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의 괴리감, 거장들의 개성도 '충돌'

연극이 ‘연극’처럼 보인다면 잘 된 연극일까, 아닐까. 반대로 연극이 ‘실제’처럼 보인다면 성공한 걸까, 실패한 걸까.

국립극단이 내놓은 2007년 신작 연극 <황색여관>이 드디어 막을 올렸다. 국내 정상의 극작가 이강백 교수가 희곡을 쓰고 국립극단 오태석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은, 한국 연극계의 두 거장이 손잡고 만든 작품이다. 출연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원로배우 백성희를 비롯해 이승옥, 오영수, 김재건, 문영수, 최상설, 이문수, 곽명화 등이 출연, 이강백-오태석 사단의 힘을 짐작케 한다.

<황색여관>은 인간 내면의 탐욕과 공격성을 냉소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무대 위에 풍향계가 쌩쌩 돌아가고,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황색여관>의 베일이 서서히 벗겨진다. 막이 오르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여관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들. 여관 주인 부부는 그 시신들을 치우며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긴다.

주방장과 처제는 매일마다 투숙객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에 지쳐 여관을 떠나려 하지만, 투숙객 중 단 한 명의 생존자라도 남는다면 여관을 넘겨주겠다는 말에 현혹돼 하루 더 눌러앉는다.

허허벌판의 황사 바람을 뚫고 은퇴공직자와 변호사, 사업가, 그리고 외판원과 배선공, 배관공, 대학생 등이 차례로 여관에 찾아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유한 화이트칼라 계층의 2층 투숙객들과 ‘제일 싼 것’만을 찾아야 하는 블루칼라층의 1층 손님들 간에 보이지 않는 편나누기가 형성된다. 사업가의 가방 분실 소동이 일어나면서 이윽고 시니컬한 살인극이 시작된다. 집단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가운데 맨 먼저 사업가가 죽고, 이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하나씩 투숙객의 시신이 쌓여간다.

독이 묻은 칼에 찔려 죽은 최후의 투숙객을 마지막으로 여관은 정적에 쌓인다. 다음날 아침, 일상처럼 여관주인과 아내는 시신을 치우며 시계나 반지 등을 챙긴다. 그 옆에서 처제는 ‘떠나지 않겠다’며 ‘내일은 반드시 한 사람이라도 살리고 말겠다’고 결심한다.

희곡집을 따로 읽어보아도 좋을 만큼 스토리가 매력적이다. 이강백표의 차가운 유머도 극의 곳곳에 등장한다. 연극무대는 물론 영화와 TV등에서 이미 검증된 실력을 보인 배우들이니만큼 연기력도 탁월하다.

그런데 어쩐지 극 전반이 어딘가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온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무대와 객석과의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고 점점 더 커진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 연극이 ‘연극 상황’임을 더 확연하게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낯섦’과 ‘비현실감’은 희곡을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듯하다. 우선, 배역 안배의 어색함이 눈에 거슬린다. 청년층 배역에 중·장년의 배우가 배치되었고, 중·장년 연령대의 배역은 반대로 청년 배우들이 맡았다. 제작진의 독특한 의도와 실험 정신에서 시도됐겠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관객들의 작품 이해와 몰입에 되려 혼선을 준다.

너무 기대가 큰 탓이었을까. 두 거장의 합작품이라는 명성에 비해 공연은 다소 의아스럽다. 특히 극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정교해야 할 ‘연속 살인극’의 인과(因果)과정이 충분히 설득력있게 표현되지 못했다. 삽입된 음악의 편집도 다소간 매끄럽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조명과 특수효과 등 극적 효과 장치를 풍성히 활용한 점은 인상적이다.

<황색여관>은 너무나도 개성이 뚜렷한 거장들의 조합이 반드시 시너지효과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공연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8일까지 계속된다.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