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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데뷔 30년 인순이의 노래인생
"팬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누드 모델 빼고 다 할 것"
세대를 넘나드는 흡인력, 가요계 맏언니로 건재 과시



국민가수 인순이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명멸의 순간이 짧고 냉엄한 가요 판에서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나래를 펴고 비상하는 그의 위상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가수로서의 영광을 두루 경험한 그는 야생화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한국 대표 여가수로 우뚝 서 있다. 국가적 이벤트에서부터 동네 무대까지 그의 이름은 빠지질 않는다. 비결이 무엇일까?

여가수들 대부분 나이가 들수록 가요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인순이는 다르다. 10대 중심의 음악프로그램은 물론 중장년층 무대에서도 환영받는 가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롱런 대중흡입력은 끊임없는 실험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과거의 히트곡만 부르며 추억과 향수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날도 많은데 '몇 주년'이란 점을 찍으며 과거에 연연하고 싶지 않아요. 내년엔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공연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 지난 4월 14일부터 ‘그대, 숨 쉬는 동안에 늘 꿈을 꾸어라’라는 이름으로 천안을 시작으로 9개 도시를 순회하는 전국 투어 중이다. 가는 곳마다 매진 행진이다.

지난 27일 방송녹화를 마치고 다음 행사장인 청주로 내려가고 있는 그와 어렵게 전화 인터뷰를 했다. 빠듯한 일정에도 피곤한 기색이 없는 밝고 건강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용감하고 건강하게 사니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요.”

5월 1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무대는 투어 네 번째 무대다.



1977년 데뷔시절
그는 “70~80년대에도 두 달간 하루 4회 공연을 소화하며 전국을 도는 리사이틀을 했어요. 그때보다 요즘은 규모도 크고 화려해졌다”며 “이번 투어에선 ‘거위의 꿈’ 전주만 나와도 관객들이 합창을 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다 납니다”라고 즐거워했다.

사실 ‘거위의 꿈’은 97년 이적과 김동률의 카니발이 발표했던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는 인순이의 모습에 감동한 팬들이 인터넷에 노래 파일을 올리면서 화제가 된 곡이다. 인순이는 올 초 정식 녹음, 디지털 싱글로 발표해 ‘주몽’OST에 이어 대박행진 중이다.

그는 신인가수들의 우상이다. 최고의 신세대 여가수 아이비, 윤하, 온희정은 하나같이 닮고 싶은 가수 1위로 인순이를 꼽는다.

인순이는 "요즘은 후배들에게 인생의 선배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질 만큼 깊이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한다. 인순이는 어린 시절에 대해 말을 극도로 아낀다. 과거보다는 ‘꿈’을 잃지 않고 이루어가는 현재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샌디김, 윤수일, 박일준 등 성공한 혼혈가수들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상에 살아남은 가수는 그녀가 유일하다. 그는 성공한 혼혈가수의 표본이다.



1-1977년 데뷔시절, 2-1980년 솔로데뷔시절, 3-1996년 솔로데뷔시절

그녀의 음악인생을 되짚어보자. 그는 1977년 포천여종고를 졸업한 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직업가수가 되었다. 그는 “당시 살아남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노래했다”고 회고한다.

신인 혼혈여가수의 등장은 곧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여성매니저 한백희가 찾아와 여성보컬 팀을 제안했다. 여성트리오 ‘희자매’다. 1978년 TV에 출연하자 반응이 대단했다.

첫 히트곡 ‘실버들’은 TBC 가요차트에서 7주간 1위를 차지했고, 각종 가요 순위 상위권을 독식했다. 순식간에 떠버린 ‘희자매’는 당시 군인들이 좋아하는 최고의 여성보컬팀이었다. “훤칠한 여자 셋이 춤과 노래 모두 끝내주었죠. 군 부대에 우리가 미니스커트나 핫팬츠를 입고 뜨면 그날은 끝이었어요.”

희자매 3집 음반을 끝으로 솔로로 독립해 1981년 신중현과의 음악작업을 통해 독집을 발표했다.

이듬해 강대선 감독의 영화 ‘흑녀’에서 주연을 맡고 83년 ‘밤이면 밤마다’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각종 대학가요제의 열풍에 밀려 차츰 방송과 대중의 시선이 멀어져갔다.

좌절하기보단 전속 밴드와 무용팀을 꾸려 팬들을 직접 찾아 다녔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1993년 KBS에 <열린 음악회>가 생겼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재기에 성공한 그는 1994년 대학교수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그는 미국에 가서 아이를 낳았다. 혼혈 엄마가 겪었던 차별이 걱정되었기 때문. 그가 최고로 꼽는 노래 ‘에레나라 불리운 여인’(1987)은 그의 혼혈 인생과 연관된 곡이었다.

2001년 15집 ‘마이 턴’은 중년가수의 신보로선 이례적으로 7만 장을 파는 히트를 기록했다. 3년 후 발표한 16집 ‘A TO Z'는 스윙, 디스코, 발라드, 펑키, 테크노, 트롯까지 모든 장르를 섭렵한 종합 음악선물세트였다.

이때 ‘소방차’출신 정원관의 주선으로 조PD와 함께 노래한 ‘친구여’로 마침내 가요차트 1위에 등극했다. “‘친구여’로 활동하면서 혼혈에 대한 편견을 떨쳐냈어요. 머리와 제 피부색보다 이름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2005년엔 영화 ‘야수와 미녀’에 재즈 가수로 카메오 출연했다.

당시 인순이는 “배우가 되는 것은 나 외의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기회”라며 “앞으로도 삶에 활력소가 되고 팬들이 원한다면 누드모델만 빼고 뭐든지 다 해볼 생각”이라 했다. 어떤 뮤지션의 영향을 받았는지 물었다.

“007주제가를 부른 영국가수 샬리 베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3분 30초 동안 표정 손짓 연기를 하며 연극 같이 부른 그녀의 노래는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이 누구인지 평범한 질문을 던졌다. 의외로 후배 박진영이란 대답이 나왔다.

행복의 정점에 있는 그에게도 두려운 것이 하나 있다. “요즘 좋은 이미지로만 세상에 부각되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저도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면 얼마나 추락할까 그게 걱정입니다.”

인순이는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같은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에도 자비로 추모공연을 마련하고, 외롭고 어려운 환경의 선·후배가수들의 경조사에도 몸을 사라지 않는 사람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최초의 댄스가수 이금희의 외동딸에게 그녀는 은인이다. 아무도 모르게 인생의 조언과 체계적인 음악공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 “제가 사랑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 시대를 풍미한 선배가수들이 아직도 재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이 너무 속상합니다. 이금희 선배님의 경우 외동딸을 남겨두고 떠나시는 마음에 동병상련을 느꼈습니다.

저도 딸 아이 하나를 키우는 엄마이니까요.”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인간 인순이는 크고 아름답다. 그녀의 데뷔30주년은 끝이 아닌 새로운 ‘꿈’을 향해 가는 징검다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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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5/08 14:50




최규성가요칼럼니스트 oopl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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