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인생의 출구없는 방황과 좌절… 소년에서 청년으로 거듭나는 성장 영화

시대마다 ‘청춘’의 특성은 다르게 정의된다. 누군가에게 청춘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 꿈꿀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황금기인 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길의 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같은 청춘의 특성은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소재로 빈번이 쓰여졌다.

신용불량 청춘의 남루한 일상을 다룬 <마이 제너레이션>으로 만인의 주목을 받았던 노동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비전은 후자 쪽에 가깝다. 비관적인 뉘앙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출구 없는 방황과 좌절을 가감없이 묘사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주변인’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주변부 동네에 살고 남의 욕망을 채워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며, 자기의 삶 외에 돌볼 것들이 너무 많다. 방황과 결핍이 존재의 이유가 된 대책없는 젊은이들의 갑갑한 일상을 따라가면서 그 안에서 옅은 희망을 발견하려 한다.

총잡이가 되고픈 소년

서울 변두리에 사는 스무 살 종대(유아인)의 취미는 가짜 총을 수집하는 것이다. 종대에겐 친형도 아닌데 친형 이상으로 그에게 살갑게 대하는 동네 형 기수(김병석)가 있다.

기수는 음악을 하고 싶은 밴드의 드러머지만 현실에서는 대리운전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다. 기수가 피붙이도 아닌 종대에게 헌신적인 것은 어린 시절 종대가 고환을 잃게 된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았을 뿐 아니라 치명적인 신체적 핸디캡까지 안고 있는 종대는 진짜 총을 사기 위해 모았던 돈을 사기당하자 김사장(최재성)이 운영하는 퇴폐 안마시술소에 취직한다.

종대는 안마시술소에서 만난 여종업원과 사랑에 빠지고 이를 계기로 모종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위태롭게 변하는 종대의 일상을 바라보며 기수는 어떻게든 상황을 되돌려보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은 더 엉켜가고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소년이 청년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의 성장통을 다룬 성장영화이자 가 없는 청춘의 우울을 담은 청춘영화다.

2004년 단돈 30만원으로 찍은 디지털 독립 장편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노동석 감독은 다시 한번 HD 카메라를 들고 서울의 뒷골목들을 누빈다. HD 카메라의 특성이 잘 활용된 이 영화는 한마디로 '로케이션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공간적 배경이 역할을 한다.

HD 카메라 특유의 기동성과 공간의 특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남루한 가옥들, 종횡으로 교차하는 전선들, 음습하고 질척거리는 안마시술소 골방 풍경들이 즐비한 이 영화에서 HD 카메라는 인물들의 답답한 속내를 전경화한 변두리 공간들을 종횡무진 오간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뿌리 뽑힌 젊은이들의 아득한 절망감을 시각화한 폐쇄 공간들에서의 촬영은 디지털 카메라의 기동성, 경량성이 아니었다면 실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포, 서울역, 광명 등 서울 일대에서 물색한 촬영지들은 초점없이 흔들리는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었다. 전작에 이어 독립영화의 모양새를 취했으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좀 더 장르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종대가 집착하는 ‘총’이라는 대상의 상징성과 그의 핸디캡인 ‘성적 불구성’은 묘하게 공명하면서 청춘의 결핍을 형상화하고 있다.

노동석에겐 내일이 있다

노동석 감독은 얼마 전 발생한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보고 섬뜩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건 자체의 강도도 워낙 셌지만 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영화의 주인공 종대을 보고 조승희를 떠올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복수의 수단으로 총을 사용한 조승희의 상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종대 역시 총을 통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삐뚤어진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건 자신에게 없는 남성적 힘의 상징인 고환의 대리물이자 역시 부재한 자존을 얻고 싶은 욕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대의 욕망은 한국 사회에서 총기 사용이 금지됐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그는 총을 얻기 위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불법이나 일탈을 무릅써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부터 비극이 비롯된다. 결핍과 외로움에서 출발한 그의 병증을 치유하는 건 기수의 헌신적인 보살핌이다. 한없이 선량해 보이는 그의 희생은 결국 가망없어 보이는 한 청춘을 구원한다.

차분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낸 배우들은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기수 역의 김병석은 연출자를 꿈꾸는 비직업배우지만 노동석 감독의 전작 <마이 제너레이션>에 이어 예의 심드렁한 연기로 극한의 리얼리티를 살려내고 있다.

TV 드라마 <반올림>을 계기로 발탁돼 <좋지 아니한가>에도 출연한 배우 유아인은 나이답지 않은 깊이 있는 캐릭터 소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실로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얼굴을 보게 된 과거의 청춘 스타 최재성, 영화제작자이기도 한 최두영 등의 조연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내일이 없다고 외치는 영화 속 주인공들과 달리 감독 노동석의 내일은 보장된 듯하다.

청춘을 테마로 한 두 편의 영화에서 노동석 감독은 일관된 자기 색깔을 보여줬다. 컴퓨터그래픽(CG)이나 특수효과 등 첨단 테크놀로지 대신 발품을 판 로케이션과 탄탄한 기본기로 정서적 감흥을 끌어내는 그의 연출력은 어른스럽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볍지 않은 시선은 그가 단명하지 않고 오래갈 수 있는 기대할 만한 감독이라는 확신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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