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전당
안방극장이 ‘복제의 함정’에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락 프로그램 및 드라마 등 전 분야 프로그램에 걸쳐 아이템 베끼기가 성행하고 있다. 국내 인기 프로그램의 아이템 활용은 물론이거니와, 해외 프로그램에 대한 표절 의혹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곤 한다.

오락 프로그램이 다른 인기 프로그램이나 코너의 아이디어를 차용하거나 활용해 새롭게 꾸미는 것은 이미 보편화된 현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복제’의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또한 복제 분야도 오락 프로그램을 넘어 드라마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아이템뿐만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자기복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점에서 안방극장이 ‘복제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탄식마저 절로 나오게 하는 실정이다.

최근 가장 큰 인기를 모으는 MBC 오락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적극적인 복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SBS는 봄 프로그램 개편을 맞아 <>, <하자 고(Go)>, <작렬! 정신통일>등 새로운 오락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이들은 다분히 <무한도전>을 연상케 한다. <>은 6, 7명의 패널이 과제에 도전하는 과정을 다룬다. UCC를 소재로 한다는 특성은 차별화되지만 근본 취지는 <무한도전>을 배제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자 고(Go)>는 더욱 복제에 가깝다. 유재석을 메인 MC로 세우고 하하, 박명수 등 패널들이 각종 게임을 통해 웃음을 추구하는 점은 <무한도전>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유재석이 채널만 바꿔 유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점에서 ‘자기복제’라는 지적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무한도전>, <작렬! 정신통일>과 KBS 2TV <미녀들의 수다>는 최근 표절 의혹에 휘말리며 곤욕을 치렀다. 시청자들은 이들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 등에 일본 프로그램을 차용한 정황 등을 제시하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작렬! 정신통일> 제작진은 뒤늦게 “일본 후지TV와 라이선스 계약을 했다”며 표절이 아닌 포맷 계약에 의한 활용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무한도전>, <미녀들의 수다>의 제작진은 표절 의혹에 대해 반발하며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그러나 일본의 프로그램과 마치 판박이처럼 비슷한 포맷으로 꾸며진 점에서 이들 프로그램을 둘러싼 표절 의혹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형편이다.

복제는 드라마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최근 들어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의 영향을 받아 장르 드라마가 속속 선보이는 가운데 ‘미드’의 설정을 활용하는 경향이 자주 눈에 띈다.

SBS 미니시리즈 <외과의사 봉달희>가 <그레이스 아나토미>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와 설정으로 지적을 받은 데 이어, MBC 미니시리즈 <히트>는 미국의 범죄 수사 시리즈 와 유사한 설정을 활용하고 있다. 인기 캐릭터의 자기 복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KBS 2TV 미니시리즈 <>의 여주인공 이다해는 지난해 출연작인 SBS <마이 걸>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이다해는 변화무쌍한 표정 연기로 깜찍 발랄한 신세대의 매력을 멋지게 발산하고 있지만 동시에 ‘스테레오타이프(틀에 박힌 전형적인 이미지)’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SBS 미니시리즈 <마녀유희>의 재희는 2005년 출연한 KBS 2TV 미니시리즈 <쾌걸 춘향>에서 자신의 연기 패턴을 2년이 지난 뒤 답습하고 있다.

이처럼 안방극장에서 ‘복제’가 판을 치는 이유는 쉽게 재미를 창조할 수 있다는 용이성 때문이다. 이미 성공한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활용하고 이를 발전시켜서 실패의 여지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시청자도 익숙한 재미에 약간의 새로움이 추가된 복제 아이템에서 편안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SBS 정순영 예능국장은 “뻔한 아이템이긴 해도 새로운 재미를 첨가해 시청자의 호응을 얻고자 한다. 시청자는 생소한 새로움보다 보편적인 편안함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외국 프로그램의 포맷을 활용하긴 하지만 여기에 국내 여건에 맞춘 새로운 기획을 추가해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일본 등 해외 프로그램에 의존하고, 또 그 의존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순수 한국형 프로그램이 자취를 감춰가는 점은 못내 안타깝다.

복제는 엄연한 ‘무임승차’다. 결국엔 제 발등을 찍는다. 편안한 ‘우려먹기’에 길들면 방송은 발전할 수가 없다. 자칫 시청자의 외면을 부르고 그것은 안방극장 전체의 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인해 방송 시장 개방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프로그램의 경쟁력 약화는 고스란히 안방을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건만 방송가는 이를 모르는 듯하다.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이러다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게 되지나 않을지 염려스럽다.

헬로 애기씨

이동현 스포츠한국 연예부 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