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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타운] 한재림 감독 '우아한 세계'
결코 우아하지 않은 삶, 그에겐 가족이 있어 견딜 만했다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바치는 40대 조폭 아버지의 처절한 생존기





믿기 어렵겠지만 연기를 잘하는 것도 단점이 될 수 있다. 영화감독들 사이에서는 배역을 소화하는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배우로, 대중들에게는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된 송강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는 너무 연기를 잘 했다.

<우아한 세계>를 만든 한재림 감독은 죽을 똥 살 똥 가족들을 위해 모든 걸 바치는 40대 조폭 아버지를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송강호가 연기를 너무 잘했고, 결정적으로 그의 대중친화적 이미지가 네거티브한 색채를 탈색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볼 만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아한 세계>는 우아와는 거리가 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기다.

조폭 아버지, 기러기 되다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40대 가장인 강인구 역을 맡는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불철주야로 일하는

그가 아내와 딸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벌어오는 돈이 깨끗하고 당당하지 못하다는 것. 외관상 청과물 도매업을 하고 있으니 범법자는 아니지만 납품하는 청과물은 조직과 연계된 유흥업소로 들어가고 그는 '들개파'라는 조폭 조직의 중간보스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쓰라는 옛 속담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그는 고개숙인 아버지다. 언제 옆구리에 칼이 들어올 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면서도 번듯한 내 집 하나 마련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가장이다. 지엄한 밥벌이의 고통을 몸소 느끼고 있는 그의 생존기는 눈물겹다. 고생고생 끝에 얻은 아파트 건축 건은 공사장 인부들의 태업으로 녹록치 않고 조직 내에서 벌이는 서열 싸움도 피곤하다.

경우 없고 센스라곤 빵점인 조폭 아버지에 대한 딸의 저항감, 험한 일로 생계를 연명해야 하는 불안한 처지에 대한 아내의 푸념 앞에 인구는 환영 받는 가장이 아니다.

<연애의 목적>으로 데뷔한 한재림이 각본을 쓰고 메가폰까지 잡은 <우아한 세계>는 생존을 위해 자기 조직을 해체시켰지만 기러기 아빠가 돼 홀로 남을 수 밖에 없게 된 40대 조폭 아버지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조폭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지만 이건 여느 조폭영화와는 태생부터가 다르다. 조폭을 희화화하거나 미화하는 기왕의 영화들과 거리를 둔 이 영화는, 대한민국 40대 가장의 팍팍한 일상을 담아내기 위해 '조폭'을 끌어들였을 뿐이다.

기존 조폭영화들이 조폭의 삶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우아한 세계>는 조폭의 삶 뒤에 어른거리는 한국 사회의 초상, '조폭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한국 사회의 일면을 드러내기 위해 생활인으로서의 조폭을 다룬다. 조폭성이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특정한 명제나 행동양식이 지상명령이 되고 모두가 그 명령을 따라 달려가는 획일화된 가치기준들을 은유한다.

영화 속에서 그건 한국인들이 소망하는 '우아한 세계'의 꿈으로 형상화된다. 한가한 교외에 정원이 있는 그림 같은 집을 집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 남들에게 뒤지면 안 되기 때문에 아이들 조기 영어 유학은 필수고, 아이들을 건사하기 위해 엄마는 당연히 함께 외국에 나가야 한다.

목적을 상실한 채 한 길로만 달려가는 한국인들의 전도된 행복관이 풍자의 대상이 된다.

대한민국 가족의 풍속사

<우아한 세계>는 한국영화에서 다소간 신화화됐던 조폭 장르의 관습을 해체한다. 이 영화의 목적은 조폭을 통한 '가족의 풍속사'다.

<연애의 목적>에서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연애관계의 행태들을 풍속사의 관점에서 관찰한 한재림은 다시 한번 자신의 장기를 발휘한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인구는 왜 자신의 삶이 이토록 꼬이게 됐는지, 왜 가족들이 자신을 벌레 보듯 하고 세상은 이리 살아가기 힘든지를 알지 못한다.

<우아한 세계>는 한국 사회의 조폭성에 깊이 침투당한 40대 가장이 어떻게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가를 보여준다. 연애에 대한 통념을 무참히 깼던 <연애의 목적>에 이어 상식과 관습을 무너뜨리는 설정들은 이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추락한 아버지의 권위와 그 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만화경 같은 사건들이 가치 평가를 배제한 채 펼쳐진다.

<연애의 목적>에서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허구적 쾌락을 깨뜨린 한재림은 <우아한 세계>에서는 누아르를 비튼다. 조폭 생활을 하는 40대 가장이 처한 출구가 없는 현실은 그 자체로 누아르적이다. 범죄적 세계에 빠진 고독한 주인공이 냉혹한 세계의 벽에 막혀 좌절하고 파멸해가는 누아르 장르의 이야기 얼개를 이 영화는 그대로 따르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강인구는 누아르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있지 않으며 그의 고민 역시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차한 것이라는 점. 검은 세계의 고독한 영혼들이 할 법한 실존적인 고민은 그에게 없다. 당장 조직에서 살아남고 가족들에게 온정을 회복하는 것이 그가 바라는 꿈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는 아버지의 초상을 연기한 송강호는 단연 돋보인다. 그는 속물적이지만 우습고, 한심한 듯하지만 슬픈, 다층적인 캐릭터를 훌륭하게 연기한다. 송강호처럼 맡은 배역을 정확히 연기할 줄 아는 배우는 드물다.

가족의 풍속사를 그리면서 한재림은 장르를 자기 방식대로 변주하는 재주를 보여준다. 이렇게 진중한 주제를 대중 장르의 이야기 속에 녹여낼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젊은 감독은 그리 많지 않다. 불과 두 번째 연출작이지만 한재림의 이 같은 뚝심은 기대할 만하다.



입력시간 : 2007/04/11 15:52




장병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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