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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미술 시간에 뭐하셨습니까?
[시몽의 논술 가로지르기] 예술에 대한 간단한 정의







국민 공통 기본 교육 과정으로서의 미술 교육은 다양한 미술 활동을 통하여 심미적 태도와 상상력,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 주고, 미술 문화를 이해하며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인적 인간을 육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한교과서(주), 『고등학교 미술(교사용 지도서)』

대입 논술 시험에 종종 예술(특히 미술)과 관련된 문제들이 출제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예·체능 과목이 수능 필수 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실기평가나 수행평가 점수에만 신경 쓸 뿐, 예술 이론에 관심도 없고, 접할 기회도 거의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미술, 음악, 체육 등의 과목을 내신 성적에서 제외하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한다. 서열을 위한 점수 매기기가 아닌 서술형 평가를 도입하겠다는 시도는 일견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내신에서 제외되는 과목이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역시 전인교육은 말뿐인 구호에 불과했던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에서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예술과 관련된 주제로 가로지르기를 시도해 볼까 한다.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예술'이라는 개념을 간단히 정의해 둘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예술은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형식들을 창조하려는 모든 시도들'로 정의된다.

이는 허버트 리드(Herbert Read)의 예술에 관한 정의를 약간 변형시킨 것이다. 그는 예술을 '(마음을) 기쁘게 하는 형식을 창조하려는 어떤 시도(Art is an attempt to create pleasing forms)'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그의 정의에서 '기쁘게'라는 부분이 영 탐탁지 않다. 모든 예술이 마음을 기쁘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은 우리를 슬프게도 하고(모짜르트의 레퀴엠), 흥분시키기도 하며(난타/도깨비 스톰),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짜증나게도 한다(이해불가한 추상미술과 무조음악). 기쁨이 마음의 여러 상태 중 하나라는 점에서, '기쁘게 하는'을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는'으로 보충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예술을 이처럼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예술을 예술가 집단이나 평론가 집단의 전유물로 바라보는 매우 잘못된 관점을 바로 잡기 위해서다. 우리의 정의에 따르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공책이나 책상 위에 그리는 낙서들도 모두 예술이 될 수 있다.

아니, 예술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스타크래프트(star-craft)'나 '카트라이더(kart rider)' 같은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다(게임을 창조하는 행위와 게임을 즐기는 행위 모두를 예술 행위라고 볼 수 있는가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리드의 예술에 대한 정의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바로 '형식(form)' 이라는 개념이다. 모든 예술 작품들은 고유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회화, 음악, 조각, 건축, 무용, 소설 등과 같은 예술의 하위 장르들을 구분하는 기준도 바로 '형식'이다. 형식은 질료(예술의 재료)들을 배치한 결과물로써, 우리 앞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형태를 의미한다.

회화를 예로 들면, 같은 유화 물감(질료)을 사용했더라도, 고흐가 추구한 형식과 고갱이 추구한 형식은 사뭇 달랐다(아래 그림 참조). 우리가 설운도의 '네박자'와 서태지의 '교실이데아'를 구분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형식 이외에도 작품 간의 구별을 가능케 해주는 요소는 '양식(style)'이다. 형식이 전형화되어 관습적으로 사용될 때, 우리는 그것을 양식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양식은 다양한 형식을 포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형식 a와 b가 있다고 가정하자.

특정한 시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 둘을 결합시켜 새로운 형식 c를 만들어 내었고, 이것이 지속적으로 사용된다면, 새로운 형식 c는 이제 양식이 된다. 물론 형식 a나 b도 독자적인 양식이 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단일한 형식이 양식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양식이 관습적이고 역사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양식은 한 시대의 지배적인 양식이 될 수 있다. 고딕 양식,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양식의 더 가까운 예로는 대중음악 장르 중, 트로트(trot)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왜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 이건 트로트다'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트로트 고유의 양식(독특한 꺾기 창법과 4/4박자 강약 조절 등)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예술사는 형식 혹은 양식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전문적으로 예술의 형식과 양식들만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예술사가, 혹은 비평가라고 부른다. 전문적인 예술사가나 비평가와 일반인들이 다른 점은 결국 얼마나 많은 형식과 양식을 구별해 낼 수 있는가이다.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 '요새 젊은 애들의 음악은 뭐가 뭔지 모르겠어.

다 똑같이 들려. 시끄럽기만 하고'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그 분들은 음악적 양식을 구별하는 분별력이 부족한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클래식 문외한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모두다 똑같이 지루하고, 따분하게 들릴 수 있지만 클래식 애호가들은 클래식의 다양한 양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분별하여 들을 수 있다.

요새, 크로스오버(cross-over)나 퓨전(fusion)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양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말들은 양식과 양식을 넘나들거나, 하나의 양식과 다른 양식을 섞어서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예전에 밴드 활동을 할 때 알고 지내던 '가이아(Gaia)'라는 밴드가 있었는데, 그들은 일관되게 헤비메탈과 국악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밴드를 소개하는 기사에는 항상 크로스오버나 퓨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곤 했다.

마지막으로, 예술에 대한 정의에서 주목해야 할 개념은 '창조(creation)'다. 예술이 창조적 활동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텅 비어 있는 하얀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드는 행위만이 창조는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일종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뒤샹의 <샘(1917)>이라는 작품을 보라.

<샘>은 기성제품(ready-made)인 변기를 뒤집어 놓은 것이고, 오른쪽의 <자전거 바퀴(1913)> 는 의자에 자전거 바퀴를 붙여 놓은 것이다. 만약 우리가, 창조는 좁은 골방에 틀어박힌 초췌한 예술가들이 머리를 쥐어 뜯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위의 작품들은 작품이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저런 것쯤은 누구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당장 주변에 있는 아무 물건이나 두 가지를 결합하여,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보자. 그 과정에 예술에 대한 우리의 정의가 고스란히 표현되고 있다. 당신은 어떤 질료를 선택하여, 나름의 방식대로 배치하였다. 즉, 형식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예전에는 그저 '물건'에 불과했던 대상을 '작품'으로 창조해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술이란 예술가라고 '규정된'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예술이 뭔가 대단한 것이라는 믿음이나 예술가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재능을 타고 난 사람들일 것이라는 믿음은 예술에 대한 편견이 낳은 일종의 신화일 뿐이다.



입력시간 : 2007/04/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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