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엮음 / 리더스북 발행·25,000원

보통 저자가 다수인, 그래서 소재가 다양한 책은 읽고난 후 핵심을 손에 쥐기가 어렵다. 많은 이야기를 듣는 듯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도 깊이있게 얻지 못한 탓이다. 그냥 내용이 아른거린다고 할까.

이 책도 그런 약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 기업, 국가, 미래산업의 26가지 트렌드’라는 것부터가 겉?기의 유혹을 풍긴다. 그렇다면 그냥 덮어야 할까. 신문 읽기, 특히 딱딱한 경제기사에 지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독자였다면 그렇지 않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단박에 눈치챌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두툼하지만 각각의 글이 길지 않고 난해한 경제학설은 제쳐놓은 덕에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이 중에는 좀 더 찾아보고 생각해보고 싶게 만드는 글들도 꽤 있다.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인 ‘행복경제학’이나 ‘빨대경제구조, 기적의 열쇠가 아니다’, ‘지역주의, 다자주의와 세계화’ 그리고 ‘명품의 갭’에 대한 논의 등이 그것이다.

행복경제학은 소득과 행복감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경제적 안정(절대적 소득보다 상대적 소득이 중요한), 인간적인 커뮤니티, 개인의 건강, 자아실현, 긍정적 사고방식이 계량 가능한 변수들로 여겨진다. 그래서 ‘원만한 결혼생활 1년의 금전적 가치는 10만 달러(약 1억 5,000만원)’라는 흥미로운 수치도 접할 수 있다.

“한국형 통치구조의 핵심은 정치권력을 통해 획득한 정치적 지대(Political Rent)를 금전적 지대(Financial Rent)로 연결시키는 ‘빨대’에 있다.” 때만 되면 터지는 공기업 비리나 낙하산 인사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이유가 있었다.

다소 딱딱한 구절들로 이뤄진 ‘빨대경제구조…’는 정부 주도형 개발경제의 특징적인 모습을 밝혀주고 있다. 권력이 곧 돈을 만들어내는 것.

저자는 유사정부기관들을 빨대경제기관이라 칭하는데 민간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이득을 챙기는 탓이다. 한번 생산된 빨대기관은 없어지기 어렵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재생산된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준공공기관의 자리가 적게는 2만 개에서 많게는 5만 개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과거엔 성장을 이끄는 데 효율적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데 있다. 최근 공기업의 감사들의 예산낭비 외유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런 빨대경제기관들의 면면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빨대로 빨아먹을 이득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그래서 곱씹을 만하다.

‘명품의 갭’은 흥미로운 마케팅 전략을 말해준다. 명품소비에 대한 비판은 잠시 제쳐두고 팔아야 하는 자의 입장에 서 보면 말이다.

저자는 부자들만 살 수 있게 가격장벽을 단단히 세우는 걸로는 이윤을 낼 수 없다고 말한다. 1%를 위한 하이마켓에서 브랜드를 관리하되, 99%가 ‘저렴하진 않지만 구매할 수 있는’ 볼륨마켓에서 실탄을 확보하라는 것. 두 타깃 사이의 함수관계는 1,000억 달러의 명품시장을 노리는 기업들이 되새길 대목이다.

찬반논란 속에 파묻혀 보지 못한 자유무역협정(FTA)의 본질은 어떤가. FTA는 자유무역(Free Trade)과는 전혀 다른 특혜무역협정, 비회원국을 배제시키고 차별하는 것이다. WTO로 상징되는 다자간 무역에 역행하는 FTA를 제대로 된 세계화로 이끄는 방법 또한 고민거리를 남긴다.

써놓고 보니, 경제의 최전선이 만만하지는 않은 듯싶다. 상식에 둔감한 독자뿐만 아니라 트렌드에 익숙한 독자라도 정리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다만 글마다 통찰력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니 과감히 건너뛰며 읽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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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 philo94@hk.co.kr