을의 최대 이슈로 부상한 방사선폐기처리장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장과 군수>는 <선생 김봉두>와 <여선생 vs 여제자>를 합쳐놓은 듯한 이야기다. 도회적 삶의 방식에서 덜 오염된 촌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라는 점에서 <선생 김봉두>를, 상반된 캐릭터들의 대결이 드라마를 끌어가는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여선생 vs 여제자>를 연상시킨다.

이들 영화가 풋풋한 웃음을 주었던 핵심은 캐릭터의 생생함이었다. 다소 황당한 상황과 설정이 있지만, 현실 속에서 취한 인물들의 모습에는 우리들의 치부와 한계, 초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친구로 시작해 이장과 군수로 대립하게 되는 두 인물에게도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인간형, 그 속에서 추려졌을 법한 성격들이 녹아있다.

희소성 있는 코미디

코미디의 제왕 차승원과 그와 여러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유해진의 조합은 비교적 훌륭하다. 한 사람에게 쏠리지 않고 적절하게 힘의 균형을 유지한 두 배우의 조화된 호흡은 이 영화를 끌어가는 동력이다. 하지만 장규성 감독의 야심은 재능 있는 코미디 배우들을 데리고 후련한 웃음을 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감독은 다른 비기를 숨기고 제법 진지하게 이 둘의 관계를 파고들려 했던 듯싶다.

“<선생 김봉두>에서는 촌지 문제, <여선생 vs 여제자>에서 임용교사와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 등 늘 사회적인 이슈들을 다뤄왔고, <이장과 군수> 역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일련의 태도에 대한 진심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헛헛해 보이는 이장과 군수의 대결 뒤에는 한국 사회의 분파주의,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옹졸한 태도 따위가 어른거린다.

장규성 감독은 “화려하지 않은 과거를 가졌지만 군수로 거듭나는 대규라는 캐릭터를 만들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염두에 뒀다"고 밝힌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과거를 뒤로 한 채 군수로 성공한 대규의 모습에는 온갖 사람들로부터 무차별적인 비판과 공격을 받고 있는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

반대로 친구의 성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춘삼의 행동에서는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승복하지 않는 이들의 아집이 겹쳐지기도 한다. 방폐장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마을 사람들의 대립과 행동을 통해 인간의 위선과 이기심 등을 슬쩍 비꼬고 있다.

현실을 환기하는 인물들과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장과 군수>가 현실비판 코미디의 기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머와 아이러니를 통해 지극한 성찰을 주는 빼어난 코미디라고 하기엔 모자란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중반부터 방폐장을 둘러싸고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는 드라마와 두 사람의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은 매끄럽지 못하다.

예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조바심이 이야기 전개를 무리하게 만들고 급격한 전환으로 이끄는 것도 사실이다. 잘 만든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만큼이나 잘 만든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내놓기 힘들다는 걸, <이장과 군수>는 증명한다.

하지만 코미디는 곧 ‘싸구려’라는 등식이 통용되는 상황에서 웃음의 의미를 고민하는 코미디를 만든다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이장과 군수>의 존재가치가 있다면 이 같은 희소성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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