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자태·향기가 늦봄 숲의 주인공 같네

누군가 말했다. 흰 나비들이 날아와 나무에 가득 내려앉은 듯하다고. 이즈음 숲에서 막 꽃을 피워내고 있는 괴불나무의 모습은 정말로 그러하다.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새순을 내보내던 숲들은 어느새 초록으로, 갈맷빛으로 옷을 바꿔입고 있다. 더불어 산벚이며, 진달래며, 철쭉이며, 붉게 화사하던 꽃나무들도 하나둘 꽃잎을 떨구었다. 그 꽃대궐의 빈자리를 지금 노린재나무, 고추나무 그리고 괴불나무 꽃들이 한창 채우고 있다.

괴불나무는 인동과 인동속에 속하는 낙엽 나무이다. 흔히 작은키나무라고 분류하는데 크게 자라지는 않아도 덤불 모양이 아니라 굵은 줄기를 가지고 3m이상 큰다. 우리나라 전역의 숲에서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줄기를 가지고 자라므로 언뜻 보기에 덩굴성 식물인 인동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꽃 모양을 보면 금세 한 집안 식물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꽃잎은 통꽃이지만 통으로 붙어 있는 부분은 아주 짧다. 꽃잎은 펼쳐져 갈라진 한 조각만 떨어져 있으니 마치 나비의 한 쪽 날개와 같고, 이 꽃들이 마주 달리니 사뿐히 내려앉아 날개를 팔랑거리는 나비의 모습이 된다.

이런 꽃 모습뿐 아니라 처음엔 깨끗하고 맑은 흰 꽃으로 피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노란빛을 띠는 특징이나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가 솔솔 풍기는 것도 모두 인동과 비슷하다. 다만 여름에 꽃이 피고 더러 한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는 인동보다 개화가 빨라 늦은 봄과 이른 여름의 숲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괴불나무는 늦봄의 꽃도 볼 만하지만 가을에 익는 열매도 좋다. 작고 빨간 구슬 같은 열매들이 꽃이 달렸던 자리마다 나란히 곱고 예쁘게 달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흡족하게 한다.

괴불나무란 이름은 왜 붙었을까? ‘괴불’이란 옛날에 아이들이 차고 다니던 노리개 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툭 튀어나와 벌어진 꽃잎 조각이 그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산괴불주머니에 붙은 이름의 유래와 같다. 제주도에서는 개불낭이라고도 한다.

열매는 먹을 수 있고, 어린 잎과 꽃은 차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인동이 그러하니 당연하다 싶다. 뿌리는 약으로 쓴다 하니 조경수로 아주 유익한 나무다.

꽃 때를 잘 맞추지 못한 탓도 있지만 가끔 숲에서 괴불나무를 만나도 다른 나무들에 가려 그리 눈여겨보지 못했는데 올해 광릉수목원에선 유난히 이 나무가 돋보인다.

날씨의 기복이 심하여 많은 나무들이 착각한 때문인지 꽃을 피운 시기가 이리저리 몰려 제 때를 벗어난 일이 잦았는데 괴불나무는 꽃을 피우는 시기를 아주 잘 잡은 듯하다. 다른 꽃들이 질 무렵 가지마다 한가득 흰 꽃을 피우는 괴불나무들은 산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우리 산과 들에 자라는 우리 풀, 우리 나무. 집집마다 공원마다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외국나무들 대신에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야 할 토종나무들 중의 하나가 괴불나무다.

누군가 이 나무의 아름다움을 눈여겨보고 널리 알려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금 숲에서 막 꽃을 떨구고 있는 가침박달과 덜꿩나무, 꽃이 한창인 노린재나무와 매자나무, 그리고 곧 피기 시작할 때죽나무…. 이들은 모두 그러한 잠재력을 가진 멋진 우리 나무들이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