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아빠를 친구들이 쳐다본다는 건 기분이 좋습니다.

어느 승용차를 광고하는 문안이다. 멋진 승용차와 그 소유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교실의 친구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다보는 모습이 흐뭇하여 한 말이다.

그런데 친구들은 정말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봤을까. 친구들이 교실에서 승용차를 내다본 눈의 높이와, 차 안에 있던 주인공의 아버지 얼굴의 높이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높았을까. 주인공인 소년이 차 안에서, 자신과 그 아버지를 부러워하는 눈으로 보는 친구들을 올려다보는 장면을 고려할 때 교실 속 친구들의 눈높이가 더 높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 아빠를 친구들이 ‘쳐다본’ 것이 아니다.

다른 예들도 보자. 3월 26~28일의 보도된 기사에서 찾아본다.

(2) 27일 자유형 200m에서도 ‘18세 괴물’의 뒷심을 유감 없이 발휘한 박태환(경기고)은 “옆 레인을 쳐다볼 정신도 없이 앞만 보고 갔다”고 말했다.

(3)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풍뎅이들이) 짝짓기 하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너무 신기해서 쳐다보면서도 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곤충에게는 조금 미안했다. 그런데 짝짓기하는 데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나는 보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4) 불법 차량 전조등 조심! 쳐다본 운전사 3초간 실명

(2)의 경우 소수점 이하 몇 자리까지 촌각을 다투는 경기에서 수영 선수가 과연 얼굴을 들고 옆 레인을 올려다볼 엄두라도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3)은 곤충의 짝짓기 모습을 키 높은 장롱 위에 풍뎅이 집을 올려놓고 지켜본 것 같지는 않다. 장장 세 시간 이상 걸리는 일을 얼굴을 들고 올려다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4)는 전조등이, 건너편에서 마주 오는 차의 운전자가 쳐다볼 정도로 높이 매달려 있지는 않을 것이다. (1)~(4)에서 암시했듯이 ‘쳐다보다’란 얼굴을 들고 올려다본다는 뜻이다.

다음 예를 보자.

(5) 명작 앞에서 아무런 감흥 없이 멀뚱하게 있을 자신과 그런 부모를 안쓰럽게 쳐다볼 아이의 시선이 두렵다.

(6) 역전 드라마를 완성한 박태환은 곧장 전광판을 쳐다봤다. 어차피 목표는 순위보다는 자신의 기존 기록을 깨는 것이었기 때문. 그리고 자신의 기록을 확인한 순간 박태환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7) 박 씨는 체육관 밖 벤치에 앉아 잔뜩 찌푸린 도쿄의 밤하늘을 쳐다봤다. 6일간의 숨막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5)~(7)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쳐다보다’가 제대로 쓰였다. 얼굴을 들고 자신보다 키가 큰 부모를, 높이 매달린 전광판을, 저 높디높은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다.

“건넛산 돌 쳐다보듯, 놀란 토끼 벼랑 바위 쳐다보듯,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턱 떨어진 개 지리산 쳐다보듯, 줄 끊어진 연 쳐다보는 격,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손자 밥 떠먹고 천장 쳐다본다” 같은 우리 속담에서 보듯이, 쳐다보는 대상은 한결같이 행동주(行動主)보다 더 높은 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아래를 쳐다보는 예는 없다.


김희진 국립국어원 국어진흥부장 hijin@m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